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다이어트를 할 때 최대의 적은 뭘까요. 다이어트의 성패는 식단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이어트에서 중요도를 따지면 식단이 8, 운동이 2라고 합니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 중 8할은 바로 식욕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다이어터’들은 ‘식욕억제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식욕억제제는 오해가 많은 약 중 하나입니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필요한 데도 복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약효만 믿다가 복용을 중단한 후 살이 다시 쪄 괴로워합니다. 이번 약 이야기 주제는 ‘실패 없는 식욕억제제 복용법’입니다.

식욕억제제는 식욕을 느끼는 뇌에 작용해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하거나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약입이다. 비만치료제 종류 중 하나죠. 식욕억제제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입니다. 비만 때문에 다른 건강 문제가 생겨 체중 감량이 반드시 필요할 때 먹는 약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식욕억제제 성분은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로카세린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건강 상태와 약의 장·단기 효과를 고려해 약을 처방합니다.

아래는 체중 감량 실패·성공담입니다. 어떤 점에 차이가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면서 읽어보세요.
#실패담
“저는 12년 넘게 자취를 하면서 몸무게가 10㎏ 이상 늘었어요. 살을 빼려고 갖은 노력을 했죠. 원푸드 다이어트는 물론 밀가루·탄수화물을 아예 끊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식단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렵더군요. 살이 도통 빠지지 않아 결국 동네 병원에서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아 3개월을 먹었습니다.
복용 초기에는 입이 자주 건조해져 조금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죠. 입맛이 없어지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인스턴트식품 위주의 식사, 야식 즐기기 같은 평소 식습관을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됐죠. 약 먹는 동안 체중이 7㎏ 가량 빠졌습니다. 약을 먹지 않고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하지만 약을 끊은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체중은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오히려 폭식·과식하는 식습관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약을 더 처방받고 싶어 다른 병원에 갔지만 의사는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만드는 게 먼저라는 조언을 해줬어요. 저는 이제 식욕억제제 없이 살을 뺄 자신이 없어요. 해외 식욕억제제를 파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고 해서 알아볼 생각입니다.”
-김지인(38·여)-
#성공담
“저는 3년 전 대학·대학원 공부와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살이 8㎏ 쪘습니다. 취업 후 받은 건강검진에서 비만으로 진단받은 건 물론 혈압, 지방간,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운동부터 시작했습니다. 집 근처 헬스장을 등록해 주3회 이상 다녔습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많이 움직이려고도 했어요.
문제는 식욕이었습니다. 식사량을 줄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식욕억제제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식사량을 억지로 줄이기보다 식재료와 조리법을 바꿨습니다. 고단백질 위주로 먹는 대신 튀기고 볶은 음식은 자제했습니다. 2개월 후 식욕억제제를 중단하고도 이런 생활습관을 1년 넘게 유지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12㎏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동안 식습관을 잘 바꾼 덕에 굶으면서 빼는 다이어트는 이제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미영(34·여)-

식욕억제제를 똑같이 먹었는데 결과는 이렇게 판이하게 다릅니다. 누구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이어트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식욕억제제 복용할 때 세 가지 포인트를 기억해 두세요.
첫째, 식욕억제제를 비만을 완치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사람의 대부분은 복용 중단 후 체중이 예전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식욕억제제는 기본적으로 식단 관리와 운동의 보조요법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식사요법, 운동, 생활습관 개선을 병행해야 최상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식욕억제제 복용의 목적은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라 체중을 줄여 비만의 합병증을 개선하고 예방하는 데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약물 치료를 중단한 후 다시 살이 찌지 않으려면 적절한 운동과 건강한 식사습관을 계속 유지하는 게 핵심입니다.

둘째, 식욕억제제는 과용하면 안 됩니다. 식욕억제제 성분은 의존성이나 내성이 발생할 수 있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관리되고 있습니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오용·남용하면 인체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식욕억제제로 살이 빠진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면 살찌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폐동맥 고혈압, 심장병, 불안, 초조, 불면, 정신분열증과 유사한 정신이상 등입니다. 식욕억제제는 마약류로 지정돼 있습니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강력한 습관성이 나타나 정신적·육체적·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특히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성분은 4주 복용 후 효과가 없으면 복용을 중단해야 하고 3개월 이상 먹어선 안 됩니다. 3개월 이상 복용하면 폐동맥 고혈압의 위험이 23배 올라갑니다. 로카세린 성분은 장기요법이 가능하나 12주 복용 후에도 체중이 5% 이상 감소하지 않으면 복용 중단을 고려해야 합니다. 식욕억제제는 목표체중이 될 때까지 계속 먹는 게 아닙니다. 체중의 5~10%만 감량하더라도 비만에 동반되는 합병증과 복부 내장지방의 30% 이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 식욕억제제는 의사의 진료와 상담을 통해 구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식약처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의 불법유통 관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만약 인터넷으로 구입한 제품이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라면 구입한 사람도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약 처방을 받기 전에는 의사에게 고혈압·당뇨병 등 현재 앓고 있는 질병이나 과거에 앓았던 병력, 현재 먹고 있는 다른 약, 건강기능식품을 모두 얘기해야 합니다. 약 성분 간에 생길 수 있는 상호 작용을 사전에 막기 위함입니다. 특히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성분의 약은 동맥경화증 환자, 심혈관계 질환 환자, 갑상샘 기능 항진증 환자, 녹내장 환자, 14일 이내 우울증 치료제(MAO 억제제)를 복용한 환자는 먹으면 안 됩니다. 임산부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로카세린 성분 약을 먹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 최근 1년 이내에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을 때는 복용 시점과 약물명을 의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가장 적합한 식욕억제제가 뭔지, 얼만큼의 용량을 먹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비만약 처방은 금연보조제 사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흡연자는 의지만으로 니코틴 중독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조제의 도움을 받습니다. 식습관을 갑자기 교정하는 것 역시 금연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식사·운동·행동 요법만으로 감량 효과를 얻지 못했을 때 약의 도움을 받으면 적게 먹고 포만감을 유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습니다. 단, '실패하지 않는 식욕억제제 복용법'을 지켜야만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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