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노인 건강 악화 위험 2.13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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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팀 보행 속도와 건강 악화 연관성 분석

나이가 들어 보행 속도가 느려지면 노화가 심해져 건강 악화 위험이 2배 이상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 장영일 전임의, KAIST 정희원 박사 연구팀은 강원도 평창군 보건의료원과 함께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평창군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1348명(남자 602명, 여자 746명)을 대상으로 보행 속도에 따른 건강 변화를 관찰했다. 이 기간 동안 23명은 사망하고 93명은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6세다.

그 결과 보행 속도가 느린 노인의 사망률은 정상그룹의 2.54배, 요양병원 입원율은 1.59배였다. 이 둘을 포함해 전반적인 건강 악화 위험도는 정상그룹의 2.13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전체 노인을 보행 속도에 따라 일렬로 세워놓고 하위 25%에 해당하는 그룹을 보행 속도가 느린 그룹으로 분류했다. 보행 속도가 느린 그룹의 보행 속도는 남성은 0.663m/s, 여성은 0.545m/s였다. 분당 남성은 40m, 여성은 32m 이동하는 셈이다. 

보행 속도는 신체 노화를 살피는 핵심 지표다. 엉덩이·허벅지·종아리 등 이동에 필요한 하체의 근육량이 줄면서 보행 속도가 떨어진다. 연구팀은 평소 보행 속도가 느리면 건강이 악화해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장영일 전임의는 “같은 나이·건강상태라도 잘 걷지 못하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평창군 노인의 보행 속도가 국제 기준 상 느리게 걷는다고 판단하는 보행 속도보다 더 느리다는 점이다. 국제적으로는 초당 0.8m(분당 48m)이하로 이동하면 보행 속도가 느리다고 본다. 하지만 평창군 노인의 보행 속도는 국제 기준의 3분의 1정도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느리게 걷는 만큼 횡당보도를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도 어렵다. 신호에 맞춰 걸어도 도로 위에서 갇혀 버릴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기본시간 7초에 1m당 1초를 적용한다. 4차로 횡단보도(10m)의 신호 시간은 17초다. 제시간에 건너려면 평균 0.588m/s로 걸어야 한다. 8차로는 27초(0.741m/s), 12차로는 37초(0.811m/s)가 필요하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평창군 남성 노인은 4차로 도로는 무난히 건널 수 있지만, 8차로·12차로는 도로를 다 건너기 전에 신호가 빨간 색으로 바뀐다. 여성은 4차로 도로조차 제 시간에 다 건너지 못한다. 12차로는 도로를 절반 정도 이동했을 때 신호가 변한다. 이은주 교수는 “한국 노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걷는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노인의학 분야의 국제학술지인 ‘임상노화연구(Clinical intervention in Aging)’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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