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입 1분 뒤 혈액 침투 심뇌혈관 집중 공격

인쇄

몸속 ‘무법자’ 초미세먼지

요즘엔 날마다 대기오염 정보(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정작 그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입자의 크기가 작아지면 차원이 달라진다. ‘초미세먼지’는 미세먼지(PM10, 지름 10㎛ 이하)보다 작은 2.5㎛ 이하의 입자(PM2.5)다. 미세먼지보다 체내에서 더 멀리, 더 깊이 이동하고 더 많이 반응한다. 온몸 곳곳을 돌며 뇌졸중·심근경색 같은 급성 질환을 유발한다. 체내에 쌓여 치매·파킨슨병·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소리와 형체도 없이 우리 몸을 파괴하는 악독한 물질이다.
 

초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납 같은 중금속을 함유하는 독성 물질이다. 게다가 가볍고 작아 신체 말단까지 이동 가능하다.


초미세먼지는 크기만 작은 게 아니다. 미세먼지의 주요 성분은 자동차·발전소·공장에서 배출된 물질과 자연의 토양 성분이다. 이 물질이 대기 중에서 반응해 2차 오염 물질을 생성한 것이 초미세먼지다. 질산염·황산염을 비롯해 탄소화합물과 금속화합물을 포함한다. 최경철(한국독성학회 부회 장)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납 같은 중금속도 함유하는 데다 가볍고 작아 신체 말단까지 이동 가능한 독성 물질”이라고 강조했다.
  
초미세먼지는 미세먼지보다 더 멀리 이동한다. 그래서 영향을 미치는 범위도 더 넓다. 몸속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눈 깜짝할 사이 혈관 속으로 
대기 중의 이물질은 코로 들어온 뒤 기도를 거쳐 폐로 들어간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미세먼지는 멀리 가지 못하고 폐 입구에서 가라앉는다. 강 상류의 큰 돌이 멀리 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 가볍고 작은 초미세먼지는 폐 깊숙한 곳인 세기관지 끝까지 이동한다. 바로 모세혈관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모세혈관의 지름은 8~10㎛ 정도다. 초미세먼지를 걸러내지 못한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명준표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눈 깜짝할 새 세포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거나 염증 반응을 일으키며 혈관에 침투한다”며 “혈액에 들어온 뒤에는 마치 돛을 단 배처럼 전신을 순환하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심장협회지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 흡입된 초미세먼지는 1분 만에 혈액까지 이동한다. 벨기에 등 다국적 연구팀이 진행한 이 연구에서는 건강한 남성 5명이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함한 안전한 미세 입자를 3~5회 흡입했다. 이 물질은 1분 뒤 혈액에서 포착됐고 5분 후에는 간·방광에서 감지됐다. 혈관 속 초미세먼지의 양은 흡입 후 10~20분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통해 초미세먼지가 폐에서 혈관을 거친 뒤 빠른 시간 내 다른 장기로 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혈관에 침투한 초미세먼지는 각종 심뇌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초미세먼지와 연관된 질환만 해도 뇌졸중·심근경색·부정맥 등이 있다. 명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미세먼지보다 더 활발히 산화 반응을 유도한다”며 “세포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손상을 줘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각종 질병을 일으키기 쉽다”고 말했다. 고대구로병원 심혈관센터 나승운 교수는 “초미세먼지가 혈관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면서 동맥경화나 혈전(피딱지) 생성을 가속화한다”며 “염증이 빠르게 악화해 급성 심정지도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의 한 연구결과 초미세먼지 농도가 하루 평균 50㎍/㎥ 이상인 날은 10㎍/㎥ 이하인 날보다 급성 심정지 발생률이 13% 높았다.
  
세포 유전자 변형·손상 불러 

초미세먼지는 크기가 작아 뇌로 가는 지름길까지 확보했다. 최근 영국의 한 연구팀은 사람의 뇌 1g에서 수백만 개의 초미세 광물 입자를 발견했다. 이 물질은 주로 산업 현장, 발전소,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성분이었다. 연구팀은 “지름 0.2㎛ 이하인 초미세먼지가 코로 흡입되면 코 위쪽의 후각 신경구를 타고 직접 뇌에 들어간 것으로 추측된다”며 “이 물질이 뇌에서 반응해 치매와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성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초미세먼지가 신경성 질환과 관계된 만큼 우울증 위험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김경남 교수가 2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미세먼지에 만성적으로 노출될수록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컸다. 김 교수는 “당뇨 등 만성 질환자일수록 우울증 위험이 커져 일반인의 1.83배에 달했다”고 말했다.
 


맹독성 초미세먼지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초미세먼지 노출도가 높을수록 인체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량이 증가한다. 게다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초미세먼지를 흡입한 쥐의 장내에서 세균 군집이 변하고 이에 따른 염증 반응도 심한 것을 관찰했다. 조산과 저체중아 출산, 조기 사망 위험도 높았다. 명준표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심정지 같은 급성 질환도 일으키지만 체내에 쌓인 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암과 만성질환을 일으킬지 모른다”며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날에는 외출을 피하고 KF80 이상인 마스크를 써 오염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초미세먼지 피해 예방법
 

마스크 착용, 요리 후 환기
공기청정기 헤파 필터 사용


Q: 초미세먼지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A: 노출을 피하는 것이다. 방사선 피폭처럼 체내에 들어온 뒤에는 완벽히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여러 겹으로 덧댄 부직포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눈과 피부를 물로 씻고 코를 세척한다. 

Q: 마스크 착용은 언제 해야 하나.
A: 국내 초미세먼지 농도의 ‘나쁨’ 기준은 51㎍/㎥부터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은 이보다 엄격해 연평균 11㎍/㎥부터 ‘나쁨’이다. 적어도 국내 기준으로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날은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 

Q: 체내 유입 후 배출 가능한가.
A: 배출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기도에서 점액과 섞인 뒤 가래 형태로 올라오기도 한다. 가래를 다시 삼키면 식도를 거쳐 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뱉는 게 좋다. 혈관·신장을 거쳐 소변으로 나올 수도 있다. 체내 어딘가에서 충돌하거나 정전기적으로 들러붙으면 배출이 어렵다. 

Q: 배출을 돕는 음식이 있나.
A: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특정 음식이나 약물은 없다. 초미세먼지는 체내에서 산화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물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신선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Q: 초미세먼지는 실외에 더 많나.
A: 실내에서 요리를 할 때 재료가 타면서 초미세먼지가 발생할 수 있다. 여성 비흡연자가 폐암에 걸리는 경우 실내 오염 때문일 확률이 높다. 요리를 한 뒤 환기를 시킨다. 공기청정기를 사용한다면 초미세먼지를 제거하는 헤파(HEPA) 필터 사용을 권한다.
도움말=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명준표 교수
관련 기사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