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약을 먹을 때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뭘까요? 아마도 첫번째는 부작용일 겁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먹는 약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만드니까요. 통증, 거북함 등 단순한 부작용에서부터 생명을 위태롭게 심각한 부작용까지 다양합니다. 부작용 다음은 뭘까요? 바로 내성입니다. 실제 한 설문조사에서는 약과 관련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부작용 다음으로 내성을 꼽았습니다. 약을 먹어도 예전처럼 효과가 나질 않는다니 충분히 걱정할 만도 합니다. 실제로 내성은 약 복용을 꺼리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약의 내성이 생기는 이유와 내성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내성 일으키는 내부와 외부의 적
약의 내성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약물의 반복 복용에 의해 약효가 저하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내성은 얼핏 약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성이 생기는 과정을 짚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성의 요인은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외부적인 요인은 세균·바이러스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 치료의 목표는 이들을 박멸하는 것입니다. 원인균을 죽여서 병을 낫게 하는 것이죠. 약은 직간접적으로 작용해 이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게 만듭니다. 잘 듣는 약이라면 치료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약 복용 중단 등으로 인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멸하지 않은 상태일 때 문제가 생깁니다. 살아남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약에 적응을 하게 됩니다.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죠.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세균과 바이러스는 전투력이 더욱 강해진 '내성균'과 '내성 바이러스'가 됩니다. 이들의 생존본능이죠. 이젠 더 이상 항생제와 치료제가 듣지 않습니다. 여러 다른 약에도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 '수퍼바이러스'도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항생제 내성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내부적 요인은 우리 몸이 가진 시스템에 기인한 것을 말하는데요, '피드백 메커니즘'으로 설명됩니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돼 있습니다. 혈당이 떨어지면 저혈당이 오지 않게 혈당을 올리고, 추위에 체온이 내려가지 않도록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내성을 생기게 한다는 얘기입니다.
대표적인 고지혈증치료제인 '스타틴(statin)'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체내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약입니다. 콜레스테롤은 80%가 체내에서 합성되는 것이고 20%는 장에서 흡수되는 것입니다. 스타틴은 콜레스테롤의 체내 합성을 차단합니다. 80%에 해당하는 부분을 차단하니 약을 먹었을 때 콜레스테롤 수치가 확 떨어지겠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몸의 피드백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몸은 '어라? 콜레스테롤이 너무 낮아졌네?' 하면서 장내 흡수를 촉진합니다. 실제 의사들은 "스타틴 약을 쓰면 어떤 환자든 조금씩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간다"고 임상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스타틴의 용량을 늘리다가 그래도 안되면 다른 약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에제티미브(ezetimibe)'라는 약입니다. 이건 장내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하는 약입니다.
내성은 외부적 요인이든 외부적 요인이든 약에 적응한 결과이기 때문에 약은 기본적으로 내성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근데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내성이 아닌데 내성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착시현상이죠.
경우에 따라서는 시작용량과 치료용량이 다른 약이 있습니다. 시작용량은 약을 처음 복용하기 시작할 때의 용량을 말하고, 치료용량은 치료 효과를 보기 위해 필요한 용량입니다. 의사는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 치료계획을 세웁니다. 갑자기 치료용량부터 시작하면 부작용이 우려되는 약의 경우 이렇게 용량을 달리합니다. 몸의 적응기를 두는 셈이죠.
환자는 오해합니다. "약효가 없다" "왜 자꾸 약의 용량을 올리느냐"고 말입니다. 치료용량까지 도달하기까지 치료효과가 없는 건 당연하고 용량을 높여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근데 환자 입장에서는 내성이 생긴거라 생각하기 딱 좋은 상황이죠. 그래서 치료용량에 도달하기 전에 기다리지 못하고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도 생긴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몸의 노화에 따라 만성질환약의 처방 용량이 늘어나는 것도 내성으로 비쳐지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약의 내성과 의존·중독성의 관계
내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또 있습니다. 의존성과 중독성인데요. 아마도 '내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의존성과 중독성이 있는 약은 대부분 약효가 빨리,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약물입니다. 효과(보상)가 바로바로 나타나니 환자는 증상이 있을 때마다 찾게 되고, 그 주기가 점점 단축되거나 용량을 임의로 늘리게 됩니다. 더 많은 양의 약을 더 자주 찾게 되죠. 의존성이 커지고 급기야 중독성까지 이릅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많이 처방되는 신경안정제, 항불안제가 대표적입니다. 중추신경계 뉴런의 과활성을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진통제에서도 의존성에 따른 내성이 생길 수 있죠.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즉각적인 보상(악효)이 이뤄지면 사람은 의존하게 돼 있다. 이것이 중독의 기전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처방도 치료의 한 과정입니다. 가령 우울증을 치료할 땐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같이 쓰는데, 항우울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치료용량에 도달할 때까지)는 항불안제가 '급한 불'을 끄는 역할을 합니다.

처방대로 복용하는 것의 중요성
그러면 약의 내성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모든 의사들은 정량·정시 복용을 강조합니다. 처방대로 약을 '제때' '복용법대로' '끝까지' 먹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내성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내성에 대한 걱정은 치료에 있어서 도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죠. 오히려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기라도 하면 후폭풍을 맞게 됩니다. 앞선 내용대로 수퍼박테리아를 키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약의 내성을 조절하기 위해 약 복용에 간격을 두는 처방을 내리기도 합니다. 고지혈증약의 경우 매일 먹는 약을 2~3일에 한번씩 먹도록 하기도 하죠. 하나의 약을 쓰는 것보다 여러 약을 병합하면 내성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근데 모든 것은 환자 임의로 해선 안됩니다. 의사 처방 외의 행위는 치료계획을 어긋나게 하니까요.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진통제를 포함한 모든 약은 처방이나 복용법대로 복용하지 않았을 때 언제든 내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약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먹는 것입니다.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