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의료 현장] 투명한 ‘미니 장기’로 질병 극복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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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의대 척수 오가노이드

미니 장기로 불리는 ‘오가노이드(organoid)’는 기존의 생명과학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파급력이 있다. 인간의 발생 과정 탐구, 질환의 원인 파악, 약물 개발과 부작용 예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 가능한 기술이다. 아직 실험실에 머물러 있지만, 향후 고장 난 장기를 대체하는 ‘인공 장기’로서 가능성도 점쳐진다.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 선웅 교수는 지난 2015년부터 척수 오가노이드 개발을 시작했다. 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의 치료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적합한 연구 모델이 없어 직접 오가노이드를 제작했다고 한다. 인간 줄기세포로 척수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세계 첫 도전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스스로 기능을 얻기 위해 3차원 형태를 갖추는 속성이 있다. 발달에 필요한 단백질, 지질, 신호전달물질, 성장인자 등을 처리한 배지에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스스로 장기와 비슷하게 모양을 갖추며 발달한다. 선 교수는 “신기하긴 하지만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거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생명과학에서 밝힌 연구를 토대로 어떤 물질이나 환경이 오가노이드를 만들 ‘방아쇠’가 되는지를 발견,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고려대 의대는 이렇게 만든 오가노이드에 기존에 개발해 둔 조직 투명화(CLARITY) 기술(액트-프레스토)을 적용해 형태와 크기, 발달 과정 등이 인간의 그것과 얼마나 유사한지 검증하고 있다. 종전에는 조직을 하나씩 얇게 잘라 현미경으로 본 뒤 각각 연결해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 유추했다. 퍼즐을 맞춰야 그림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조직 투명화 기술을 쓰면 조직을 손상하지 않고도 3차원 구조나 신경 생성, 연결 등 거시적 변화를 알아낼 수 있다. 어떤 그림인지 아는 상태에서 필요한 퍼즐만 골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 1월 찾은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 실험실에서는 조직 투명화 기술이 적용된 수백 개의 오가노이드가 배지에서 자라고 있었다. 척수 오가노이드가 성숙한 형태를 갖추려면 보통 보름이 걸리는 데, 크기가 모래알만큼 작아 눈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혈관이 제대로 연결되면 산소와 영양소가 공급돼 실제 크기만큼 자랄 수도 있지만, 현재 기술로는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정상적인 척수 오가노이드(왼쪽)과 신경관 결손을 일으키는 약물을 처리한 척수 오가노이드의 비교 모습[사진 박정렬 기자]
 

선 교수에 따르면 이곳의 척수 오가노이드는 실제 인간의 척수와 유사하게 모양이 발달하고 운동 신경을 형성한다. 나아가 태아의 신경관 결손을 일으키는 약물(발프로산, valproic acid)을 투여한 척수 오가노이드는 일반적인 오가노이드와 달리 형태가 일그러진다는 사실도 관찰됐다. 선 교수는 “이런 방식의 연구는 실제 인간을 대상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라며 “인간 척수와 유사한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질환과 약물에 관련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아가 관련 기술이 더 많이 발전하면 손상된 척수를 대체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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