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약의 배신... '최고의 약'이 '살인자'로 전락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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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약을 맹신하면 안되는 이유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우리나라는 '약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감기약 처방약 가짓수 차이가 이슈가 되기도 했었죠. 아프면 무조건 약을 찾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약을 먹는 사람이나 (지어)주는 사람이나 약에도 '다다익선' 개념이 강했습니다. 지금은 정부가 약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 처방약 가짓수를 평가·공개하면서 이런 인식은 개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에 대한 경각심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건강을 자신하거나 다 나았다고 생각해 약을 임의로 끊거나 멀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약을 너무 신뢰하거나 의존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지난 코너에서 간간히 짚어보기도 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바로 '약의 배신'입니다.
 

약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본래 목적은 그렇죠. 하지만 약은 그 자체로 위험성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한 사례를 볼까요? 199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진통소염제가 있습니다. 이 약이 안전할 뿐 아니라 효과도 뛰어나다고 본 것이죠. 실제로 이 약은 기존 진통소염제에 비해 약효가 빨리 나타나고 오래 갔습니다. 기존 약들이 갖고 있던 속쓰림·위출혈 같은 부작용도 크게 줄였습니다. 당연히 시판 후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시판 첫 해 미국에서만 4900만 건에 달하는 처방전이 발행됐다고 합니다. "금세기 최고의 상품" "아스피린 이후 가장 획기적인 진통소염제"라는 찬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근데 5년여 후인 2000년대 초반이 되자 이 약을 두고 이상반응 사례가 늘기 시작합니다. 관절염 치료를 위해 이 약을 먹은 환자에서 심장발작,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급사 사례가 발생한 것이죠. 당시 이 약으로 인해 3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약은 결국 2004년 시장에서 퇴출됐습니다. 유명한 ‘바이옥스(vioxx)’라는 약이 걸어온 길입니다.
 

약의 의미…'약≠안전' '득>실'
기본적으로 약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만큼 꼼꼼하게 관리합니다. FDA·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승인합니다. 게다가 하나의 의약품이 개발되기 전에는 먼저 세포독성 시험과 동물실험을 거칩니다. 그래야 비로소 임상시험에 돌입할 수 있습니다. 임상시험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검증하는 1상, 해당 질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하고 용량을 결정하는 2상, 대규모 임상시험인 3상으로 진행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합병증 등 뜻하지 않은 영향을 걸러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임상시험에서는 모든 사람의 특성을 고려·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죠.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래도 쓰는 이유는 약으로부터 얻는 이익이 부작용이나 약을 피함으로써 잃는 손해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권장되는 적응증에 권장 용량과 권장 요법을 준수했을 때 부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최소화되는 것이라고. 따라서 허가된 약은 ‘먹어도 안전하다’는 의미이기보다는 ‘먹었을 때 실(失)보다 득(得)이 많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의 약이 부른 나비효과
또 다른 경우를 볼까요? 한 환자에게 불필요한 항생제가 처방됐다고 해 보죠. 기본적으로 항생제는 속쓰림과 소화불량을 유발합니다. 의료진은 이 증상을 잡기 위해 위산억제제(PPI)와 소화제를 처방하죠. PPI와 소화제가 대장의 유익균까지 몰아내 위막성대장염과 설사를 야기합니다. 결국 또 다른 항생제 처방이 내려지게 되죠. 그러면 무균성 뇌수막염, 오심, 두통, 레드맨증후군, 급성 신장손상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환자가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한 번의 부적절한 처방이 초래할 수 있는 ‘나비효과’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의 약이 합병증을 부르고 합병증을 고치기 위해 약을 쓰면 약 가짓수가 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약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의 의도와 기대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약의 효과 만큼 잊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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