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환자 20% 정도만 병원 찾아
편두통 환자는 대부분 ‘화난 사람’처럼 보인다. 극도로 민감한 뇌 때문이다. 주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도 예민하다. 옆 사람이 떠드는 소리나 강한 햇볕에 참지 못할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편두통은 호르몬의 영향도 받는다. 그래서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청소년기에 처음 발병하거나 월경을 하는 여성에서 발병률이 세 배 높다. 50%는 유전과도 관계가 있어 가족 중에 편두통 환자가 있으면 자신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편두통 치료는 지난 30년간 진화를 거듭했다. 초기에는 주로 진통제를 썼다. 아스피린 같은 단순 진통제와 게보린처럼 카페인을 함유한 소염진통제, 진통 효과를 더 높인 카페르고트 같은 약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약만으로 낫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부작용도 자주 생겼다. 주 교수는 “약에 내성이 생겨 효과가 떨어지고 그래서 약을 더 먹는 악순환을 반복하다 통증이 심해져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2000년대 초 ‘트립탄’이라는 약이 등장하면서 편두통 치료에 새 국면을 맞았다. 편두통은 스트레스 등으로 뇌가 자극 받을 때 통증 물질이 분비되고 이것이 뇌를 둘러싼 뇌막에 닿으면서 통증이 시작된다. 트립탄은 통증 물질과 이를 인식하는 수용체를 세밀하게 억제해 2시간 이내에 통증을 개선시켰다. 고용량을 사용해도 안전한 획기적인 약이었다.
8년 전부터는 약이 듣지 않는 난치성 편두통 환자에게 보톡스 치료가 가능해졌다. 주 교수는 “보톡스를 환자의 목과 이마에 주사하면 뇌가 마취되면서 통증이 줄어드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치료법이 다양해졌지만 평균 2~3종의 약을 수년씩 사용하는 게 인체에 좋을 리 없다. 주 교수는 “그래서 최근엔 효과가 좋지만 부작용이 거의 없는 비약물적 치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그중 하나가 ‘뉴로모듈레이션(neuromodulation)’ 치료, 우리말로 ‘신경 조절술’”이라고 말했다.
뉴로모듈레이션은 전기·자기로 뇌 기능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최근 몇 년 새 편두통과 불면증·간질 등 신경 질환 치료에 쓰이기 시작했다. 이를 이용한 편두통 치료 원리는 간단하다. 편두통에 관여하는 앞쪽 뇌의 ‘삼차신경’을 정교하게 반복 자극해 통증의 역치를 높여 통증을 덜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부작용 거의 없고, 1~3달 뒤 효과
치료 방법도 어렵지 않다. 이마에 자석이 달린 젤 패드를 붙이고 손바닥 3분의 1 크기의 ‘뉴로모듈레이션 기기(세팔리)’를 자력으로 패드에 부착시킨다. 전원을 켜면 전류가 흐르는데, 처음엔 간지러울 수 있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이렇게 하루 20분씩 약 1~3개월 사용하면 편두통의 강도와 빈도가 줄어든다.
효과와 안전성도 입증됐다. 주 교수는 “해외 연구에 따르면 편두통 환자 67명 중 뉴로모듈레이션 치료를 받은 34명에서 월평균 두통 발생일수(4.4일)가 가짜 치료 그룹(6.9일)보다 2.5일 적었다”며 “두통 발생일수가 월 2~3일 줄었다는 것은 좋은 편두통약만큼 효과가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편두통 환자의 74.5%는 통증이 줄면서 편두통약도 끊었다. 위험한 부작용 역시 관찰되지 않았다. 주 교수는 “앞으로는 뉴로모듈레이션 같은 예방 치료로 편두통 발작을 조절하면서 규칙적인 운동·식사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게 평생 편두통 관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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