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별칭처럼 조용히 몸과 마음을 망가트립니다. 치매·뇌졸중 등의 위험을 높이고, 일부는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인 100명 중 5명은 평생 한 번 우울증에 걸립니다. 지난 1년 간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은 61만명으로 추정됩니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곪은 사람이 그만큼 많은 것이죠.
우울증은 관리해야 하는 ‘병’입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감기약을 쓰듯, 우울증도 상담, 행동치료와 함께 항우울제라는 ‘약‘으로 치료합니다. 하지만 다른 정신과 약물처럼 항우울제에 대한 오해가 많죠.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 “약을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 등 다양합니다. 이로 인해 정신과를 치료를 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주 [약 이야기]에서는 우울증 치료에 쓰는 ‘항우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항우울제의 역사는 비교적 짧습니다. 1950년 대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이소니아지드’라는 약이 우울증에 효과적인 것을 보고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은 도파민·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이 줄어 발생하는 병입니다. 항우울제는 이런 뇌 신경전달물질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켜 우울증상을 완화하는 건데요. 이런 이론을 토대로 최초의 항우울제인 ‘단가아민 산화효소 억제제(MAOI)’가 나왔고, 이어 ‘삼환계 항우울제(TCA)’가 개발, 활용됐습니다.
하지만 이들 항우울제는 효과만큼 부작용이 컸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을 유지하려면 이를 줄이는 효소나 수용체의 기능을 떨어트려야 했는데요. 약 성분이 애꿎은 효소나 수용체까지 작용해 혈압 증가·입마름·변비 등 등의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약이 1980년대 개발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입니다. 이름처럼 세로토닌 수용체만 ‘송곳처럼’ 작용해 다른 부작용을 크게 줄였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처방되는 항우울제‘프로작’이 대표적인 SSRI입니다. SSRI는 통증 감소, 식욕 억제, 성욕 저하 등 다양한 효과가 확인돼 정신과뿐 아니라 정형외과·가정의학과(비만 치료)·비뇨기과(조루증 치료) 등에서도 두루 사용됩니다. 약의 부작용마저 치료 목적으로 쓸 만큼 안전성이 확보됐다는 의미지만, 일부 정신과 전문의는 “약을 너무 남용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이 밖에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와 ‘노르에피네프린·도파민 재흡수 억제제(DNRI)’도 우울증 치료에 활용됩니다. SNRI는 세로토닌과 함께 우울증에 관여하는 노르에피네프린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킵니다. 효과와 부작용은 SSRI와 비슷하지만 작용 시간이 더 빠른 편이고, 근골격계 통증에도 잘 듣습니다. 몸이 아파 우울한 환자에게 쓸모가 큽니다. SNRI인 ‘벤라팍신(성분명)’의 경우 우울증과 함께 불안장애를 겪을 때도 효과적이지만, 고(高)용량을 복용할 시 고혈압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사전에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리는 게 좋습니다.
신경전달물질 3개 중에서 세로토닌을 제외한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을 유지해주는 DNRI도 있는데요. 흡연자에게는 금연 치료제인 ‘부프로피온(성분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담배의 니코틴은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담배를 끊으며 생기는 우울증 등을 보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DNRI가 쓰입니다. DNRI는 다른 항우울제보다 특히 성기능과 관련된 부작용이 적다는 특징이 있고, 소아에 흔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도 활용됩니다.
이유 없이 우울하면 흔히 "가을을 탄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론 “겨울을 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계절 변화로 인한 우울증(계절성 정동장애)은 햇빛을 잘 보지 못하고, 활동량이 감소하는 겨울에 흔해 ‘겨울 우울증’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런 ‘겨울 우울증’으로 의욕이 없고, 무기력한 사람에게도 DNRI의 치료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우울증 환자의 증상과 나이, 성별, 보유 질환, 우려되는 부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처방할 약을 결정합니다. 대게 낮은 용량에서 시작해 부작용 등을 관찰하며 서서히 용량을 늘려 갑니다. 항우울제는 종류에 따라 복용량이 각각 다릅니다. 자신이 먹는 용량이 많다고 해서 우울증이 심각한 것은 아니란 의미입니다.
“우울증 약 먹으면 바보가 된다” “한번 먹으면 평생 복용해야 한다” 등 항우울제와 관련된 오해는 대부분 과거 우울증 치료에 항정신병 약물을 사용했을 때 일입니다. 최근의 항우울제는 장기 복용해도 안전한 수준입니다. 수면제나 ‘자낙스’ 같은 항불안제처럼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약물 의존성도 낮습니다.
항우울제는 초기에 쓸수록 효과가 좋습니다. 약을 먹고 2~4주 지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통 6~8개월은 약을 복용하는 데 이 때 스스로 약을 끊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우울증은 약물 치료를 해도 5년 내 절반이 재발합니다.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재발 위험이 훨씬 커집니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먼저 의사와 상담해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우울증은 치료 못지 않게 예방이 중요합니다. 규칙적인 운동은 뇌의 혈액순환을 돕고, 햇빛을 통해 피부에서 비타민D를 합성시켜 결과적으로 세로토닌 분비를 늘립니다. 계란·콩 등의 단백질과 등 푸른 생선·견과류에 있는 오메가-3 지방산도 ‘뇌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도움말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서호석 교수. 참고도서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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