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유방암 걱정에 호르몬 치료 미루다 더 후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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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폐경기 호르몬 치료, 오해와 진실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중년 여성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폐경입니다. 폐경은 급격한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유발해 여성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예전에는 폐경기 증상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해 참아 넘겼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인생의 3분의 1이 폐경기 이후의 삶이 됐습니다. 무작정 감내하기엔 건강과 삶의 질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호르몬 치료의 발전으로 폐경기 증상을 완화하고 폐경이 유발하는 질병의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작용 걱정 때문에 치료를 꺼린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오해로 치료를 기피하는 건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약 이야기 주제는 ‘폐경기 호르몬 치료, 오해와 진실’입니다. 
 

폐경은 난소가 노화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분비가 줄면서 월경이 정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성은 보통 50세 전후 폐경에 이릅니다.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몸에서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우선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하고 질과 방광의 점막을 보호합니다. 또 뼈를 튼튼하게 해 골밀도를 높이고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는 데 기여하죠. 복부에 지방이 쌓이는 걸 막아주는 것도 에스트로겐입니다.
 

폐경 후 골다공증·심혈관질환 적신호 켜져
폐경이 되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감해 신체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초기에는 안면 홍조, 땀, 불면증,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 증세가 나타나죠. 2~3년이 지나면 비뇨생식기계에 적신호가 켜집니다. 질과 요도가 건조해져 성관계할 때 통증이 심하고 방광 기능이 약해져 소변을 자주 보게 됩니다. 5~6년 후에는 뼈 형성이 잘 안 돼 골다공증 발생이 증가합니다. 혈관 보호 기능도 떨어져 심혈관질환 위험이 커지고 복부 비만을 유발합니다.
 

이때 할 수 있는 의학적 조치는 호르몬요법입니다. 폐경기 질병을 예방·치료하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체내에 인공적으로 주입하는 치료법입니다. 호르몬 치료는 먹는 약, 바르는 약, 질 속에 넣는 약 등 형태가 다양한데요, 요즘에는 먹는 약이 간편해 가장 많이 쓰입니다.
 
호르몬요법은 자궁이 있는 여성과 없는 여성(자궁절제술을 받은 여성)에 따라 치료 방식이 달라집니다. 자궁이 있는 여성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함께 쓰는 병행요법, 자궁이 없는 여성은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씁니다. 프로게스테론은 에스트로겐처럼 난소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입니다. 에스트로겐은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하기 때문에 자궁내막암 발생 위험이 있는데요, 그래서 자궁이 있는 여성에게는 자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프로게스테론을 함께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폐경 초기에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면 증상 완화는 물론 노년기 여성 건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암 위험성 과장…전체 사망률 낮춰
호르몬요법의 순기능에도 이것이 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치료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호르몬요법이 유방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우려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시발점이 된 건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 폐경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WHI 연구’입니다. 2002년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된 연구결과(연구 기간: 5.2년)에 따르면 병행요법을 했을 때 유방암 발생 위험도가 약을 먹지 않은 사람에 비해 26%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수치는 불규칙한 수면 습관이나 밤샘 작업, 체중 증가(4㎏ 이상)가 유방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보다 작은 위험도입니다. 반면에 단독요법에서는 유방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디어에서는 ‘유방암 증가’란 키워드를 부각시켰고 그 여파로 호르몬 치료제 사용이 전 세계적으로 급감하기에 이르죠. 
 
유방암 논란 이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 전문가들은 위험성이 과장됐다고 입을 모읍니다. 근거는 뭘까요. WHI 연구가 발표된 후 후속·확장 연구가 꾸준히 진행됐는데요, 이들 연구에서 논란을 잠재울 만한 결과가 잇따라 도출됐기 때문입니다. 2004년 JAMA에 발표된 논문(연구 기간: 6.8년)에 따르면 단독요법을 했을 때 유방암 발생 위험도가 약을 먹지 않은 사람에 비해 23% 낮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단독요법을 쓰는 여성은 유방암 발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죠.
 
호르몬요법의 득실을 판단하는 가장 정확하고 중요한 지표는 전체 사망률일 것입니다. 지난해 JAMA에는 WHI 연구의 종합판 격인 논문이 실렸습니다. 연구결과(연구 기간: 18년)에 따르면 호르몬 치료를 가장 많이 하는 50~59세 폐경 여성이 호르몬 약을 복용하는 동안 유방암·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그 약을 먹지 않은 사람에 비해 31% 낮았습니다. 게다가 약을 중단한 뒤 10년이 지났을 때까지 사망률(11%)이 낮게 유지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8년의 누적 추적·관찰 기간 동안에는 앞선 암 발생 위험성이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론인 것이죠. 전문가들이 적어도 유방암이 무서워서 호르몬 치료를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증상 발생 초기에 치료 시작해야 효과 커
최근에는 호르몬요법이 위험성과 유익성을 두루 고려한 개별 맞춤 치료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어떤 치료 전략이 필요할까요. 호르몬요법은 폐경 후 언제 시작하느냐가 핵심입니다. 폐경 증상이 나타나자마자 시작하는 게 효과가 가장 좋습니다. 또 증상이 심한 사람일수록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60세 이상 여성(치료 시작 시점) ▶유방암·자궁내막암 진단을 받은 여성 ▶동맥경화·뇌졸중 같은 심각한 심혈관질환이 있는 여성은 호르몬 치료를 권하지 않습니다.
 

약은 복용 한 달 후부터 증상이 줄기 시작해 6개월이 되면 거의 사라집니다. 복용 초기에는 유방이 팽창하는 느낌이 들고 통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전신이 붓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의사와 상의해 약의 종류를 바꾸면 대부분 증세가 사라집니다. 복용 기간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보통은 5년 이상 복용한 후 약을 잠시 끊게 한 다음 증상이 나타나는지 확인해 지속 여부를 결정합니다. 
 
모든 폐경 여성이 호르몬 치료의 대상은 아닙니다. 증상의 정도와 정확한 진단을 거쳐 치료 여부를 결정하죠. 부정확한 정보 때문에 혼자 끙끙 앓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더 손해입니다. 의사의 관리 하에 이뤄지는 적절한 호르몬 치료는 노년기 건강과 삶의 질에 도움을 준다는 점 잊지 마세요.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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