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의 법칙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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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명의 박정수 교수의 [병원에서 주워 온 이야기]

오늘의 하이라이트 수술을 받을 37세 남자 사람 환자가 16호 수술실에 들어온다.

"어서 와요, 어제 잠도 못잤지요, 걱정이 되어서..... 좀 큰 수술이 되겠지만 잘 될겁니다.

왼쪽 측경부에 커진 림프절이 전이된 것이 아니라면 오늘 수술은 갑상선 전절제, 우측 측경부청소술, 중앙경부청소술까지만 하게 될 겁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6년전에 오른쪽 측경부 윗쪽에  혹이 만져졌다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때 시골 동네 의사선생님께서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말고 그냥 지내도 된다고 해서요"

"아하 그랬었구나... 요번 진단은 어떻게 해서 하게 되었나요?"
"그냥 찝찝해서 초음파하고 뭔가 발견되어서 지방대학병원에서 세침검사로 갑상선 암이 퍼졌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환자가 마취에 들어가고 수술조수 닥터김과 그동안 검사한 영상(초음파, CT, PET-CT)복습하면서 얘기를 나눈다.

"오른쪽 측경부는 좀 심하지?  그냥 감자밭이야. 특이하게도 레벨 2 에 가장 큰 림프절 전이가 있다는 거지. 이게 6년 전에 만져졌다는 걸 거야. 레벨 2,3,4, 5 가 완전 감자밭이 되어 있다는 거지. 그리고 왼쪽 측경부 레벨 3에도 커져 있는 림프절이 보인단 말이야. 먼저 왼쪽 걸 떼서 긴급조직검사 결과보고 전이가 있는지 알아 보고 전이가 있으면 양측 측경부 림프절 청소술을 해야 할 거야, 아니면  좋겠는데...자네가 보기에는 왼쪽이 어떤 것 같아?"

"글쎄요, 아닌 것 같기도 하고...좌우간 떼어 보지요"

"6년전에 수술했으면 지금보다야 덜 퍼졌겠지만 수술 범위는 그대로일 것 같아. 그때 경부종양진단 때 참고가 되는 7의 법칙(rule of 7)만 알았으면 이렇게 진단이 늦어지지는 안했을 거야, 하기야 두경부 종양 전문하는 의사가 아니면 이 법칙을 알리가 없지"

"7의 법칙이라고요?"

"응, 경부종양의 원인을 따져 볼 때 혹이 생긴지 7일 전후라면 염증성 종양(inflammatory mass)일 가능성이 높고, 7개월 전후라면 암이든 양성종양이든 신생물종양(neoplasm) 가능성이 높고, 7년 전후라면 선천성 기형(예를 들면 갑상선설관낭종)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지, 옛날 Skandalakis라는 외과의사이면서 해부학을 연구한 사람이 발표했던 거지, 지금도 그 사람의 7법칙(rule of 7)이 경부종양 진단에 많은 참고가 되고 있어. 이 환자는 6년이나 같은 장소에 혹이 만져 져 왔으니까 당연히 무슨 종양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구나 생각해야지"

수술은 목의 아랫쪽에 긴 횡절개를 넣고 우선 왼쪽 측경부의 레벨3 림프절을 떼어서 긴급조직검사실로 보내고 우측 측경부 청소술(곽청술)+ 좌우 갑상선전절제술+ 중앙경부림프절 청소술 순으로 진행한다.

우측 레벨2 림프절을 제거할 때 시야가 좁아 애를 먹었지만 큰 이벤트 없이 무사히 제거 된다. 아랫쪽 상부종격동 근처까지 내려간 중앙경부 림프절들도 별일 없이 잘 제거된다.

중앙경부림프절 청소술이 끝날 즈음 긴급조직검사실로부터 연락이 온다." 전이 없음"

"되었다, 그러면 수술을 더 확대할 필요 없이 이것으로 종결하자"
전반적으로 큰 수술이었지만 수술은 잘 된 것 같다.

병실의  환자 상태는 아주 좋다. 미인형의 환자 와이프가 의료진을 반갑게 맞이 한다.

속으로야 얼마나 마음 졸이고 긴장했겠는가. 그런데도 웃는 얼굴을 보여 준다.

"아이들이 셋이라구요?"

"네.13살, 6살, 1살....."

"그럼 세 아이 맘이네, 이놈들 다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고 손자 손녀 볼 때까지 건강을 지켜야지요"

"네,네, 교수님"

"앞으로 두어번 고용량 방사성 요드치료를 추가하면 아마도 목적 달성이 될 것입니다.  이픈 거는 오늘하고 내일 아프면 견딜만해 질 것입니다"

전공의와 전담 간호사에게 말해준다.

"의사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해, 자기 분야가 아니거나 또는 자기가 잘 모르겠으면 해당분야 전문의를 소개시켜 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구. 나는 내 분야가 아니거나  내 분야라도 나 보다 어떤 특정 부위 수술에 더 능한 동료 의사가
있으면 그쪽으로 소개 시켜준다구. 예를 들면 종격동까지 전이가 된 환자면 장 교수에게 환자를 넘기는 것 같은 거지. 이게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구. 환자를 늘 우선 생각해야지.."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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