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항암제로 황반변성 치료한다는데, 위험하진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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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황반변성 치료제 바로 알기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인간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80%는 눈(시력)에 좌우됩니다. 보지 못하는 공포는 누구에게나 큰 법이죠. 실명(失明)의 주요 원인인 황반변성 치료제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이번 주 약 이야기에서는 황반변성 치료제의 종류와 원리, 치료 시 주의할 점 등을 짚어보겠습니다.
 

황반변성은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에 노폐물이 끼거나(건성 황반변성) 비정상적으로 혈관이 자라는(습성 황반변성) 병을 말합니다. 황반에는 시세포의 대부분이 모여있어 황반변성을 방치하면 시력을 영영 잃을 수 있습니다. 대게 건성 황반변성이 습성 황반변성으로 악화하는데요, 황반에 노폐물이 끼면 망막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혈관이 과도하게 자라면서 습성 황반변성으로 악화하는 겁니다.
 
황반변성은 노화와 관련이 크지만 발병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써 완치가 불가능한 병입니다. 특히, 건성 황반변성은 아직도 효과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죠. 반면 습성 황반변성은 혈관 생성을 억제해 병의 진행을 늦추려는 시도가 수십 년 전부터 활발히 이뤄져 왔습니다. 레이저로 신생 혈관을 파괴하거나, 특수 물질을 주사해 신생 혈관을 폐쇄하는 방법 등이 개발됐죠. 하지만 정상 혈관이 손상돼 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신생 혈관 억제해 증상 진행 막아
이런 문제를 극복한 치료법이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주사 치료제인 이른바 혈관내피성장인자억제제(anti-VEGF)입니다. 눈에 약물을 주사해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혈관내피성장인자(VEGF)를 억제, 병의 진행을 막는 방식입니다. anti-VEGF는 개발 이력이 독특한데요, 이 약의 ‘뿌리’가 암을 치료하는 항암제(아바스틴)이기 때문입니다. '아바스틴'은 암 세포의 신생 혈관을 억제하는데요, 작용 원리가 비슷한 만큼 눈의 신생 혈관을 막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란 생각에 황반변성 치료제가 개발됐습니다.
 
현재 습성 황반변성 치료에 쓰는 주사제에는 실제 대장암 치료제인 ‘아바스틴’도 포함됩니다. 다른 주사 치료제는 ‘아바스틴’의 효과가 밝혀진 후 황반변성에 특화해 분자구조를 작게 만드는 등 개량한 약으로 ‘루센티스’, ‘아일리아’ 등입니다. 연구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바스틴은 다른 치료제와 비교해 치료 효과는 다소 떨어지는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황반변성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루센티스, 아일리아를 맞았던 기간(6개월)은 시력저하가 없던 환자들이 아바스틴으로 치료제를 바꾼 뒤 6개월 간 시력이 유의하게 떨어지기도 했습니다(대한안과학회지, 2019년). 하지만 다른 약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효과, 안전성이 비슷하다는 연구도 많아 현재까지 황반변성 치료에 활발히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바스틴’을 황반변성 치료에 쓰기 위해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아바스틴’이 대장암·난소암 등 암 환자에게만 처방하도록 허가가 났기 때문입니다. 황반변성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허가 외 용도(오프라벨, off-label)로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정부가 지정한 임상시험 실시기관이나 병원 내 의학연구심의위원회(IRB)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IRB가 설치되지 않은 소규모 병원, 의원은 제도적으로 아바스틴을 사용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보건복지부가 환자의 편의를 위해 이런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IRB가 설치된 곳이 아니어도 허가 외 용도로 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한 겁니다. ‘아바스틴’은 1개월 간격으로 맞아야 하는데, 이때마다 환자들이 IRB가 있는 대형 종합병원을 찾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이번 조치를 통해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집 근처 안과에서 황반변성에 ‘아바스틴’을 처방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치료 이유, 부작용 등 꼼꼼히 따져야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 선택권이 확대된 만큼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안전성이 확보됐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아바스틴’을 황반변성 치료에 사용할 때는 한 병을 10회 정도로 나눠서(분주) 주사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염과 오염을 막으려면 일정 온도를 유지한 무균시설에서 분주가 이뤄져야만 합니다. ‘아바스틴’이 항암제라는 점에서 분주 시 안전성을 담보하는 건 특히 중요한 일입니다.
 
미국, 이탈리아 등 황반변성 치료에 ‘아바스틴’을 쓰는 나라도 안전성 확보를 위해 허가 받은 약사나 업체가 무균시설에서만 분주를 진행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습니다. 따라서 황반변성에 ‘아바스틴’을 사용한다면 해당 의료기관에 무균시설, 전문인력 등이 있는지 파악해보는 게 바람직합니다. 더불어 용법,용량이 규정되지 않은 만큼 어떤 근거로 주사제 용량을 결정했는지, 나아가 다른 안과전문의의 의견도 비슷한지 등을 추가로 확인해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둘째, ‘아바스틴’을 사용하는 이유를 의사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루센티스’와 ‘아일리아’는 ‘아바스틴’과 달리 황반변성에 허가를 받은 치료제입니다. 종전에는 양쪽 눈을 합쳐 총 14회만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2017년 12월부터 보험 기준을 충족하면 횟수 제한 없이 건강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종전에 ‘아바스틴’이 많이 쓰인 이유는 다른 치료제의 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이런 문제가 많이 개선된 상태입니다. 비용적인 장점이 크지 않고, 허가 받은 황반변성 치료제보다 효과가 우월하지 않다면 굳이 ‘아바스틴’을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보건복지부는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아바스틴’ 사용 시 ▶허가 외 사용이라는 점 ▶투약계획 및 소요비용 ▶예상되는 부작용의 종류 및 부작용 발생 시 대응 계획 ▶대체 가능한 치료법 유무 등을 안과의사가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한 후 동의서를 받아 보관하도록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시력을 잃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선택으로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사고를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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