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 당뇨약이 비만약으로? 유행처럼 번지는 ‘GLP-1 유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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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비만약 알고 사용하기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혹시 독자분 중에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최근에 한 번쯤 들어봤거나 조만간 듣게 될 약이 하나 있습니다. '삭센다'라는 약입니다. 이 약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급속도로 처방이 늘고 있는데요. 기존에 나왔던 비만약과 성분, 작용 원리가 전혀 달라 관심이 더욱 뜨겁습니다.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이 약의 기능에서 핵심적인 물질인 'GLP-1', 그리고 이 물질을 이용한 약인 'GLP-1 유사체'와 그 안전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당뇨병 치료하다 체중 감량 효과 확인
'GLP-1(글루카곤양펩티드-1)'은 원래 장에서 분비되는 일종의 호르몬입니다. 장이 음식물로 자극을 받으면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분비되는 아주 강력한 인슐린 분비 자극 호르몬입니다. 인슐린 얘기가 나오면 떠오르는 질환이 하나 있죠? 바로 당뇨병입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당뇨병은 신체 내에서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분비나 기능 장애로 인해 혈당이 높아지는 질환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비만약도 원래는 당뇨병치료제(빅토자)입니다. 체내 GLP-1의 양을 늘려 인슐린이 더 많이 분비되고 결국 혈당을 낮추는 원리입니다. 단, 이 약은 정확히 말하면 몸속의 GLP-1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몸속 GLP-1은 혈중에 있어도 금방 분해(반감기 2분)되기 때문에 약으로 개발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연구 끝에 GLP-1과 기능은 같으면서 체내에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된 것이죠. 그게 바로 'GLP-1 유사체' 입니다.
 
당뇨병치료제가 어떻게 비만약이 됐을까요. 그 스토리가 재밌습니다. 당뇨병치료제와 이 비만약 모두 인슐린 주사 같은 주사제입니다. 복부에 환자 본인이 피하주사 형태로 맞습니다. 경우에 따라 허벅지나 상완(어깨)에 놓기도 합니다. 근데 당뇨병 환자들이 당뇨 치료를 위해 이 약을 계속 맞다보니 체중이 줄더라는 겁니다. 연구자들은 용량을 조금 높여(당뇨 치료 1.8mg, 비만 치료 3.0mg)봤습니다. 그랬더니 식욕억제 효과가 더 커지더라는 겁니다. 현재 유명한 탈모치료제인 '피나스테리드(상품명: 프로페시아 등)'도 사실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치료 과정에서 탈모 증상이 개선되는 것을 발견해 적응증이 확대된 경우입니다.
 

위장관 운동, 식욕 억제하는 GLP-1
약의 재발견인 셈이죠. GLP-1의 기능 때문입니다. 기능은 여섯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인슐린 분비 증가입니다. 둘째는 췌장의 내분비 조직인 랑게르한스섬을 구성하고 인슐린을 생성·분비하는 'β(베타)세포'의 분화와 증식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글루카곤 분비 억제입니다. 글루카곤은 인슐린과 반대 작용을 하는 호르몬으로 체내 떨어진 혈당을 끌어올립니다. 즉 이 세 기능은 당뇨병 치료만 연관돼 있죠.
 
나머지 세 가지 기능이 바로 비만약으로서의 가치를 높입니다. 소화기관의 운동을 억제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소화기관 중에서도 특히 위장 운동을 억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장 운동이 활발하지 않아 영양소의 흡수가 지연됩니다. 한마디로 소화가 덜 되는 것이죠.
 
식욕 억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집니다. 뇌의 식욕 중추에 작용해 포만감은 빨리 일으킵니다. 반면 배고픔은 빨리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배고픔은 덜 느껴지게 하면서 음식을 먹으면 빨리 배부르게 하는 것이죠.
 
효과는 어떨까요. 일반적으로 체중의 5%는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굳이 힘들게 운동하지 않아도 저절로 식욕이 줄고 식사량이 줄면서 살이 빠진다니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더구나 다이어트 최대 장애물인 '공복'을 견디기 쉽게 해준다니요.
 
근데 효과 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 안전성입니다. 전문가들이 이 비만약과 관련해 벌어지는 과열현상을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저혈당 문제는 없어…췌장·담석 질환은 주의해야
우선 많은 분들이 궁금할 만한 것이 저혈당일텐데요. 당뇨병치료제로 쓰이던 약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려할 부분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매우 안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약 특성상 혈당이 높을 때만 낮추는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단, 1형 당뇨병 환자의 경우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어 처방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두 번째는 췌장염·췌장암 위험입니다. 사실 이 약과 췌장염·췌장암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연구들이 발표되긴 했습니다. 이는 당뇨병치료제로서의 연구인데요, 이 약에 대해서만 위험성이 제기되는 건 아닙니다. 다른 당뇨병치료제인 DPP-4 억제제 역시 같은 문제가 제기됐고 GLP-1 유사체의 위험성이 이보다 유의하게 높진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당뇨병 자체도 췌장염 위험을 일반인의 3~5배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임수 교수는 "췌장염·췌장암 위험을 아예 무시할 순 없다"면서 "위험성에 대한 보고가 일부 있으니 주의를 하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박철영 교수는 "당뇨병 환자와 달리 당뇨병이 아닌 정상인을 대상으로 한 대단위 시험 경험이 없다"면서 "당뇨병 환자에서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정상인에서도 그렇다곤 할 수 없다. 어떤 문제가 생길진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갑상선수질암이나 담낭·담도 질환 위험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실제 당뇨병치료제로 쓰일 경우 2~3%에서는 담석이나 담도염이 생기기도 한다네요. 
 

적응증 외 처방, 중고거래 가장 큰 문제
세 번째는 무분별한 사용입니다.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너도나도 살을 빼기 위해 'GLP-1 유사체'를 찾는 일이 생기는데요.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처방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원래 비만치료제로서 'GLP-1 유사체'를 처방받으려면 ▶체질량지수(BMI)가 27이상이면서 대사위험(당뇨병, 당뇨 전단계, 고혈압, 고지혈증 등) 중 하나 이상 동반된 경우 ▶BMI 30 이상 ▶18세 이상이어야 합니다. 특히 ▶1형 당뇨병 환자 ▶만 18세 미만 ▶임산부와 수유부▶갑상선 수질암의 가족력 등은 금기사항으로 돼 있습니다.
 
대상이 아니면서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해 이 약을 처방받을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요. 전문가들도 이 부분을 우려합니다. 임수 교수는 "식약처가 허용한 적응증 안에서 치료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면서 "살이 빠질수록 좋다고 생각해 대상이 아닌 사람이 이 약을 맞게 되면 과도하게 체중이 빠지면서 담석, 골다공증, 생리불순 등 저체중으로 인한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분별한 사용의 또 다른 부분은 중고거래인데요. 실제 처방 받아 사용하던 사람이 인터넷 중고시장에 주사제를 내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이 주사제가 전문의약품인 만큼 이런 행위는 엄연히 불법입니다. 게다가 남이 사용하던 주사제를 사용할 경우 감염 위험이 있습니다. 박철영 교수는 이 약을 여러 사람이 같이 쓰면 절대로 안 된다. 권고사항이 명시돼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주사 후 역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임수 교수도 "주사제를 사용하다 안에 이물질이 들어갈 수도 있고 그 사람이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에이즈 환자라면 (주사제 공유를 통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며 "남의 주사제를 갖다 쓰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삭센다'는 미 식품의약국(FDA)와 유럽 식약청(EMA),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모두 승인한 약입니다. 효과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철영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만치료제로 유명했던 '리덕틸(식욕억제제)'이라는 약이 있었죠. (지금 삭센다와 관련한 분위기도)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열광했지만 결국은 퇴출됐죠." 아무리 효과가 좋고 사람들이 다들 좋다고 권하더라도 무분별한 사용은 언제나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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