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생 시절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장기기증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이후 의사로 살아오는 동안 장기를 기증받아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을 직접 보게 되면서 장기 기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생전에 아버지께서 뇌 기증 의사를 어떻게 밝히셨나.
"아버지께 사후 뇌 기증에 참여하길 권하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2006년 2월 영문판으로 된 ‘사전의료의향서’에 서명하셨고 그 증서를 계속 보관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리신 지 7년쯤 됐을 때 임종에 대비해 내가 기증 신청을 하게 됐다. 사실 어머니께서도 사체 기증을 원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후 뇌 기증에 당연히 동의하셨다. 자녀들도 모두 동의했기에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뇌은행을 통해 뇌 기증 서약을 하는 절차도 어렵지 않았다."
-뇌 기증은 어떤 절차를 거쳐 진행되나.
"아버지께서 새벽 4시에 사망하셨다. 장례사에게 연락해 영안실을 구하고 시신을 영안실 냉동실에 모셨다. 오전 7시쯤 뇌센터의 뇌 기증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뇌센터에서 차를 보내줬다. 아버지 시신을 영안실에서 뇌은행으로 옮기게 됐는데 밤에는 시신을 옮기는 기사가 한 사람뿐인지 병원에서 영안실로 옮길 때도 같은 기사분이 오셨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에 시신을 병원에서 뇌센터로 바로 옮기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라도 주저 말고 뇌 기증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은행에서 반나절 정도 시간이 걸렸고 다시 영안실로 모셔 장례 절차를 진행했다. 뇌 기증을 했는지는 외부에선 전혀 알 수가 없는 구조였다. 아버지는 편안한 모습으로 이 세상과 이별하셨다. 뇌 기증으로 치매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아버지께서 새삼 큰일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 기증을 고려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뇌 기증을 하기까지 기관에서 진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절차가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일찍 신청하는 게 좋다. 뇌 기증자가 사망하면 즉시 뇌 기증 담당자에게 연락해야 한다. 뇌 기증을 하는 것은 죽은 후에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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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뇌 기증, 왜 필요한가
퇴행성 뇌질환의 증가가 사회적·경제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관련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고자 뇌은행이 설립됐다. 현재 동물의 뇌 조직을 이용한 연구만으로는 인간의 뇌질환에 대한 뚜렷한 원인 규명과 치료법 제시가 어렵다. 인간 뇌 연구 자원을 이용한 연구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은 퇴행성 뇌 질환을 두려워한다. 결코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사후 뇌 기증을 통한 뇌 질환 연구로 우리나라 뇌 건강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많은 뇌 질환은 현재까지 진단이 까다롭고 치료와 예방이 어려운 것으로 간주돼 왔다. 다행히 최근에 뇌 질환과 관련된 이상 단백질과 이들의 특성, 기능에 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뇌 질환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만일 어떤 질환에 특별한 이상 단백질을 측정해 진단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이는 퇴행성 뇌 질환의 치료기법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질병 정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료: 칠곡경북대병원 뇌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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