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 위험 큰 혈우병, 나이 들수록 골밀도 점검하고 일상적 예방요법 권장

[권선미 기자] 입력 2024.09.03 08.37

[닥터스 픽] 〈133〉혈우병 출혈 예방 치료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어렸을 때 혈우병B로 진단받아 치료 중인 50대 가장입니다. 꾸준히 결핍 응고인자를 보충하는 치료로 큰 문제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50세를 넘으니 관절·근육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직까지 크게 아프지 않지만, 혈우병 환자는 나이가 들수록 골밀도가 낮아져 관절병증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6개월 이내 관절의 자발 출혈이 3회 이상 발생하는 표적 관절이 생기면 관절 수술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괜히 더 신경쓰이고 걱정됩니다. 관절병증이 생기기 전에 뭔가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처럼 응고인자 보충 치료만 잘 받으면 되나요.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영실 교수의 조언

혈우병은 혈액응고 결핍으로 발생해 출혈이 멈추지 않는 희귀 질환입니다. 크게 결핍된 응고인자에 따라 8인자가 부족하면 혈우병 A, 9인자가 부족하면 혈우병 B로 구분합니다. 혈우병으로 인한 출혈은 몸 어디에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상처를 입거나 수술을 받은 후에 출혈이 될 수도 있고, 뚜렷한 이유 없이도 출혈(자연 출혈)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혈우병은 희귀 질환이지만, 만성질환처럼 잘 관리하면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결핍된 응고인자를 보충하는 치료로 잘 지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최근의 혈우병 치료는 응고인자를 미리 보충하는 일상적 예방요법에 주목합니다. 혈우병 환자의 평균 수명이 늘면서 만성 합병증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세계혈우연맹(WFH)에서도 출혈을 막고 만성적인 관절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출혈 패턴, 관절 상태, 약동학, 환자 선호도 등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 응고인자를 미리 보충하는 예방요법을 권고합니다.


물론 부족한 응고인자를 보충하는 보충요법은 출혈 시 통증과 출혈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보충요법으로는 출혈로 인한 근골격계 손상과 다른 합병증의 위험을 유발하는 혈우병의 자연적인 병력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일상적 예방요법으로 출혈을 경험하지 않도록 치료를 진행할 것을 권합니다.

일상적 예방요법은 여러 임상시험을 거쳐 여러 혈우병 치료 가이드라인에 권고될 만큼 효과와 내약성이 입증된 치료입니다. 혈우병B의 일상적 예방요법으로 사용되는 치료제는 노나코그-알파 , 노나코그-감마 등이 있습니다. 이중 노나코그-알파는 혈우병 B 치료에서 20년 넘게 사용되며 예방요법의 유효성을 입증해 온 유전자 재조합 9인자 치료제입니다. 주1회 투여 편의성, 다양한 용량 옵션을 바탕으로 효과와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하며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오고 있습니다.   

관절·근육이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혈우병으로 인한 출혈 징후를 조기에 발견·대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혈우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반복되는 관절·근육 출혈입니다. 이런 출혈이 반복되면 다양한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혈우병성 관절병증입니다. 혈우병성 관절병증은 전체 혈우병 환자의 50%에서 발생할 정도로 흔합니다. 

관절 출혈로 혈관 밖으로 나온 혈액은 관절 내 활액막을 통해 흡수되는데 이 과정에서 염증 반응으로 연골이 파괴됩니다. 특히 관절 출혈이 심각할 경우 관절에서 직접 혈액을 뽑아내는 시술이나 인공관절 수술까지 필요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활액막 염증이 나타났을 때부터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관절 내 활액막은 지혈 작용을 하는 혈전 형성 기능이 떨어져 있어 치료가 늦어지면 재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고로 관절병증은 30대 이후부터 급격히 발병 위험이 증가합니다.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 등 만성질환 관리에도 신경써야 합니다. 혈우병 환자는 미세혈관 내피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있어 지속적인 관절 출혈로 활동 제한이 생기면서 심혈관 질환이나 비만 위험이 높습니다. 여러 임상 연구에서 혈우병 환자는 일반인보다 고혈압 발생률이 2배가량 높다고 보고됐습니다. 특히 평균 혈압이 높아 고혈압약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면서 혈압 조절에 주의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골밀도 점검도 필요합니다. 혈우병 환자는 나이가 들수록 골밀도가 감소해 관절 관련 합병증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혈우병 환자는 골다공증 고위험군입니다. 실제로 많은 혈우병 환자가 골밀도 감소를 겪습니다. 특히 골밀도 감소로 관절병증이 증가하고 관절 운동 범위가 줄어들며 근육 위축으로 외부 활동이 힘들어집니다. 골밀도가 떨어지면서 골다공증성 골절로 뼈가 부러지기도 쉽습니다. 

고령에 접어든 혈우병 환자가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은 적절한 영양 섭취와 체중 관리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느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혈우병 환자에게는 늘어나는 체중이 관절에 더 많은 부담을 주고 결국 잦은 관절 출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면서 합병증과 만성질환을 관리하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진료받을 때 묻지 못했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kwon.sunmi@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닥터스 픽'에서 다루겠습니다.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