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잠이 보약'이라고들 합니다. 잠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몸이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른바 불면증입니다.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요인이나 시차, 불규칙적인 생활습관 등 환경적인 요인으로 생기기도 합니다. 일생의 1/4~1/3은 잠을 자는 데 쓴다고 하는데, 이 틀이 무너지면 삶의 질이 극도로 나빠지죠. 이때 떠올리게 되는 것이 바로 수면제인데요, 이번 약이야기에서는 수면제의 사용과 주의사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수면제라고 하면 불면증 치료, 즉 수면 유도 목적으로 개발된 약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 수면제는 여러 종류의 약이 쓰입니다.
첫째는 수면제입니다. 말 그대로 불면증 치료를 위해 개발된 약입니다. ‘졸피뎀’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건·사고 등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요, 사실 졸피뎀은 효과적인 수면제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수면제이기도 하죠.
둘째는 항불안제입니다.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입니다. 알프라졸람, 리보트릴, 아티반 등 여러 약물이 있습니다. 근육 이완 효과로 몸을 나른하게 하고, 항불안제다 보니 잠을 못잘 것 같은 두려움과 긴장을 줄여줍니다. 물론 수면 유도 효과까지 있습니다. 불면증 치료 시에는 저용량을 씁니다.
셋째는 항우울제입니다. 멀타자핀, 트라조돈, 독세핀, 아미트립틸린 등의 우울증약도 저용량으로 불면증 치료에 사용됩니다.
넷째는 멜라토닌제제입니다. 멜라토닌은 뇌에서 분비되는 생체 호르몬으로 잠들게 돕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수면 호르몬'으로도 불립니다. 뇌의 기능을 억제하는 약들과 달리 멜라토닌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수면을 유도합니다. 멜라토닌 수치가 낮은 사람에게 효과적입니다. 미국에서는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처방이 필요합니다.
여기까지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복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입니다. 일반의약품도 있는데요. 다섯째는 바로 항히스타민 계열 약물입니다. 감기나 멀미약에 많이 쓰이던 성분입니다. 복용 시 졸음이 오는 효과 때문에 수면 유도 목적으로도 사용됩니다.
불면증 종류에 따라 약도 달라진다
이들 약물은 의사가 환자의 증상과 상태에 따라 처방합니다. 불면증도 증상에 따라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불면증 하면 생각하는 잠이 못드는 입면장애, 자다 중간에 깨는 수면유지장애, 이른 시간에 깨서 잠이 오지 않는 조기각성장애입니다. 각각 잠에 들지 못하는 시점에 따라 초기, 중기, 말기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초기 불면에는 졸피뎀이 가장 많이 쓰입니다. 잠이 들게 하는 효과가 크고 효과지속시간이 짧기 때문이죠. 중기에는 항우울제로 개발된 약이 쓰이곤 합니다. 트라조돈과 멀타자핀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졸피뎀 중에서 오랜 시간 천천히 흡수되도록 서방정 형태로 나온 약이 처방되기도 합니다. 말기에는 트라조돈을 포함해 벤조디아제핀(항불안제) 중에서 반감기가 긴 약물이 많이 처방됩니다.
<알아둬야 할 상식>
모든 약이 그렇듯 수면제도 제대로 알고 복용해야 합니다.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나 오해가 많은 약이기도 하죠. 수면제를 복용하기 앞서 알아둬야 할 부분을 짚어보겠습니다.
▶수면제는 마취제가 아니다
당연한 얘깁니다. 하지만 수면제의 효과를 과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먹으면 바로 잠에 골아 떨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타고난 체질, 성격, 처한 상황에 따라 개인마다 약효가 차이 날 수 있습니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은 간에서 분해되고 혈관-뇌 장벽(BBB)을 통과하는 데도 개인차가 있고 뇌에 도달해서 수용체가 반응하는 데도 개인차가 큽니다. 그래서 전문의들도 수면제에 대한 과한 기대는 하지 못하게 설명합니다.
▶내성·의존성에 대한 과한 우려는 금물
수면제는 내성과 의존성(중독)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는 내성과 의존성이 있습니다. 졸피뎀은 처음엔 내성과 의존성이 없는 수면제로 각광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처방량이 늘면서 (벤조디아제핀보다는 적지만) 내성과 의존성이 생기는 환자가 더러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문의에 의해 처방과 모니터링이 이뤄지면 우려할 수준은 아닙니다. 수면제는 기본적으로 단기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부작용이 있으면 처방약을 교체하게 됩니다.
▶수면제보다 수면다원검사가 우선
불면증이 생기면 수면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면증은 다른 질환으로 인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2차 불면증이라고 합니다. 가령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우울증, 각종 질환으로 인한 통증 등이 원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원인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병원에 가면 수면다원검사를 것도 이 때문입니다. 수면다원검사의 경우 지난 7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돼 부담이 줄었습니다.
▶'술+수면제'는 독이다
술과 수면제를 함께 복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술은 그 자체로도 수면에 독입니다. 잠이 드는 덴 도움이 될 수 있어도 더 자주 깨고 깊은 잠을 방해합니다. 알코올 중독이 불면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알코올 의존성이 있는 사람의 경우 수면제 복용에 주의해야 합니다. 알코올에 의존이 생긴 사람은 수면제에도 의존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병원에서도 수면제 처방과 함께 술을 줄이거나 끊는 것을 권고합니다.
▶수면제 복용과 치매 위험의 연관성은 있다고 볼 수 없다
한때 수면제를 장기간 먹으면 나이 들어 치매가 생길 위험성이 커진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특히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수면제가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의학계에서도 논쟁이 있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불면증 자체가 뇌의 회복 기능을 떨어뜨려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로 수면제를 지속 복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뇌 PET 영상을 찍어보니 치매 원인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이 복용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도움말: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영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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