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목소리 트는 두경부암 치료법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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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탐방 김광현 분당제생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헤드미러(머리에 쓰는 반사경)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상징이다. 빛을 끌어들여 어두운 귀·코·목 안을 비추는 장비가 헤드미러다. 분당제생병원 이비인후과 김광현 교수는 누구보다 ‘헤드미러’가 어울리는 의사다. 과거 절제만이 해법이었던 두경부암은 그를 거치면서 환자 중심 치료로 탈바꿈했다. 레이저 수술, 방사선·항암 병용치료 등 그가 선도적으로 도입한 치료로 수천 명의 환자가 자신의 목소리와 호흡을 지켰다. 이비인후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영원한 현역’, 김광현 교수를 만났다.
 

막힌 기도 뚫어주는 수술
인두·후두암 레이저 치료
환자 삶의 질 개선에 역점


7일 오후 분당제생병원 3층 수술실에서 만난 김광현 교수는 머리에 단 확대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날 김 교수는 30대 갑상샘암 여성 환자 수술을 집도하고 있었다. 종양 지름이 3㎝까지 커져 기도를 짓눌렀고, 목의 림프절에도 암이 퍼져 갑상샘 전부와 림프절 일부를 떼내야 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목 부위를 6㎝ 가른 뒤 가위 모양의 초음파 절삭기를 사용해 면도하듯 종양과 기도를 분리해 나갔다. 초음파 절삭기는 조직을 지지면서 잘라 출혈량을 최소화하는 의료장비다. 1시간30여 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국내 두경부외과 1세대 

두경부암은 눈·뇌를 제외하고 머리부터 목 사이에 생기는 암을 말한다. 혀에 생기는 설암, 코·목에 생기는 인두암과 후두암, 갑상샘암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두경부암 치료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1세대 의사다. 서울대병원에 두경부외과가 처음 생긴 1980년대 초부터 지금껏 ‘현역’으로 우리나라 두경부암 치료 수준을 세계적인 위치로 끌어올렸다.
  
그는 이(입)·비(코)·인후(목) 중에서 목과 관련된 후두·인두암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사실 목은 귀나 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료 범위가 넓고 까다로운 기관이다. 뇌에서 나와 몸에 뻗어가는 12개의 신경과 주요 혈관이 모두 목을 지난다. 수술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만 있어도 얼굴 변형이나 마비 같은 후유증이 생긴다.
  
그가 레지던트를 시작한 70년대 후반에는 두경부암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거의 없었다. 암이 생기면 그 부위를 모두 잘라내는 근치적 수술이 일반적인 치료였다. 후두암을 치료한 환자는 목에 뚫은 구멍을 감추려 거즈를 붙이고 다녔다. 성대가 잘려 나가 목소리를 잃는 환자도 많았다. 목소리보다 목숨이 중요한 암 환자에게 기능 보존과 삶의 질은 뒷전이었던 때다.
  
김 교수는 이런 두경부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암의 치료에 더해 환자의 삶을 고려한 치료를 고민했다. 그는 “먹고, 숨 쉬고 말하는 것이 모두 목에 달려 있다. 정확한 치료에 더해 환자의 남은 삶을 지키는 것이 이비인후과 의사의 사명이라 여겼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두경부암의 수술법을 배울 기회는 마땅치 않았다. 
  
비교적 환자가 많았던 후두암은 가끔 수술이 이뤄졌지만 그 외 치료법은 배울 길이 없었다. 그는 시간을 쪼개 외과 수술실에서 상처 꿰매는 법부터 가위 잡는 법까지 어깨 너머로 익혀 밤 늦게까지 연습했다. 어떤 수술이든 빠르게 익히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새로운 두경부암 치료법이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책과 논문을 구해 익혔다. 당시 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건 암 수술 등을 받아 목에 구멍이 난 환자에게 나타나는 ‘기도 협착’ 치료였다. 김 교수는 “당시엔 조직이 썩거나 염증 반응으로 기도가 막히는 환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다. 남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계적 반열 오른 명성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80년대 초, 일본·독일을 찾아 2년간 기도 협착 치료법을 배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후 국내에서 이비인후과 최초로 시행한 수술이 바로 ‘기관 절제 및 단단 문합술’이다. 쉽게 말해 협착된 기도 부위를 자른 후 양쪽 끝을 이어주는 수술이다. 말랑말랑한 기도를 잡아당겨 잇고 촘촘히 꿰매야 한다. 절개 길이가 길수록 기도가 찢길 확률이 커 웬만한 의사는 엄두를 내지 못하던 수술이다. 그는 이 수술로 지금까지 환자 250여 명의 ‘숨길’을 터줬다.
  
나아가 환자에게 칼을 대지 않는 각종 치료도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초기(1~2기) 인두·후두암에 사용하는 레이저 치료가 대표적이다. 목을 통해 후두경과 레이저 장비를 넣은 다음 눈으로 종양을 보면서 레이저를 칼처럼 사용해 암을 제거한다. 피부를 절개하지 않아 목에 흉터가 생기지 않고, 방사선 치료와 비교해도 통증, 목소리 변형 등 후유증이 적다. 수술 없이 방사선·항암제를 함께 사용해 암세포를 없애는 ‘병용치료’ 역시 그가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 가장 앞장서 도입했다.
  
이제 김 교수의 이름은 국내는 물론 해외서도 하나의 ‘브랜드’로 통한다. 2002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이비인후과학회에서 ‘두경부 질환의 약물치료’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1년에 단 한 명만 초청받는 강연장 연단에 한국인 의사가 선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는 2010년 세계 65개국이 참여한 국제두경부종양학회 학술대회의 한국 유치를 이끌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두경부외과 수준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위치에 올랐다”며 “앞으로는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에게 전수하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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