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공간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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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마리텔>로 유명한 이 프로그램은 방송을 인터넷으로 먼저 실시간 방송을 한 뒤에 편집하여 공중파 본 방송에 내보낸다. 본 방송에서는 어느 정도 편집을 하지만, 사실 생방송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진행하는 방송이다.

방송을 보면, 진행자들은 카메라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 초 단위로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댓글을 살피며 즉석에서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불통 방송’이니 재미가 없다는 뜻의 ‘노잼’이라는 악플이 순식간에 채팅창을 도배하고 만다. 그동안 자신의 입맛대로, 혹은 스타일을 내세우며 방송하던 셀러브리티도 <마리텔>에서 굴욕을 당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요즘 전문가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더욱 고개를 숙이고 귀를 열어야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문적인 역량을 인정받기도 전에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자신의 고집만을 부릴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말을 단지 소통이 유행이라고 해서 남의 말을 들으라는 게 아니다.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디테일을 놓칠 수 있고, 또 공간디자인처럼 실제로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의 입장을 어림짐작으로는 완벽하게 충족할 수 없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대기 홀에 소파가 이런 느낌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간을 많이 차지하겠네요.”

“긴 원목 테이블 대신 놓는다면 괜찮아 보이네요. 어떤 게 더 실용적일지 모르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소파가 더 편하긴 하죠.”

“맞아요. 소파가 더 편하긴 하죠. 젊은 분들은 등받이가 없어도 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등받이가 필요하니 골라서 앉으시면 되겠고….”

   
▲ (사진1/2) 공간 디자인을 전개할 때 보다 더 깊이 있는 설계를 위해 단체 메신저 안에서 수평적 소통을 통해 니즈를 발견한다.

얼마 전 대기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가 마침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이미지를 찾았기에 단체 대화를 나누는 메신저에 올렸다. 그랬더니 저마다 생각을 풀어 놓는다. 환자의 입장을 생각할 뿐 아니라 이 공간을 사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연령을 고려한 의견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진료실 의자를 보고 바퀴가 달린 의자가 실제로 위험하다면서 직접 구글링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의자 이미지를 참고하라고 올려주기도 한다.

메신저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재잘거림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더니 공간에 대해 많은 의견을 제시한다. 자, 이쯤 되면 공간 디자이너라는 내 입지가 무색해지리만큼 재기 넘치는 의견이 넘친다. 아주 디테일한 의견도 올라온다. 평소에 그 공간을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행위와 관련하여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쉽게 알 수 없는 의견이다.

“등받이가 없는 진료의자는 청진기로 진료 시에 꼭 필요했으나 주로 모니터를 보고 상담을 위주로 하는 저희 진료에는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환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안락한 의자가 좋을 것 같고….”

의사 선생님의 의견은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였다. 메신저에서는 이처럼 실시간으로 공간 사용자들이 이슈와 토픽을 내세운다. 어디 그분의 목소리만 들을 만 하겠는가. 메신저 밖에는 더 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환자도, 병원행정 인력도,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환자 곁을 지켜주는 간호사도 저마다 공간에서 디자이너가 보거나 겪지 않았던 경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공간디자인에서 쌍방향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의 소통을 이루어야 공간의 ‘올바른’ 변화도 가능해진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사용자의 목소리는 공간을 비롯해 웬만한 제품을 만들기 전에 반영되고 있다. 프로슈머라는 말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말이다. 프로슈머는 생산자인 프로듀서와 소비자인 컨슈머의 합성어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엘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한 이 말은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의 생산과 개발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도 엘빈 토플러의 말은 고스란히 적용된다.

공간디자인이 공급자가 아니라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예전처럼 클라이언트만 신경 쓴다거나, 혹은 “내가 전문가!”라는 마인드로 일하다가 되려 사용자의 ‘니즈’도 모르는 사람 취급받을 수 있으니까.

keysentences
 
- 마리텔 댓글을 반영한 진행자의 마인드
- 잔디 프로그램에도 실시간 이슈와 토픽을 반영한 설계
- 공간의 변화, 프로슈머, 컨슈머
- 쌍방향 소통의 공간 변화
-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변화

기고: 노미경 위아카이 대표/ 한국헬스케어디자인학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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