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로봇 활용, 산부인과 수술 영역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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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병원 탐방 - 건국대병원 로봇수술센터?

자궁·난소 질환 같이 정교함을 요구하는 산부인과 수술 분야에 로봇수술이 확대되고 있다. 로봇수술은 의사가 조종석(콘솔)에서 3차원 영상을 보며 로봇 팔·카메라를 조종해 좁고 깊은 부위를 수술하는 기술이다. 건국대병원은 난소암·자궁근종 등 산부인과 질환에 첨단 로봇을 도입해 환자의 치료 선택권을 넓히고 있다. 건국대병원 로봇수술센터를 찾아 산부인과 영역에서 진일보하는 첨단 의료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지난 1월, 22세 환자 김모씨가 건국대병원에서 난소암 1기 진단을 받았다. 조직 검사 결과 재발이 잘 되고 사망 위험이 큰 성격의 암으로 확인됐다. 양전자 단층촬영(PET) 검사에서는 가슴 대동맥 주변 림프샘에 전이가 의심되는 병변이 발견됐다. 대동맥은 인체에서 가장 큰 혈관으로 심장과 이어져 있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 배를 열고 수술(개복)을 해야만 했다. 대동맥 주변은 로봇 기구로도 접근이 어려워 배를 열지 않고 수술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칫 대동맥을 건드리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젊은 여성 환자는 흉터가 남는 개복 수술 대신 로봇으로 수술을 받고 싶어 했다. 
  
김씨의 수술을 집도한 건국대병원 산부인과 심승혁 교수는 “흉터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환자의 요구가 분명해 로봇으로 종양과 대동맥 주변 림프샘까지 제거하는 수술을 진행했다”며 “다행히 수술이 잘 마무리됐고 조직 검사에서도 전이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로봇수술로 할 수 있는 산부인과 수술 중 난도가 가장 높은 사례였다. 
  
로봇수술이 개복 수술과 내시경을 활용하는 복강경 수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수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산부인과 이선주 교수는 “기존 복강경으로는 접근이 어려웠던 사례를 로봇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며 “복강경 수술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작은 구조물을 선명하게 확인하고 손목 관절을 돌리듯 기구를 움직일 수 있어 수술이 섬세해졌다”고 말했다. 미용 효과뿐 아니라 자궁·난소의 미세한 신경·혈관·근육 등이 손상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건국대병원 로봇수술센터 이선주(왼쪽)·심승혁 산부인과 교수는 자궁근종·골반장기탈출증과 난소암 등 다양한 여성 질환에 로봇을 활용해 치료 성과를 높인다. 김동하 기자

건국대병원 로봇수술센터 이선주(왼쪽)·심승혁 산부인과 교수는 자궁근종·골반장기탈출증과 난소암 등 다양한 여성 질환에 로봇을 활용해 치료 성과를 높인다. 김동하 기자


개복·복강경 수술 한계 극복 
이런 장점은 산부인과 질환 수술에서 가임력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한다. 로봇수술이 활발하게 활용되는 분야는 가임력과 직결되는 자궁근종 제거 수술이다. 심승혁 교수는 “근종 숫자가 많거나 위치가 좋지 않아 기존에는 개복 수술을 해야 했던 환자도 최근엔 로봇수술을 통해 10㎝가 넘는 근종을 제거하고 자궁 근육층을 세밀하게 봉합할 수 있다”며 “수술 후 임신을 하더라도 자궁이 파열될 위험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자궁근종 제거 수술에서는 근육층을 3중으로 봉합해 정상 조직만큼 결합력을 유지해줘야 가임력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건국대병원 산부인과에서는 최근 로봇수술로 12㎝ 크기의 근종을 떼는 수술을 진행했다. 근종 크기가 10㎝를 넘으면 복강경 수술로 떼기 힘들고, 떼더라도 봉합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기존에는 개복 수술을 했다. 이 교수는 “이 환자의 경우 헤모글로빈 수치가 수술 도중 9.5에서 7.8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 수혈을 안 해도 될 만큼 출혈량이 적었다”며 “배를 열지 않기 때문에 조직이 들러붙는 유착 위험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건국대병원은 난소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낭종절제술)에도 로봇수술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다. 난소는 난자를 만들고 에스트로겐 같은 성호르몬을 분비하는 생식기관이다. 난소의 혹을 뗀 뒤에는 전기소작기로 절제한 부위를 지진 뒤 난소 껍질을 봉합해 난소를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이때 소작기로 정상 조직을 건드리면 난포가 죽으면서 생식능력을 떨어뜨리는 빌미가 된다. 심 교수는 “로봇수술을 할 땐 시야가 충분히 확보돼 정상 조직을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면서 남은 조직을 정교하게 봉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 조직과 유착이 심한 자궁내막증, 느슨해진 골반 주변 조직을 고정하는 골반장기탈출증도 로봇수술 효과가 좋다. 

암 경험자 삶의 질 향상 기여 
로봇수술은 양성종양뿐 아니라 암 수술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자궁에 국한된 자궁암 초기와 난소암 1기에는 로봇수술이 개복 수술과 치료 결과가 동일하거나 개복 수술보다 낫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로봇수술이 산부인과 암 경험자의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이터도 축적되고 있다. 자궁경부암 환자는 자궁경부 주변의 골반 조직을 포함해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경을 잘 보존해야 배뇨·배변 기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심 교수는 “로봇 기구와 수술법이 발전하면서 산부인과 질환 치료 성적에 긍정적인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며 “가임력과 미용 기능을 중요시하는 산부인과 분야에서 로봇수술의 활용 범위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뷰 산부인과 이선주·심승혁 교수 
건국대병원 로봇수술센터 이선주·심승혁(산부인과) 교수는 골반·대동맥 부위 림프샘 절제술 등 난도 높은 수술도 절개창을 하나만 내는 싱글포트 로봇수술로 진행한다. 복강경 수술에서 쌓은 수술 실력이 고난도 로봇수술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이선주·심승혁 교수는 각각 산부인과 종양학 교과서와 산부인과 내시경학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 두 교수에게 산부인과 영역에서 로봇수술의 위치를 들었다. 
  
이선주 교수

이선주 교수

-로봇이 복강경보다 치료 결과가 좋은가.
이선주="로봇은 복강경 수술로 어려웠던 부분을 보완해 준다. 수술 결과는 서로 비슷하다. 환자가 통증을 덜 느끼고 편하게 수술받을 수 있는 첨단 수술 방법이 선택지로 늘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는 수단이 과거에는 새마을호와 비행기만 있었는데 지금은 고속철도까지 탈 수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산부인과 암 수술에 로봇이 가능한가
심승혁="암 환자의 치료 결과를 말하려면 생존율 지표가 나와야 하는데 개복·복강경·로봇 수술의 생존율을 비교하는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암이 몇 가지 있다. 자궁경부암과 난소암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협업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중이다.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장기적인 종양 데이터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환자 생존 데이터는 10년 이상 축적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심승혁 교수

심승혁 교수

-로봇수술 결과를 결정짓는 요소는.
이선주="개복·복강경 수술은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보조하는 의사의 팀워크가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로봇수술은 숙련된 의사 1명이 늘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어시스턴트(로봇 기구)와 함께 수술을 하는 시스템이다. 숙련된 의사 1명만으로도 최상의 치료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로봇 기구는 의사가 치료 결과를 끌어올릴 수 있는 일종의 첨단 무기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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