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가 될 각오를 하고 수술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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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명의 박정수 교수의 [병원에서 주워 온 이야기]

환자가 수술이 결정되면 의료진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이 환자가 전신마취 하에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마취 전 의료진이 중요하게 체크하는 것은 심장은 튼튼한가? 혈압은 ? 콩팥기능은? 폐기능은? 간기능은? 빈혈은 없나? 지혈문제는 없나? 등등 체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환자는 항의를 하기도 한다. "그냥 간단히 수술하면 될 걸 뭘 그렇게 검사 하는 게 많아?  병원이 돈 벌이에 혈안이 되어 쓸데 없는 검사하라고 하는 거 아냐?"

그런데 환자가 아무리 삐딱하게 생각해도 검사할 것은 해야 한다. 만약 수술 중 또는 수술 후에 예기치 못했던 나쁜 결과가 나오면 모든 책임을 의료진에게 묻기 때문에 의료진은 비용이 들더라도 검사를 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체크했는데도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면 요즈음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엄청 괴로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작년10월이었던가? 8살된 어린이에서 횡격막 탈장이 생긴 것을 제때에 진단하고 제때에 치료하지 못해 사망했다고 관련된 응급의학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법정구된 사태를 맞은 의료계는 엄청난 쇼크를 받아 앞으로 안심하고 진료를 못하게 되었다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진료과정에서 신이 아닌 이상 100% 정확하게 재깍재깍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현재 의료수준에서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생아도 아닌 8살 어린이에서 선천성횡격막탈장을 먼저 생각하고 진단과 치료에 임하는 의사는 흉부외과나 소아외과의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후천성으로 외상을 입어 횡격막이 찢어져서 생기는 외상성 탈장은 외상을 입은 병력이 없는 어린이에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초진 시 흉부사진을 판독한 영상의학과의사도 횡격막 탈장은 없고 늑막에 물이 고인 것으로 보였다고 하니 담당했던 의사들로서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횡경막 탈장을 놓쳐 사망했다고 의사를 인신구속한다는 것은 현행범이 아닌 의료인의 의권은 고사하더라도 개인의 인권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의료가 범범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인신구속을 보고 대다수 의료인들은 "이렇게 인명을 구하려다 못구했다해서 구속한다면 모든 의료인은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난감해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일선에서 수술을 하고 있는 외과의사 입장에서 "하~~, 이제는 범죄자가 될 각오를 하고 수술을 해야 하나? 이제 수술 칼을 놓을 때가 되었나 보다" 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다. (하긴 환자측 입장은 이와는 반대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수술한 60대 후반 남자 환자는 작년2월에 결절이 발견돼 7월에 세침검사로 유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찾아 왔다.

가지고 온 초음파 영상에는 세침검사한 오른쪽 1.24cm 결절 주위에 고만고만한 결절이 두개 더 있고 왼쪽에도 암이라고 진단은 안됐지만 비정형세포 결절이라고 한 것이 2개 더 있다. 이 결절은 모양으로 봐서 암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수술을 하기로 하고 수술전 검사를 했는데 아뿔사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거다.
심장에서 상행대동맥으로 피가 나가는 부위에 피가 역류되어 왼쪽 심실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에코 초음파 검사에서 좌심실에서 피를 내보내는 기능이 40% 밖에 안된단다. 좌심실벽의 심근경색도 의심된다고 한다.

9월 초에 입원해서 수술스케줄을 잡았는데 그만 마취과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도 중환자실에서 집중 감시 하에 케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중환자실의 여유가 없어 마취를 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횡격막 탈장 사건 이후 모든 의료진이 위험한 환자를 꺼리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할 수 없이 환자를 퇴원시키고 다음 기회를 보기로 했는데 그 기회가 오늘이 된 것이다. 물론 심장과에서 재검하고 마취과 의료진이 다시 체크해 위험하지만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을 주기는 했다.

외래의 오 코디네이터가 말한다.  "교수님, 그 환자분 참 점잖은 분이에요, 수술이 연기 된것에 대해 한마디 불평없이 기다려 주었어요"

"수술팀을 최상으로 구성해서  초스피드로 수술해야 할거야"
수술팀은 이용상 부교수를 제1조수로 하고, 마취과도 빈틈없이 준비해 전광석화로 갑상선전절제와 중앙경부청소술을 한다.

수술시간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고 깨끗하게 끝난다. 전공의에게 지시한다.
"심장에 과부하가 되지 않도록 수액 공급은 최소량을 유지 하도록 ......"
회복실의 환자 상태는 좋다. 환자에게 수술이 잘 됐다고 설명 해준다. 병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가족에게도 상황을 설명하고 중환자실에서 1~2일 집중 케어를 받을 것이라고 말해 준다.

전 의료진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술하고 수술 후 상태를 집중 체크하고 케어하는 의료 현장을 가족이나 일반인이 이해나 해줄 것인지, 인신구속 함부로하는 현재 분위기에서 앞으로 위험한 상태에 빠진 환자들은 누가 맡아서 치료를 할 것인지 걱정스럽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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