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초혼 연령…난임 치료 늦어지면 임신도 오래 걸려요
[권선미 기자] 입력 2024.04.23 08.37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최근 결혼한 30대 중반 여성입니다. 주변에선 이미 나이론 고령 산모라며 출산 생각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임신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2~3년 정도 더 신혼생활을 즐기고 싶습니다. 한편으론 그땐 30대 후반인데 혹시나 임신이 어려울까 봐 걱정됩니다. 이제 막 결혼했으니 1년 정도 자연 임신을 시도해보다가 아이가 안 생길 때 난임 병원을 찾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이오라여성의원 문경용 원장의 조언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임신 계획이 있고 나이가 30대 중반인 만큼 가능한 빨리 난임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산부인과 병의원을 방문해 난소 기능부터 점검하길 바랍니다. 난소 기능은 미래 가임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입니다. 이 결과에 따라 자연 임신이든, 난임 치료든, 난자 냉동이든 고민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난소 기능은 항뮬러관호르몬(AMH·Anti-Mullerian Hormone)이라는 호르몬 검사로 쉽게 측정 가능합니다. 월경(생리) 주기와 상관없이 간단한 혈액검사로 며칠 안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난소 기능이 점점 저하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을 수 있습니다. 월경도 규칙적이고 생리통도 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료 현장에서 30대 중반이어도 난소 기능이 이미 많이 저하된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한국은 취업, 경력 관리, 주택 마련을 이유로 결혼을 늦추면서 임신을 시도하는 연령 또한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실제 2022년 우리나라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3.7세, 여성 31.3세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출산한 산모의 평균 연령은 33.53세로 ,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고령 임신 기준인 35세와 점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난임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도 늦은 편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선 난임 치료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라 자연 임신 시도에만 평균 3.6년을 보내며 난임 치료의 시작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난임 치료를 망설일수록 임신에 이르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난임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에 나이가 많을수록 반복적인 실패를 겪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여성의 난자 수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연령이 증가할수록 난자 수가 줄어들고 난자의 질도 떨어지게 됩니다. 사람마다 보유 난자 수가 다르고 난자 수가 줄어드는 속도 역시 다릅니다. 보유 난자 수가 많이 줄면 배란 능력이 떨어지고, 난임 치료를 위해 생식세포를 선별해 배아를 키우고 착상을 시도하는 시험관시술도 채취 난자 수가 적어져 성공률이 낮아지게 됩니다.
생식의학 등 난임 치료 기술이 발전해도 생물학적 나이에 따른 임신 성공률은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난임은 빨리 치료를 시작할수록 유리합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난임 치료 분야 의료진이 자녀 계획이 없는 부부가 아니라면, 1년 후가 아닌 ‘가능한 한 빨리’ 병원을 방문해 일단 난소 기능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만 35세 이상 여성에서도 양질의 난자를 얻기 위해 다양한 치료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치료법이 도입돼 성과가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일례로, 시험관시술 준비를 위해 사용되는 과배란유도 주사 중 폴리트로핀 델타의 경우 체중과 난소 기능(AMH 수치)을 고려해 치료 용량을 결정합니다.
30대 중반 여성으로 현재 결혼이나 자녀 계획 시점이 불확실하다면 난자 냉동을 고려하는 것도 대안입니다. 지금은 난소 기능에 이상이 없더라도 향후 나이가 더 들어 난소 기능이 떨어지고 난자의 질이 저하되기 전에 양질의 난자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여성은 임신을 위해 평생 쓸 수 있는 난자 갯수가 제한돼 있고 난자의 질도 35~38세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난자 냉동을 위해선 시험관아기 시술과 마찬가지로 과배란을 유도해야 합니다. 과배란으로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한다고 몸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은 배란할 때 여러 개의 난자를 동시다발적으로 성숙시키다가 선택 받은 우성 난자 하나만 남기고 퇴화합니다. 과배란은 퇴화로 자연스럽게 없어질 운명의 난자를 살려내 채취합니다. 앞으로 쓰일 난자가 아닌 없어질 난자에 영향을 미치는 셈입니다. 난소 기능이 떨어진 경우라도 적정 수량의 난자를 채취할 수도 있습니다.
가임기 여성으로 언젠가 아이 낳을 마음이 있다면 당장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자녀 계획이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난소 기능 검사를 받아보길 바랍니다. 난소 기능 검사가 미래의 난임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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