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과한 욕심과 중독성으로 빚어진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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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펜터민의 허와 실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뱃속에서 계속 개털이 나오고 있어요" 
"배에 큰 구멍이 뚫렸어요 선생님, 도와주세요"
 
공포·서스펜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사지만, 모두 같은 약을 먹은 사람들이 겪은 부작용입니다. 환청과 망상의 결과지요. '무슨 약이길래 이런 황당하고 괴이한 부작용을 초래하느냐'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의외로 이약은 심각한 질환을 치료하는 약이 아닙니다. 바로 살 빼는 약으로 잘 알려진 식욕억제제 '펜터민(Phentermine·성분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약 이야기 21회차(실패 없는 식욕억제제 복용법)에서도 펜터민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당시엔 부작용보다는 다이어트 실패담이 주 내용이었죠. 근데 이 약이 생각보다 많이 처방되고 심각한 부작용 사례도 적지 않더라고요. 부작용에 대해 다뤄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다이어트약'으로 가장 많이 처방되는 '펜터민'의 부작용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펜터민이 얼마나 많이 처방되는지는 주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펜터민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있다'고 답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의사들도 '살 빼는 약=펜터민'이라고 말할 정도죠. 누구나 이왕이면 쉽게 살 빼는 방법을 원하다 보니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어떤 약이든 부작용은 있게 마련입니다. 필연적인 요소죠. 흥미로운 점은 펜터민의 경우 대체적으로 부작용의 단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크게 3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단계는 비교적 가벼운 부작용입니다. 손떨림, 가슴 두근거림, 도취감, 불면증 등입니다. 복용 경험자 중에서는 "손떨림이 약 부작용이란 생각은 못했다" "밥을 안먹어서 손이 떨리는 건 줄 알았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원인 중 하나는 펜터민이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계열의 약이기 때문입니다. 암페타민은 과거 일부 연예인이 복용해 문제가 되기도 했죠. 암페타민은 일종의 마약입니다. 이를 정제해 의존성(중독성)과 내성을 줄인 것이 메스암페타민입니다. 펜터민은 메스암페타민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죠. 근데 메스암페타민이 각성제입니다.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흥분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 각성제의 흔한 부작용 중 하나가 바로 입맛이 떨어지는 건데, 여기서 착안해 식욕 억제 용도로 개발된 것이죠. 
 
2단계는 환청입니다.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소리가 귀에 들리는 거죠. 본인도 환청이라는 걸 압니다. "단순한 부작용을 넘어 이차성으로 정신과적 문제 수준까지 나타난다"고 말하는 시기입니다. 
 
3단계는 망상입니다. 환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고 느낍니다. 이 단계에는 본인이 비정상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단계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및 전문의들은 "실제로 펜터민을 복용하고 정신과 질환 증상으로 보호병동에 입원한 사례가 꽤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부작용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 환자
그러면 이런 심각한 부작용은 왜 생길까요.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중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암페타민 계열의 약이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현병이 자연적으로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는 질환이라면 펜터민으로 인한 부작용은 약물로 인한 것인 셈이죠. 그래서 환각, 망상 등 증상이 유사합니다. 
 
그러면 이 약물이 위험한 약물이냐. 그렇진 않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안전한 약"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펜터민 허가사항은 꽤 타이트합니다. 한번 처방 시 4주 이내로 처방하고 중단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부작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명시돼 있고요. 잘 쓰면 문제가 없는 약입니다. 
오히려 과거에 각종 심뇌혈관 질환 부작용으로 시장에서 사라진 식욕억제제 '리덕틸(성분명: 시부트라민)'에 비해 체중감량 효과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한 의사는 "리덕틸의 경우 (펜터민에 비하면) 살이 조금 빠지는 거다. 펜터민은 쭉쭉 빠진다"고 말하기도 했죠.
 

문제는 오히려 환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작용이 생겨도 의사에게 말을  합니다. 이 약을 먹기 시작한 이유는 다이어트죠. 체중 감량입니다. 이 목적이 강하다 보니 부작용을 감내합니다. 손이 떨려도 잠이 안 와도 약을 끊지 않습니다. 더 효과를 보려고 임의로 복용량을 늘리기도 합니다. 
 
시스템의 허점도 있습니다. 현재 의료시스템에는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이 있습니다. 함께 먹으면 안 되거나(병용 금기), 이약을 사용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많거나(연령 금기), 중복처방 한 경우 전산 시스템에서 처방이 차단됩니다. 하지만 펜터민을 한 번 처방받고 기존 병원의 의사가 “처방을 중단해야 한다”고 하면 환자는 다른 병원을 찾습니다. 약 쇼핑이 가능한 것이죠. "결국 부작용이 심각해져 입원하게 되는 환자 사례를 보면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약을 계속 처방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목적을 잊게 만드는 중독성 경계해야
여기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첫째는 요요현상이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경우입니다. 체중 감량은 운동과 병행해야 하는데 대부분 편하게 빼려다 보니 약만 먹는 데 그칩니다. 그러면 처방을 중단하거나 약을 끊었을 때 요요현상이 올 수 있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약을 처방받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다른 목적에 중독되는 경우입니다. 펜터민이 각성제 성분이다 보니 먹으면 정신이 또렷해집니다. 아침 식전에 먹으라는 이유도 밤에 잠을 못 잘까봐서죠. 평소보다 피곤하지도 않고 몸이 개운하다고 느낍니다. 기분도 살짝 업되죠. 이 느낌에 중독되는 겁니다. 
 
이 두 가지 경로로 인해 의사가 그만 먹으라고 해도 다른 병원에서 또 처방받게 됩니다.
 

약물은 그 특성상 약효가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면 그만큼 의존성과 내성이 생기기 쉽습니다. 약간의 부작용이 생겼다 싶으면 우선 약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약 복용을 중단하면 2~3주 내에 잘 회복됩니다. 다만 부작용의 단계가 환청 이상이라면 입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이 정도 단계에서는 약에 중독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과유불급입니다. 살을 빼려는 마음이 지나치면 자칫 내몸과 마음을 망칠 수 있습니다. 항상 부작용에 유의하면서 약은 정량을 정해진 기간 동안만 복용하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움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 교수,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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