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의사 눈길 사로잡은 '심장 반지'

인쇄

[인터뷰] 스카이랩스 이병환 대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반지'가 있다. 글로벌 제약사 바이엘은 2017년 세계 4대 스타트업 기술로 이 '반지'를 선택했다. 지난해 유럽심장학회(ESC) 연례학술대회(Digital Health Competition)에서는 심장전문의들이 투표한 원격 심장 모니터링 기기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주인공은 영국 등 해외에서 더욱 유명한 스카이랩스의 '카트(CART, Cardio Tracker)'.

스카이랩스 이병환 대표가 반지형 심장기능 측정기기  '카트(CART, Cardio Tracker)'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정렬 기자]

외형은 일반적인 반지와 비슷하지만,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초소형 탐지기기'다. 손가락에 흐르는 혈류량을 토대로 심장의 전기 신호와 심박 수, 산소포화도 등을 수집한다. 뇌졸중과 심부전의 주요 원인인 부정맥(심방세동) 등 심장질환을 사전에 감지, 예방하는 게 가능하다. 올해 첫 제품 출시를 앞둔 '카트'의 스카이랩스 이병환 대표를 만나 적용 기술과 향후 계획 등을 물었다.
 질의 : 왜 반지형 측정기기를 선택했나
응답 : “ 만성질환은 지속적인 관찰과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다.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모니터링 기기는 사용자가 조작하지 않아도 동작할 수 있어야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용자 조작 없이 연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광학센서(PPG 센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광학센서는 손가락에서 측정할 때 가장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 이런 이유에 더해, 시계보다 반지가 사용이 편리해 반지형 측정기기를 개발하게 됐다.”
 질의 : 심장질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응답 : “워낙 일을 좋아해서 밤을 새우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부정맥 증상이 발생했고, 병원 응급실도 여러 번 갔었다. 하지만 특별한 진단을 받지 못했다. 돌아보니 주변에도 부정맥 증상을 경험한 사람이 여럿이었다. 부정맥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말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유형의 부정맥인 심방세동은 40세 이상 4명 중 1명이 발생할 만큼 흔하다. 뇌졸중 발생 확률을 5배나 높이는데도 진단 확률이 50% 수준에 불과하다. 연속적인 관찰이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또 공적으로 심장질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앱과 연동된 '카트' 구동 모습. [사진 박정렬 기자]

 질의 : '카트'에는 어떤 기술이 적용됐나.
응답 : “ 보통 심장질환 진단은 ECG(Electro Cardiogram Sensor를 사용한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침대에 누워서 가슴과 팔에 전선을 붙이는 데 이것이 ECG다. 심장내과 전문의들에게 익숙한 장비이지만, 가슴에 부착하고 추가 조작이 필요해 사용자가 지속해서 사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카트'는 기존에 심박 수와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광학센서(LED, 포토다이오드(PD))를 사용한다. 광학센서는 몇 년 전부터는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에 쓰이고 있는데, 인체에서는 손가락과 귓불에서 가장 측정이 잘 된다고 알려져 있다. '카트'의 경우, 손가락에서 받은 PPG신호를 통해 심방세동을 포함한 부정맥을 탐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딥러닝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한다. 심장에 문제가 있을 광학센서의 데이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학습해 부정맥을 탐지하고, 잡음을 제거하거나 측정 상태가 안 좋은 신호를 구별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적용된다.”

   
광학센서로 심장 박동을 확인하는 원리는 이렇다. 심장은 24시간 쉬지 않고 뛰며 인체 구석구석으로 혈액을 내보낸다. 혈관을 흐르는 혈액은 심장의 움직임에 따라 양이 달라지는 데, 여기에 LED로 빛을 조사하고 포토다이오드로 남은 빛을 수신하면 혈류변화를 통한 심장 기능까지도 측정할 수 있다.

 질의 : 개발 과정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응답 : “ 초기에 광학센서를 이용해 심방세동을 탐지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알고리즘) 모두 참고할만한 기술과 제품이 거의 없었다. 사전 검증이나 비교가 어려웠다. 반지형 측정기기는 착용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크기에 탐지 정확도를 최대한 높이는 게 관건이다.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품과 기술 수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매 단계가 도전이었지만, 그만큼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출 수 있다.”
 질의 : 편리성, 정확도는 어느 정도인가.
응답 : “ 손가락에 착용하는 제품인 만큼 방수와 방진기술을 적용했다. 일상생활을 하기에 무리가 없다. 배터리는 한번 충전에 2일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 결과 정확도는 평균 99% 이상, 민감도 평균 99% 이상 나온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대한심장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됐고, 올해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미국부정맥학회 학술대회에서도 관련 내용이 소개될 예정이다.”
 
 질의 : 심장전문의와 협업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응답 : “ 심장박동 탐지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양질의 임상 데이터가 필요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고, 임상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여러 의견을 내줘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전기, 전자 기반 업체인 스카이랩스가 이렇게 의료 영역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의료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사가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심장 분야는 다르다. 심장내과 전문의는 평소에도 다양한 의료기기와 기술을 접하는 만큼 개방적이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인다는 걸 알게 됐다.”

제품 출시를 위해 스카이랩스는 '카트'의 초기 모델(오른쪽 아래)를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 [사진 박정렬 기자]  

 질의 : 시장 진출 전략은.
응답 : “ 헬스케어 사업 영역을 B2C/B2B로 구분한다. B2C는 환자 대상으로 한 만성질환 관리 사업을, B2B는 바이엘, 사노피와 같은 제약회사와 임상시험을 위한 솔루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B2C의 경우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다양한 헬스케어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나라로, 이곳의 국민은 필요한 의료기기에는 아끼지 않고 지갑을 연다. 특히, 부정맥에 관해 가장 교육이 잘되고 다양한 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영국을 사업의 중심점으로 삼아 접근하고 있다. 영국은 NHS 기반의 공공의료가 매우 발달한 국가인데, 스카이랩스는 NHS 중심의 다양한 의료 기관들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질의 : 국내 시장 진출 계획은.
응답 : “ 한국은 원격 모니터링 및 의료기기 허가에 제약이 있다. 그래서 병원과 연계해 디지털 헬스케어를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로 접근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를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유럽시장 중심의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한국 시장의 추이를 지켜볼 예정이다.”
 질의 : 향후 계획을 알려준다면.
응답 : “ 지난해까지는 심방세동과 부정맥에 연구를 집중했다. 올해부터는 심부전과 연속적인 혈압 측정, 수면무호흡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다양한 임상연구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다. 만성질환자와 병원을 잇는 '다리' 역할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관련 기사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