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배란 유도제, 남성 난임 치료에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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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남성 난임 치료약으로서 클로미펜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배란 유도제인 '클로미펜(clomiphene)'은 난임 여성이 가장 많이 처방 받는 약으로 꼽힙니다. 성숙한 난자 배출을 도와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죠. 그런데 이런 클로미펜이 난임 남성 치료에도 활용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지난해부터 남성 난임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하며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 약 이야기에서는 남성 난임 치료에 클로미펜 효과와 한계점을 알아봅니다.
 

우선 배란 유도제가 어떻게 남성 난임을 치료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먼저 뇌와 호르몬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데요, 는 남녀 모두에서 성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습니다.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기(남성은 고환, 여성은 난소) 순서로 신호를 전달하며 성호르몬을 늘리거나 줄이죠.

예컨대 성호르몬이 줄면, 뇌의 시상하부가 이를 인지하고 뇌하수체의 ‘신호’인 황체형성호르몬(LH)과 여포자극호르몬(FSH) 분비를 늘립니다. LH와 FSH는 남녀 생식기에 작용해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여성은 에스트로겐 등 성호르몬과 정자·난자 생성을 유도하게 되죠. 음식에 비유하면 요리사에 따라 같은 재료(LH, FSH)로 다른 음식(성호르몬. 생식세포)을 만드는 셈입니다.
 
클로미펜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구조가 비슷합니다. 에스트로겐이 작용하는 세포 표면에 대신 결합하죠. 이렇게 되면 에스트로겐이 정상적으로 분비되고 있는데도, 뇌는 이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부족하다고 인지합니다. 에스트로겐을 더 많이 만들도록 뇌하수체를 자극LH와 FSH를 분비량을 늘리게 됩니다.
 
여성의 경우 LH·FSH가 난소를 자극하면 여성호르몬이 증가하고 성숙·배출되는 난자가 늘어납니다. 남성은 어떨까요? 남성도 여성보다는 적지만 체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존재하고, 클로미펜을 복용하면 LH와 FSH의 분비량이 증가합니다. 근데 이들 호르몬이 작용하는 곳이 난소가 아닌 고환입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늘고 정자가 더 많이 만들어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배란 유도제인 클로미펜이 남성 난임을 치료하는 원리입니다.
 

남성 난임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정자의 수가 적고, 운동성이 떨어지는 등 정자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입니다. 둘째는 정자는 문제가 없는데 통로가 막혀 배출이 잘 안 되는 경우죠. 클로미펜은 전자처럼 정자 자체에 문제가 있는 남성, 즉 과소약정자증(정자의 숫자가 적고 운동성이 감소된 상태)이나 비 폐쇄성 무정자증(통로가 막히지 않았는데 정액 내 정자가 없는 상태) 등의 치료에 쓰입니다. 지난해부터는 이들 질환에 클로미펜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돼 비용 부담도 줄었습니다.
 
이론적으로 클로미펜을 복용하면 임신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정자의 수가 늘면 건강하고 운동성 좋은 정자가 있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난자와 만날 가능성도 크겠죠. 인공 수정, 체외 수정(시험관아기) 등 난임 시술 전 시도할 수 있어 배우자인 여성의 심리·육체적인 부담도 덜 수 있습니다. 호르몬 주사보다 부작용도 적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체내 호르몬은 뇌에 의해 조절됩니다. 정자 형성을 위해 외부에서 FSH나 성호르몬을 주입하면, 뇌의 호르몬 조절 기능이 저하되고 결국 고환 기능도 떨어집니다. 반면 클로미펜은 LH와 FSH를 동시에 분비하게 하고, 자신의 고환 기능을 활용하는 방식이라 이럴 위험이 적습니다.
 

클로미펜의 치료 효과는 임상 연구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2010년 카이로대학 연구팀이 평균 나이 31.8세인 남성 난임 환자 60명을 절반씩 나눠 한 그룹은 클로미펜 25mg과 항산화제인 비타민E 400mg을 복용하게 하고, 다른 그룹은 모양과 색이 똑같은 약을 먹게 한 뒤 6개월 동안 추적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클로미펜을 먹은 그룹은 36.7%가 임신에 성공했지만 먹지 않은 그룹은 임신 성공률이 13.3%에 그쳤습니다. 클로미펜 복용 그룹은 미복용 그룹보다 정자 수와 정자 운동성이 높았습니다.
 
이어 카이로대학 연구팀은 2015년, 남성 난임 환자 90명을 대상으로 클로미펜과 비타민E의 난임 치료 효과를 비교한 연구를 진행해 유럽비뇨의학회지(EAA)에 발표했습니다. 대상자를 모두 세 그룹으로 나눠 첫째 그룹은 비타민E 400mg만, 둘째 그룹은 클로미펜 25mg만, 셋째 그룹은 비타민E와 클로미펜을 함께 먹게 한 뒤 정자의 수와 운동성을 비교한 겁니다. 초기 검사에서 정자 수는 ml당 748~787만개, 운동성 있는 정자 비율은 21~23%로 세 그룹이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 후 정자 수와 운동성은 비타민E만 먹은 그룹이 각각 ml당 857만개와 28.07%, 클로미펜만 먹은 그룹은 ml당 1068만개와 33.33%, 이 둘을 같이 먹은 그룹은 ml당 1265만개와 40.5%로 개선되는 정도가 달랐습니다. 항산화제와 클로미펜을 같이 먹는 게 효과가 가장 컸습니다.
 

하지만, 남성 난임에 클로미펜의 한계도 분명 존재합니다. 첫째, 클로미펜이 임신 확률을 높인다는 과학적 근거가 아직 부족합니다. 2012년 국제학술지 ‘생식과학’에 종전에 클로미펜과 임신 성공률을 다룬 연구 9편을 분석한 리뷰 논문이 실렸는데요, 대부분에서 정자 수 증가는 확인됐지만 카이로대학의 2010년 논문 외에는 통계적으로 클로미펜 복용이 임신 확률을 높인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클로미펜이 정자 운동성 향상, 비정상적 정자 수 감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둘째,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상대적으로 깁니다. 여성과 달리 남성은 적어도 3개월 이상 클로미펜을 하루 한 알씩 먹어야 합니다. 고환에서 정자가 생성·배출하는데 90일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후에도 자연 임신에 성공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부부, 특히 고령의 여성에게는 부담되는 시간이죠.
 
반면 난임 진단·치료 장비가 발전하면서 인공 수정이나 체외 수정의 성공률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난임 부부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돼 경제적인 부담도 줄었죠. 이런 난임 시술은 건강한 정자만을 골라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클로미펜을 복용하지 않아도 결과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남성 난임에 클로미펜이 처방되는 경우가 아직 드문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난임 치료를 위해 여성보다 남성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생식기관이 외부에 노출돼 있고, 호르몬 분비가 주기에 따라 변하지 않아 진단·치료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죠. 임신 준비에서도 남성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금주·금연은 기본입니다. 과도한 지방은 호르몬 교란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양 섭취도 신경 써야 합니다. 임신 3개월 전부터 엽산과 아연, 항산화제인 비타민C·E를 충분히 섭취하면 태아의 기형 가능성이 낮아지고, 정자가 건강해져 임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도움말: 고대 구로병원 비뇨의학과 문두건 교수. 고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김용진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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