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 식탁 AI가 레시피 짜고 로봇이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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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질병·기호·취향 파악 맞춤형 식단 차린 인공지능

“오늘은 뭘 먹지?” 사람들은 매끼 메뉴 선택의 고민에 빠진다. 소득 수준이 오르면서 즐기는 식사가 많아지고 음식문화도 다양해졌다. 이에 맞춰 식품시장과 외식업계는 더 맛있게, 더 빠르게, 더 손쉽게 먹는 음식문화를 추구한다. 변화의 바람은 주방과 식탁을 겨냥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주방은 점점 더 자동화되고 식탁엔 종전에 없던 뉴푸드가 등장하고 있다. 음식문화 속에 깊숙이 파고든 첨단과학기술, ‘푸드테크’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40대 직장인 김모씨가 저녁식사를 위해 찾은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자마자 코스 메뉴가 제공된다. 애피타이저는 기름을 넣지 않은 생연어 샐러드. 그걸 시작으로 저염식 쇠고기 안심구이, 베리를 곁들인 초콜릿이 나왔다. 모든 메뉴는 맞춤 식단이다. 인공지능(AI) 셰프가 빅데이터를 분석해 비만•고혈압을 앓고 있는 김씨를 위해 레시피를 짜줬다. 김씨가 그동안 고른 메뉴를 토대로 기호와 취향을 파악하고 저지방•저염•고단백 식재료를 골랐다. 메인 요리인 쇠고기구이는 많이 먹어도 살찔 걱정이 없다. 식물성 단백질로 채운 가짜 고기로 만들어서다. 맛과 향은 그대로지만 영양가는 훨씬 높다. 이 레스토랑의 주방도 특별하다. 로봇이 불 앞에 서 있다. 유명 셰프의 손동작과 조리 순서를 익혀 음식을 완성한다. 디저트로는 3D 푸드 프린터가 출력한 초콜릿으로 만들었다. 초콜릿 전문가가 추천한 황금 비율로 배합한 다크 초콜릿이 김씨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다. 
 
이런 장면은 우리 생활 속에 곧 다가올 푸드테크(Food Tech)의 성과물이다. 음식(Food)과 기술(Technology)의 융합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국내에선 식재료 배달, 맛집 공유, 좌석 예약 같은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중심으로 푸드테크가 발달하고 있다. 최근에는 푸드테크의 범위•형태가 다양해졌다. 사람 손과 머리를 대신하는 주방 자동화 시스템, 기존에 없던 뉴푸드와 레시피를 잇따라 개발하고 있다. 
 
   
▲ 3D 푸드 프린터로 출력한 기하학적인 모양의 빵과 채소,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 [사진 푸드 잉크]
국내 푸드테크는 O2O 서비스 중심 
 
젊은층 사이에선 최근 요리 레시피를 제공하는 어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 화제를 모았다. 남이 짜놓은 레시피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재료로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조리법을 제공해서다. 실제로 앱에 주재료로 닭고기를 입력했더니 잘 어울리는 부재료로 새우, 양배추, 건포도를 추천해 준다. 추천한 부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아 ‘×’를 클릭하면 궁합이 잘 맞는 또 다른 재료를 권한다. 
 
이 모든 제안은 바로 인공지능이 한다. IBM의 인공지능 ‘셰프 왓슨’은 사전에 1만여 가지의 조리법을 학습한 요리 고수다. 재료 간의 궁합과 사람이 선호하는 맛에 대한 빅데이터를 갖고 있다. 추천한 부재료를 조합해 요리하면 나만의 메뉴를 만들 수 있다. 요리 초보자라도 문제될 게 없다. 직접 고른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추천 요리 레시피가 방대하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조리법 1만여 가지 배운 AI ‘셰프 왓슨’
 
밀가루나 견과류•우유 같은 특정 식재료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는 재료의 한계 때문에 주방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인공지능 셰프는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 어떤 식단을 추구해도 레시피를 개발하는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왓슨의 수석 엔지니어인 스티브 에이브럼스 박사는 “셰프 왓슨의 강점은 데이터 안에 숨겨진 패턴•관계를 찾아 전례 없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명 셰프의 요리를 내 집 식탁에서 먹을 날도 멀지 않았다. 셰프의 레시피와 음식 만드는 동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로봇 기술 덕분이다. 영국 업체인 몰리 로보틱스는 최근 ‘로보틱 키친’을 개발했다. 두 개의 로봇팔이 장착된 일종의 자동 요리 주방 세트다. 
 
로봇팔에는 20개의 모터, 24개의 관절, 129개의 센서가 달렸다. 3D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해 셰프가 요리하는 손동작을 익혔다. 조리대 주변의 음식 재료를 집어 프라이팬에 올리고 직접 조리한다. 조리가 끝나면 접시에 담아낸다. 식사 후엔 사용한 그릇을 싱크대로 옮겨 설거지 준비까지 도와준다. 한국에서도 주방 로봇 개발 사례가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씨로스’인데 사람을 대신해 설거지, 요리, 심부름을 할 수 있다. 자율주행 및 3차원 물체 인식, 팔과 손의 자동조작 기술을 기반으로 칼질은 물론 냉장고에서 물건 꺼내기, 식기 세척 동작을 수행한다. 
 
주방이 자동화될수록 사람의 일손은 줄어들고 음식의 맛과 모양에는 다양성이 더해진다. 지난 7월 25일 영국 런던에서는 3일간 ‘3D 프린팅’ 팝업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네덜란드의 3D 프린터 제조업체가 기획한 이 레스토랑에선 종이에 글자를 인쇄하듯 음식을 찍어낸다. 예컨대 접시 중앙에 꽃무늬로 장식한 샐러드 요리를 보자. 이 음식은 3D 프린터로 출력된 후 셰프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 것이다.
 
런던에 3D 프린팅 팝업 레스토랑
 
식재료가 3D 프린터를 통과하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잉크로 바뀐다. 노즐을 통해 재료가 층층이 쌓이면서 음식 모양을 만들어낸다. 국내에서도 3D 프린터로 출력한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국내 업체인 로킷이 개발한 ‘초코스케치’는 밀크•다크•화이트 초콜릿 카트리지를 제공한다. 프린터에 카트리지를 끼워 특정 모양을 선택하면 독특한 형태의 초콜릿이 출력된다. 로킷의 손동석 상무는 “제과점이나 커피전문점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3D 초콜릿 프린터가 활용될 수 있다”며 “아직 시장 형성의 초기 단계라 각종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았지만 기술력만큼은 외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식재료에 들어 있는 수백 종류의 향기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푸드페어링’이 대표적이다. 향과 식재료 간의 조합은 사람이 먹고 마셔봐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향기의 종류와 특징을 모두 데이터로 축적해 활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에는 향기의 조합이 좋은 식재료끼리 묶어 ‘푸드페어링 트리’라는 그림으로 보여주는 서비스가 나왔다. 푸드페어링 DB시스템은 셰프들의 신메뉴 개발, 식품 제조회사의 신제품 개발에 일조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은 궁극적으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한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장차 개인별 식단을 제공할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LG경제연구원 이은복 선임연구원은 “최근 미국에서 개인의 선호와 영양 정보에 맞춰 마트의 식품을 추천•평가해 주는 앱이 등장했다. 머지않아 개인별로 좋아하는 음식이 자동 분석돼 건강까지 감안한 식단을 추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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