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싶어도 못 잔다…수면 습관 바로잡는 디지털 치료로 교정
[권선미 기자] 입력 2024.08.13 08.24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최근 불면증이 생긴 40대 직장인입니다. 눈만 감으면 잠이 쉽게 들었는데 올해 들어 잠을 설치는 날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잠에 들려고 하다가 갑자기 정신이 또렷해지기도 하고, 잠을 잘 자다가 갑자기 깨서 다시 잠에 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설치는 날이 늘면서 회사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피곤합니다. 물론 가끔 잠을 설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잠을 잘 잤는데, 이번엔 안 그렇더라고요. 자주 잠을 설치니 침대에 누울 때부터 걱정입니다. 병원에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수면제를 먹자니 왠지 꺼려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은 교수의 조언
예년보다 빠르게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잠 못 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불면증은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단순한 삶의 질 저하를 넘어 고혈압, 비만, 혈당 조절 문제, 우울, 불안,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등 다양한 건강 문제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습니다.
대개 잠을 설쳐도 건강 문제와 연결짓지 못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불면증이 다양한 건강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실제 잠을 만성적으로 못 자는 환자들의 뇌 MRI를 촬영해 보면 해마다 뇌 부피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수면의 질이 높은 경우 같은 병도 치료 효과가 높습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당뇨병을 앓는 경우라도 혈당 조절이 더 잘 되고 암 치료에서도 더 좋은 예후를 보입니다.
물론 잠을 못 잔다고 모두가 불면증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의 기능과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불면증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보입니다. 불면증의 원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통증이나 호흡기 질환 등 수면을 방해하는 동반질환, 복용하는 약물의 이상 반응, 알코올이나 니코틴 때문에 불면증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밤에 충분히 잠을 잘 수 없다는 생각을 지속하는 심리적인 원인만으로도 불면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잠이 안 오는 증상이 꽤 오래 지속됐다면 반드시 의료진 상담을 통해 불면증을 치료해야 합니다.
불면증 치료하면 보통 수면제를 떠올립니다. 약물에 대한 거부감으로 치료를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불면증은 약물로만 치료하는 질환이 아닙니다. 약물치료는 급성기 혹은 필요한 경우 불면증 인지행동치료와 함께 시행할 수 있습니다. 만성적인 불면증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는 일차 치료법은 비약물적 치료 방법인 인지행동치료(CBT-I)입니다. 미국·유럽·호주·한국 등 여러 나라의 불면증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인지행동치료를 일차적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CBT-I)는 잘못된 수면 습관과 생각을 바로잡아 스스로 잠드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수면 방해 요소를 제한하는 자극 조절, 수면 시간과 기상 시간을 정하는 수면 제한, 잠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을 교정하는 인지 재구성, 수면 위생 교육, 이완요법 등 불면증을 만성화하는 환자의 행동이나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입니다.
낮잠을 자지 않는 것, 늦은 오후 알코올이나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것 등 어떻게 보면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방법이지만,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불면증 치료에 매우 중요합니다. 인지행동치료는 6개월 정도 치료 효과가 지속되며 불안 및 우울 등의 정신장애도 호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6~8 주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실제 진료 현장에서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를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최근엔 인지행동치료의 한계를 보완한 불면증 디지털 치료(슬립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슬립큐는 불면증 치료를 위해 통합심사평가로 지정된 혁신 의료기기 1호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받은 디지털 치료기기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시간·공간의 제약 없이 불면증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인지행동치료에 중요한 지속적인 행동 기록 분석을 토대로 전보다 나은 개선된 행동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슬립큐는 환자의 다양한 데이터로 수면 패턴을 분석해 개인 맞춤형 치료를 제공합니다. 환자 스스로 수면 패턴을 이해하고 불면증 증상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실제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 슬립큐로 치료를 받은 불면증 환자군은 7주 시점에 수면 효율 비율이 기저치(Baseline) 대비 약 15% 증가한 것으 로 나타났습니다. 수면 효율은 환자의 수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객관적·정량적 지표입니다.
불면증은 삶의 질뿐 아니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빨리 치료를 받을수록 치료 기간이 줄고 효과가 높아집니다. 약물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 아니고 디지털 치료기기라는 새로운 치료 옵션이 생긴 만큼 치료 시작을 미루지 말기를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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