“임신 성공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 저는 난임 병원 임상배아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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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리아병원 허용수 실장

마리아병원은 국내에서 난임 환자가 가장 많이 찾는 병원이다. 전국 10곳의 마리아병원에서 국내 시험관 시술의 35~40%가 이뤄진다. 시험관 시술은 난임 부부의 마지막 희망이다.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 시험관이나 배양 접시에서 인위적으로 수정시킨 후 키워 여성의 자궁에 이식해 임신시키는 치료법이다. 이런 방법으로 지금까지 10만명이 넘는 새 생명이 마리아병원에서 세상 빛을 봤다.

환자들은 의사가 이런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난자 채취와 자궁 이식(착상)을 제외한 모든 과정은 임상배아연구원(배아 배양사)의 몫이다. 최상의 정자, 난자를 선별해 이식에 최적화된 ‘생명의 씨앗(배아)’을 만드는 이들은 난임 병원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25년간 임상 현장을 지킨 허용수 마리아병원 연구부 실장에게 난임 치료의 최전선에 있는 임상배아연구원에 대해 들었다.

마리아병원 허용수 실장은 25년간 건강한 정자, 난자를 선별하는 일을 해왔다.  [사진 마리아병원]

-임상배아연구원이란 직업이 생소하다.
예전에는 배아 배양사, 배아 연구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최상의 정자와 난자를 선별하고 임신에 적합한 배아를 만들고 키우는 전문가들이다. 대한배아전문가협의회에서 이런 직업 군을 공식적으로 임상배아연구원이라 칭한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생식의학에 관심이 많았고 교수님이 추천해 1994년부터 마리아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전공을 살려 기초 연구를 진행하려 했다가 임상 연구에 매료돼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다. 사실 25년이나 이 일을 할 줄은 몰랐다(웃음).

-임상배아연구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정자, 난자를 선별하고 자연, 미세수정을 시키고 만들어진 배아를 선별, 보관하는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대게 초기에는 채취한 정자, 난자를 다루다가 연차가 쌓이면서 냉동, (미세)수정, 배아 선별을 담당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이식, 냉동할 배아를 선별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다. 모든 과정이 중요하지만, 특히 배아는 착상과 직접 관련이 있고 냉동한 후에도 다음 착상에 사용돼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 되야 한다.

-좋은 정자, 난자, 배아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
한국, 미국, 유럽 등 국가별 생식의학회에서 기준을 정한다. 마리아병원은 이를 종합해 병원만의 최적화된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연구원들의 경험과 노하우도 중요하다. 기준을 충족한 생식세포 중에서 모양, 운동성 등을 고려해 가장 수정 확률이 높은 생식세포를 선별하는 일은 결국 임상배아연구원의 몫이다.

-관련 장비도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그렇다. 이 일을 할 때 긴장해야 하는 이유는 생식세포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부부의 생식세포가 다른 부부와 섞이면 복잡한 법적, 사회적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누구도 원치 않는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병원 자체적으로 ‘마리아IVF가디언시스템’을 구축했다. 손등 혈관으로 본인인증을 받고 선별, 시술 과정마다 QR코드를 대조해 본인인지 아닌지 확인한다. 검증에 실패하면 시술 자체가 이뤄지지 않게 시스템을 구축했다. 반복적으로 임신에 실패한 환자에게는 일반 현미경(200~400배)보다 정자를 훨씬 확대해 보는 고배율 현미경을 적용한다. 광학적으로 5000배까지 확대해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정자의 모양, 성숙도를 보다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타임랩스 시스템’도 빠질 수 없다. 종전에는 배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인큐베이터에 있는 배아를 꺼내 현미경으로 관찰해야 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배아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었다. 타임랩스 시스템은 인큐베이터에 달린 카메라로 배아를 촬영하고, 이를 분석해 배아의 상태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배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고, 객관적이고 세분화된 기준에 따라 최적의 배아를 선별할 수 있어 임신율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기술이 너무 많이 나와 하나하나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마리아병원 허용수 실장 [사진 마리아병원]

-25년간 수많은 정자, 난자를 봐왔다.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
환경오염과 늦은 결혼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20년 전에는 70~80%는 자연수정이 가능했고 20~30% 정도만 미세수정을 실시했다. 지금은 반대로 미세수정이 70~80%를 차지한다. 임상배아연구원의 역할도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임상배아연구원에게 필요한 역량은.
대부분 발생학, 번식학 등 생물학 관련 전공자들이다. 대학에서 생쥐, 소, 돼지 등 동물 배아를 다룬 경험이 있으면 임상현장에서 인간 배아를 보다 수월하게 다룰 수 있다. 우리 병원의 경우 보다 전문성을 갖춘 석사 학위 이상 연구원을 주로 뽑고 있다. 임상은 실전이다. 대학에서는 인간 배아에 대해 배울 수는 있지만 다뤄볼 수는 없다. 임상배아연구원으로서의 역량은 병원에서 연구원 스스로 노력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초반에는 조금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부천 마리아병원에서 일할 때였다. 토요일이라 후배 연구원들을 일찍 퇴근시키고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액에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은 고환 조직을 떼 정자를 찾아야 하는데, 그때 맡은 환자가 이런 케이스였다. 유독 정자가 보이지 않아서 낮부터 밤까지 5시간 정도를 현미경과 씨름하며 겨우 몇 개의 정자를 찾아 미세수정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환자는 임신에 성공했다. 임상배아연구원의 일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한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공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연구원이 이런 숭고한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

마리아병원 허용수 실장이 연구실에서 생식세포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마리아병원]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을 꼽는다면.
아이를 갖기 힘든 부부에게 새로운 생명을 안겨주는 경험은 연구원 스스로에게도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 사실 임상배아연구원은 남이 알아주는 직업은 아니다. 환자들은 주로 의사를 본다. 아마도 정자, 난자, 배아 선별도 의사가 할 것이라 대부분이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숨은 곳에서 현미경과 씨름하며 좋은 정자, 난자를 찾고, 섬세하게 기구를 조작해 미세수정에 성공하는 작업은 임상배아연구원의 몫이다. 보이진 않지만, 누구보다 임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임상배아연구원이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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