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다 낫고 꽃길만 걸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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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명의 박정수 교수의 [병원에서 주워 온 이야기]

16수술실, 11세 소녀 환자가 입실한다. 어린 나이지만 의젓하다.
"아이고, 우리 꼬마 아가씨가 왔네, 어제 밤에는 잘 잤어,? 엄마랑 안 울었지? "
'네 잘 잤어요, 안 울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한다.
"선생님이 안전하게  수술해 줄거니까 겁 안내도 된다이..."

환아를 마취시키는 동안 수술 조수 닥터 김과 그동안 찍어둔 영상을 복습하며 얘기를 나눈다.

"이 초음파 영상과 목CT 함 봐라. 엄청 크지? 지난 9월21일에 초진 때 왼쪽 갑상선결절이 4.89cm 였었는데 수술 기다리는 동안 6.41cm로 빨리 자랐단 말이지. 근데 세침검사는 암세포가 안보인다고 했고....

어때 자네가 보기에는? "

"와, 엄청 크네요. 어린이 갑상선에 이렇게 큰 결절이? 기도가 초생달 모양으로 좁아졌구요, 숨쉬기도 불편했을 것 같은데, 결절의 실질이 균질한(homogenous) 모양을 보여서 여포선종(follicular adenoma) 아니면 여포암(follicular cancer)을
생각 할 수 있겠고요, 반대편에도 0.6cm 작은 결절이 있네요"

"설사 암이 아니더라도 4cm 이상이고 기도를 누르고 있어서 수술은 해야겠지만 암이라면 전절제를 해야 된단 말이야, 세침검사는 네가티브라고 했지만 자라는 속도가 빠른 걸 보아서 암으로 변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한데...자네 생각은 어때?"

"저도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폐CT스캔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거야, 폐CT한번 봐"
"아, 양쪽 폐에  깨알 같이 작은 결절이 몇개 보이네요, 갑상선암의 폐전이도 생각해봐야 되겠는데요"

"그렇지?  암이라고 진단되면  전절제 하고 수술후 고용량 방사성 요드치료를 해야 될 것 같애.... 일반적으로 소아에서 갑상선 결절이 발견되면 암일 가능성이 높고 또 주위 림프절이나 폐, 뼈 같은 원격전이가 잘되는 걸로 되어 있지만 어른에 비해 예후는 비교적 좋다고 되어 있지"
 
수술은 너무 큰 거대결절이기 때문에 최소침습기법은 포기하고 아랫 쪽 목주름을 따라 긴 횡절개를 넣고 시작한다. "어린이를 수술할 때는 더 정밀하게 찬찬히 해야돼,  오늘 이 어린이는 여포암이라 해도  커진 림프절이 없으니까 림프절 청소술은 안해도 될 것 같아, 여포암의 림프절 전이 빈도가 10%미만이니까 말이지.

괜히 림프절 청소한답시고 부갑상선으로  가는 혈액순환에 장애를 만들면 안된다구, 어떻게 하든 부갑상선과 성대 신경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릴때부터  손발저림으로 평생 고생하는 것은 막아야 된다고, 너무 많이 퍼진 케이스는 할 수 없지만 ......"

 조심 조심 거대결절이 있는 왼쪽 갑상선 날개를 떼고 거대결절 때문에 쪼그라진 오른쪽 날개도 떼어 긴급조직검사실로 보낸다.

오른쪽은 부갑상선을 확실히 살려두기 위해 부갑상선이 위치하는 후측 갑상선의 피막과 근처의 갑상선 조직을 남겨두는 근전절제술(near total thyroidectomy)을 한다.

"자, 수술은 잘 된 것 같은데.....긴급조직검사는  어떻게 되었노?"
"아직.....면역 염색에 들어갔다는 데요"
"허이구, 또 시간깨나 잡아 먹겠구나"

 수술이 다 끝나고 환아가 회복실에 갔는데도 조직검사 결과가 올라 오지 않는다. 다혈질 필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긴급조직 검사실로 올라 간다.

"어떻게 아직 결과가 안 나왔어요?"

"예, 거대 결절을 다 조각조각 내어서 면역 염색하고 현미경을 구석구석 다 검사해야 되니까 아직 결론을 못 얻었어요. 현재까지 나온 결과는 암이 되기 전단계인 여포선종(follicular adenoma)인 것 같습니다. 피막이나 혈관 침범이 확인되면 여포암(follicular carcinoma)이라 진단이 나가는데 아직 확인이 안되어서요, 아무래도 영구표본(permanent section)이 나와야 될 것 같아요"

"암 전 단계라면 이번 수술로 완치되는 것이지요, 지금 진단이 잘 안되는 것은 암이라도 최소침윤 여포암(minimally invasive)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겠지요?  최소침윤암이라면 방사성 요드 치료는 생략해도 되고......"

 병실의 소녀는 큰 수술을 받은 환자 같지 않게 편안해 보인다. 부갑선홀몬수치가 17.6pg/mL(정상,15~65), 혈청 칼슘8.8mg/dL(정상,8.5~10.1 ) , 혈청 인치 4.1mg/dL (정상, 2.9~4.6  )로 완전 정상범위 안에 있다. 따라서 손발 저림도 없다, 목소리도 좋다.

엄마에게 수술 내역에 대하여 설명하고 현재로는 암까지 변하지 않은 여포선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해 준다.

만약 암으로 변한 부위가 있다해도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해 준다. 소녀와 엄마의 얼굴 표정이 급 밝아 진다.

소녀에게 말해 준다.

"아픈 거 잘 참아 주는구나, 오늘하고 내일까지 좀 아프고 모레부터는 괜찮을 거야, 아무 탈 없이 잘 회복 할 거니까 걱정말고,.... 어디 선생님과 악수 한번 하자"

악수하며 생긋 웃어주는 소녀의 표정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래, 다 낫고 꽃길만 걸어 가야지...'

 뒷 이야기:일주일 이후 영구조직검사결과는 혈관 침범이 있는 여포암으로 최종 진단되었다. 폐 전이를 배제할 수 없어 결국 고용량 방사성 요드(150mCi)치료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소아의 폐전이 갑상선암은 어른보다 치료반응이 좋기 때문에
기대를 해도 될 것이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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