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부르는 난청, 일찍 발견해 보청기 착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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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대한이과학회 공보위원(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난청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가장 흔한 감각기 질환으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보고에 의하면 2026년까지 65세 이상 인구의 30% 정도가 난청을 가질 것이며, 75세 이상 인구에서는 무려 50%가 난청 질환을 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2010, Ear and Hearing).

노령인구의 증가에 더해 소음성 난청도 유병률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보급의 확대로 청소년은 물론 중장년층도 이어폰으로 음악을 즐긴다. 음량을 크게 키운 채로 이어폰을 오랫 동안 사용하면 소음성 난청이 진행될 위험이 높고, 나이가 들면서 노화성 난청이 더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치매 및 인지기능 장애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14.02%로 2000년 고령화 사회 후 단 17년 만에 초고속으로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 중 고령자는 2025년 20%, 2055년에는 약 40%에 달할 것으로 추계된다. 2015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약 64만8000명인데, 향후 17년마다 두 배 증가해 2024년 100만 명, 2041년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 및 인지 장애는 난청이 동반된 환자에서 그 위험성이 증가한다고 한다. 특히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이 밝힌 연구에서 고도 난청이 있는 경우 알츠하이머 치매를 비롯한 인지 장애의 위험도가 4.94 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최근 12개 국가에서 30여개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총 2만264명의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노화성 난청이 인지 장애를 유발할 위험도는 2배, 치매를 유발할 위험도는 2.42배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2018, JAMA otolaryngology-head and neck surgery).

 국내 한 연구팀에서도 한국인 4121명을 대상으로 한 난청이 인지기능장애의 진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Korean Longitudinal Study of Aging 코흐트), 청력 감퇴가 있는 군에서 청력이 정상인 군에 비해 인지기능 점수가 현격히 떨어짐을 확인했다. 특히 청력 저하가 발생한 후 약 6년 후부터 경도인지장애가 진단된다는 점을 확인해 난청이 경도인지장애 발병에 중요한 위험인자임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난청을 조기에 발견해서 보청기 착용 등의 재활 치료를 하면 난청으로 인한 치매 발병을 예방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충분히 그런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심지어 노인의 경우 귀지만이라도 적극적으로 제거했을 때 인지 기능이 향상됐음을 밝힌 연구 결과도 있다(2014, 일본 노인학회). 난청이 아주 심하지 않고 보청기를 착용할 정도의 환자라면 보청기를 착용함으로써 인지기능의 저하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2016년 호주 서호주대의 메타 분석 결과에 의하면(2016, Clinical otolaryngology) 난청을 치료하지 않은 그룹 602명과 보청기를 사용한 그룹 672명을 비교했을 때 보청기를 사용한 그룹의 인지기능이 유의하게 더 향상됨을 확인했다.

국내의 한 연구에서도 노화성 난청이 있는 환자에서 6개월간 보청기를 적극적으로 착용시켰을 경우 언어와 관련된 인지 능력이 크게 향상됨을 밝혔다(2011, CEO). 이는 보청기를 착용함으로써 뇌의 언어 중추를 자극하고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말한다. 더 나아가 보청기 착용이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게 되는 인지능력 저하를 예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난청이 고도난청 이상으로 심하거나 난청을 너무 오래 방치한 경우 보청기 사용이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인공와우 이식 수술은 소리를 듣는 달팽이관 안에 전극을 삽입해 소리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해서 청력을 회복시켜주는 수술이다. 수술을 통해 청력 회복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환자들은 수술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인공와우 수술을 할 경우 청력 향상 뿐 아니라 인지기능 향상도 도와줄 수 있음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2015년 프랑스 리옹대의 연구에 의하면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은 노화성 난청 환자 94명은 청력 회복과 함께 인지능력의 향상, 우울증 증상의 감소 및 삶의 질 향상이 눈에 띄게 관찰됐다(2015, JAMA oto).
 

난청의 적극적인 재활 치료를 통해 인지기능 향상과 치매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청기 사용은 보편화되지 않고 있으며, 인공와우 수술에 대한 거부감도 높은 편이다. 보청기나 와우 수술에 대한 일종의 ‘낙인 효과’와 ‘비용 부담’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청기 보급률은 12%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보청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는 데 의료계는 물론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난청의 가장 좋은 치료는 예방이다. 이미 노화성 난청이 발병했다면 조기에 발견해 재활 치료를 늦지 않게 시작해야 한다. 65세 이상이 되면 매년 정기적인 청력검사를 받아야 한다. 말을 잘 못 알아듣거나 TV를 볼 때 다른 사람보다 음량을 키워서 보는 경우 지체 없이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고 청력 상태를 점검해봐야 한다.


 노화성 난청은 본인의 청력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의 질도 떨어뜨린다. 치매 유병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난청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치료할 것인가를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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