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짓수 많은 어르신 약물, 의료진이 '맞춤형' 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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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약물조화클리닉' 개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가운데)와 약사(오른쪽)가 환자와 복용 약물에 관해 상담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최초로 환자의 질환과 건강 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약물을 처방하는 '약물조화클리닉'을 오픈했다.

약물조화클리닉에서는 호흡기내과와 노년내과 의료진, 그리고 전담 약사가 함께 현재 환자가 복용 중인 약물을 분석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성분이 중복된 약을 빼거나 치료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약을 변경하는 등 리스트를 다시 재정비해 처방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이 복용하는 약의 개수는 1인당 평균 5.3개로 5종류 이상 복용하는 환자의 비율이 82.4%에 이른다. 일본(36%)이나 호주(43%)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매일 많은 약을 복용하는 호흡기 질환자나 노인들은 약물 관리가 잘 안돼 중요한 약을 빠뜨리거나 이중으로 복용하는 사고를 자주 겪는다.

게다가 노인은 약물 대사 능력이 떨어져 복용 약물의 가짓수가 늘수록 약물 부작용도 함께 증가한다. 인지 기능이 나빠지고 배뇨 장애가 생기며 낙상이나 섬망 같은 위험한 노인증후군이 나타나기 쉽다. 또한 노인들은 질환이 잘 낫지 않거나 증상이 추가될 때마다 다른 병원을 방문해 또 다른 약을 처방 받는 '의료 쇼핑'을 반복해 이들의 약물 관리와 조절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서울아산병원 약물조화클리닉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자는 △하루 7종류 이상 △하루 8번 이상 △하루 10알이 넘는 약을 복용중이거나 △복용 중인 약물이 부작용을 일으켰던 환자들이다.  다른 병원을 다니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처방전을 갖고 예약, 방문하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진료비는 상급종합병원 외래의 초진료 수준이다.

이 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는 "아직 국내에는 약 처방의 적정성을 평가하고 환자에게 맞는 약물을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며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의료진들이 '약물조화클리닉' 통해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약물을 선별, 복용하고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약물조화클리닉 환자 사례>
경기도 안성에 거주하는 72세 김모 씨는 하루 총 7종류, 총 18개의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20년 전부터 앓아 온  당뇨와 고혈압, 퇴행성 관절염,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와 감기약이다. 아들 내외가 사 준 영양제도 세 종류나 됐다. 김씨는 약 복용을 자꾸 잊고, 중복해 먹는 등 관리에 어려움을 겪다 서울아산병원 '약물조화클리닉'을 찾았다.
 담당 의사와 약사가 분석한 결과 혈압약과 진통제, 기침약이 유사한 성분으로 중복돼 있었고, 당뇨약이 맞지 않아 자주 저혈당이 생겼으며, 관절약과 위장약의 용량이 불필요하게 높았다. 클리닉에서는 김씨의 건강 상태에 맞게 다시 처방했다. 그는 이후 아침에 고혈압과 당뇨약, 저녁에 전립선약과 관절약 등 7개의 약만 복용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불편했던 배뇨 장애 증상과 기침이 줄고 당뇨와 혈압도 잘 조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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