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염색약 안전할까? '빠른 염색' 강조하면 의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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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염색약의 안전성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나이가 들면 매달 해야 하는 게 있지요. 바로 새치 염색입니다. 흰머리가 멋있다며 그냥 놔두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들어 보인다는 말에 다시 염색약을 집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새치 염색을 할 때마다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염색약이 몸에 해롭지 않을까, 건강에 문제는 없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늘 궁금했던 염색약의 안전성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흰머리를 검은 머리로 감추기 위해서 쓰는 염색제는 보통 1제와 2제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를 섞어 반죽해 염색약을 만듭니다. 1제에는 암모니아(알칼리제)와 색을 입히는 염료(p-페닐렌디아민, p-톨루엔, m-페닐렌디아민 등)가 들어 있고, 2제에는 과산화수소(산화제)가 들어있습니다.
 
염색약을 바르면 1제의 암모니아가 우선 모발의 모표피층을 팽창시켜 조직을 느슨하게 합니다. 그러면 염료가 표피 속으로 침투합니다. 이때 과산화수소수가 모발의 멜라닌 색소를 산화시켜 탈색을 일으키고, 탈색된 자리에 염료가 완전히 착색됩니다.
 

PPD 든 염색약 조심해야...가려움·부종·발진 부작용 많아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1제의 대표적인 염료제인 ‘P-페닐렌디아민(이하 PPD)’입니다. 항원성이 매우 강해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 두피질환, 부종, 탈모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돼 있습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다수의 염색제에 이 PPD가 들어 있습니다. 식약처 허용 기준치 이하이긴 하지만 예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실제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염색약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는데요, 2009년에는 94건, 2010년 105건, 2011년 190건으로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작용 유형으로는 가려움 19.1%, 부종 12.7%, 발진 8.4%, 홍반 7.4% 등 접촉성 피부염 증세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탈모, 피부변색, 화상 등의 후유증도 있었습니다. 부위로는 두피가 46.3%로 가장 많았지만 얼굴 25.4%, 눈 10.2%로 다른 부위도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 화학성분들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에 이른 사례도 있었죠.
 

이런 경우 빨리 대증요법을 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려움, 발진, 홍반 등이 나타날 때는 일단 차가운 수건 등으로 부위를 가라앉힙니다. 약국에서 알레르기 증상 완화제(지르텍 등)를 구입해서 복용하면 증상이 조금 더 빨리 가라앉습니다. 피부가 변색됐을 경우에는 대부분 2~3일 가량 놔두면 자연히 없어지는 것도 있기 때문에 두고 봐도 됩니다.
 
탈모 증상이 생겼을 해당 염색제 때문이 아닐 수도 있으니 지켜봅니다. 보통 염색약으로 탈모가 생기면 가려움증과 발진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종의 경우 눈이 가장 먼저 붓는데, 심하면 얼굴 전체가 퉁퉁 부을 수도 있습니다. 얼음찜질을 해주되, 부종의 범위가 자꾸 커진다면 빨리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일단 스테로이드 연고 등으로 급한 불을 끄고 피부를 보호하는 치료를 받게 됩니다.
 

PPD 이외에 5-디아민·황산톨루엔-2도 조심해야
보통 이런 부작용은 가볍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염색할 때마다 증상이 반복된다면 PPD가 든 염색제 사용을 중단해야 합니다. PPD는 방광암 유발 가능성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이동현 교수는 “PPD의 독성 성분이 소변 노폐물에 모여 방광에 머무르는 동안 방광 세포의 변이를 유발한다는 보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광과 신장 계열 암 가족력이 있었던 사람도 PPD가 든 염색제를 피해야 합니다.
 
PPD의 포함 여부는 염색약 뒷면 성분표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P-페닐렌디아민’, 또는 ‘PPD’가 표기돼 있으면 구입하지 않습니다. 미용실에서 염색할 경우에도 PPD 포함 여부를 확인한 후 다른 제품을 요구하면 됩니다.
 
그러나 PPD 말고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염료가 있습니다. 5-디아민, 황산톨루엔-2, M-아미노페놀, 암모니아, 2-메칠-5히드록시에칠아미노페놀, 메칠아미노페놀, N’-비스(2-히드록시에칠)-p-페닐렌디아민설페이트, 프로필렌글라이콜 등입니다. 아름다운나라피부과 서동혜 원장은 “PPD 보다는 가려움, 부종, 홍반 등의 알레르기 증상이 조금 약하긴 하지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알려진 물질들”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화장품 등을 썼을 때 예민 반응이 자주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이런 염모제가 든 염색약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연염색제 헤나, 모발 튼튼하게 하지만 염색 과정 번거로워
그렇다면 어떤 염색제를 써야 할까요. 화학약품이 없는 천연염색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헤나’입니다. 헤나는 열대 관목인 로소니아 이너미스(Lawsonia Inermiss)의 잎을 말린 것을 가루로 만든 염색제입니다. 로소니아 이너미스가 모발 속 케라틴 단백질과 결합해 탈색 없이도 염색을 가능하게 하는 겁니다. 로소니아의 주성분이 모발의 케라틴 단백질과 성분에 잘 융합되는 특징이 있고 향균, 항염 작용을 해 두피 질환 치료에도 쓰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제 헤나로 염색하면 머리카락에 광택이 나고 각질 등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 유통되는 수백 종의 염색제 중 100% 헤나로만 이뤄진 것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90%는 헤나염료 조금에 다른 화학염모제를 섞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천연헤나라고 광고하는 제품도 성분 표기를 보면 PPD가 적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헤나 제품을 구입할 때는 제품 뒷면 성분 표기에 이런 화학물질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고 구입해야 합니다.
 
헤나 제품을 고를 땐 ‘10분 만에 염색’, ‘빠른 염색’ 등의 광고 문구가 있는 제품은 사지 않는 게 좋습니다. 헤나 성분만으로는 빠르게 염색할 수 없습니다. 염색제를 바르고 최소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합니다. 1시간 이내로 염색 된다고 하는 제품은 한번쯤 의심해봐야 합니다. 또 가격이 지나치게 저렴해도 의심해야 합니다. 헤나 원료가 적게 들어갈수록 제조 단가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헤나 염색의 경우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염색이 매우 번거롭습니다. 염색약을 바르고 오래 있을수록 염색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헤나를 바르고 2시간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또 한 번에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습니다. 헤나로 처음 염색한 경우에는 첫 염색 후 3일 뒤 다시 한 번 더 염색해야 어느 정도 짙은 색이 나옵니다.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최소 5번은 연속으로 염색해야 원하는 풍부한 색감에 도달합니다. 또 흰머리를 갈색이나 어두운 색으로 염색할 수는 있지만 짙은 색에서 밝은 색으로 염색할 수는 없습니다.
 
오징어나 낙지 먹물을 넣었다는 염색제는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오징어먹물은 모발을 염색시키는 염모제의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오징어의 먹물의 분자는 모발 표피 사이 틈인 0.6나노미터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오징어먹물로 염색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해 식약처에서도 염색 효과가 없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두피 건강과 안전한 염색을 위해서는 염색약을 꼼꼼히 따져보는 습관이 필요해 보입니다.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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