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페달 20년 밟으니 '노화시계' 20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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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가치 재발견] 하루 20㎞ 이상 달린 50~70대 노화 현상 근육 변형 없어

운동 가치의 재발견 
노화가 진행될수록 건강은 적신호가 켜진다. 서서히 근육이 줄어 넘어지는 일이 잦고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치명적인 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그간 노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졌다. 나이가 들며 생기는 당연한 결과로 인식됐다. 그런데 최근 이런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꾸준히 운동하면 나이가 들어도 ‘노화 시계’가 멈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이 노화를 막는다는 과학적 근거가 속속 밝혀지면서 운동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하루  20㎞ 이상 달린 50~70대는 근육의 질적 변화가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기존의 노화 관련 연구는 나이에 따른 신체 변화를 파악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운동량이 크게 떨어지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노화 현상이 실은 ‘운동 부족’으로 생긴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버밍엄대 연구팀은 역발상을 통해 새로운 노화의 관점을 제시했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꾸준히 운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근육, 면역 시스템 등의 노화 정도를 세포 수준에서 관찰했다. 관련 논문 두 편은 이달 초 국제학술지 ‘노화세포’에 실렸다. 
  
노화 연구 틀 깬 두 논문 주목 
  

두 연구는 20년 이상 자전거를 탄 55~79세 남녀 12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상자 중 남성은 매달 평균 728㎞, 여성은 596㎞를 달리는 운동 마니아였다. 하루 평균 약 20㎞ 이상 달리는 셈이다. 남성은 6시간30분 내 100㎞(시속 15.4㎞), 여성은 5시간30분 내 60㎞(시속 10.9㎞) 이상을 달릴 만큼의 운동 강도였다. 고대구로병원 스포츠의학실 박세현 운동처방사는 “운동 강도로 보면 분당 100m 이상 걷고, 50m 이상 수영하는 수준”이라며 “특히 70대가 이런 활동량을 유지한다는 건 동년배와 비교해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먼저 연구팀은 대상자의 허벅지 바깥쪽 근육을 채취해 나이에 따른 근육 변화 정도를 측정했다. 생화학적 분석을 통해 근섬유의 크기·모양·종류,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의 양 등을 검사했다. 보통 나이가 들면 순발력·근력을 담당하는 ‘속근’이 줄고 지구력과 관련된 ‘지근’이 는다. 근섬유의 모양도 균형 잡힌 다각형에서 삐뚤어지고 모난 형태로 변한다. 근육이 질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수십 년간 꾸준하고 열심히 운동한 사람은 어떨까. 분석 결과, 남녀 모두 나이에 따라 근섬유의 크기와 종류는 큰 차이가 없었다. 노화로 인한 근섬유의 모양 변형도 관찰되지 않았다(작은 사진). 근육의 에너지 공급원인 미토콘드리아의 양도 연령에 따른 차이가 없었다. 강동성심병원 정형외과 이병훈 교수는 “70대가 50대 수준의 근육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신체 기능이 젊다는 뜻”이라며 “운동이 근육 노화를 예방한다는 점을 증명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음 논문에서 연구팀은 운동과 면역 시스템의 노화 관계를 검증했다. 이를 위해 꾸준히 운동한 그룹과 이들과 나이가 비슷한(57~80세) 남녀 75명, 또 나이가 젊은(20~36세) 남녀 55명의 혈액을 채취해 T세포 농도를 비교했다. T세포는 세균·바이러스 등 이물질로부터 몸을 지키는 면역 세포다. T세포는 가슴샘(흉선)에서 분비되는데, 40대 이후부터는 흉선이 급격히 쪼그라들며 T세포가 감소하는 ‘면역성 노화’가 진행된다. 나이가 들면 감기·대상포진 등 각종 질환에 잘 걸리고 낫지 않는 이유다. 이런 면역력 저하를 운동이 얼마나 방어할 수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꾸준히 운동한 중·장년층의 혈중 T세포는 운동을 안 한 또래보다 훨씬 높았다. 심지어 이들의 T세포 양은 젊은 층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었다. 반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의 농도는 운동한 그룹이 안 한 그룹보다 낮았다. 면역체계 전반에 운동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변화의 근거를 인터류킨(IL)이란 물질에서 찾았다. 운동을 한 중·장년층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혈중 IL-6는 적고 IL-7은 많았다. IL-6는 흉선을 위축시키고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운동한 그룹에 IL-6가 감소했다는 것은 흉선과 면역 시스템이 그만큼 덜 손상됐다는 뜻이다. 반대로 IL-7은 흉선을 보호하고 T세포 분비를 촉진한다. 운동이 흉선의 기능을 유지시켜 T세포의 양과 면역 시스템을 유지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면역성 노화의 주된 원인은 나이가 아닌 운동 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자전거가 아닌 걷기·수영 등의 운동도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까. 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규모 연구가 지난해 국제학술지 ‘예방의학’에 실렸다. 미국 브리검영대가 1999~2002년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에 참여한 성인 남녀 5823명을 대상으로 운동량에 따른 텔로미어의 길이를 비교 분석한 연구다. 
  
매주 5시간 걷기로 6년 이상 젊어져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노화 시계’라 불린다. 세포는 스스로 분열하며 성장·재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텔로미어의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곧 세포의 나이인 셈이다. 세포가 늙으면 노화 정도도 심하다. 이런 이유로 텔로미어는 여러 연구에서 노화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 
 
연구팀은 최근 한 달간 대상자들이 에어로빅·수영·걷기 등 62가지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조사한 뒤 상대적인 운동량에 따라 ▶운동하지 않는 그룹 ▶저강도 그룹 ▶고강도 그룹으로 대상자를 나누고 각각 백혈구 텔로미어의 길이를 쟀다. 나이·흡연 등 다른 세포 노화 요인은 동등하다고 가정해 연구를 진행했다. 운동량은 걷기를 기준으로 저강도는 주당 150분 미만, 고강도는 300분 이상 운동하는 수준이었다. 
  
분석 결과 운동을 더 많이 할수록 세포는 더 젊었다. 특히 고강도 운동을 한 그룹은 운동하지 않은 그룹보다 텔로미어 길이로 볼 때 6.6년, 저강도로 운동한 그룹보다 5.1년 젊었다. 연구팀은 “충분한 운동이 체내 스트레스를 줄이고 염증 반응을 억제해 세포 노화를 억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운동량을 늘리면 그만큼 노화도 늦출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장일영 임상강사는 “건강한 고령층은 자신이 낼 수 있는 힘의 60% 정도로 운동해도 큰 무리가 없다”며 “꾸준히 실천하면 감당할 수 있는 ‘운동 최대치’가 늘어 총 운동량이 증가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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