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의사를 보듬어 주던 순간

[은영민 교수] 입력 2024.04.02 07.20

은영민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최근 필수의료 살리기 대책 및 의대 정원 이슈와 더불어 정부와 의사들이 심각한 갈등을 겪는 상황이다. 전공의 사직 등 의료 현장의 인력 부족으로 한 달 이상 숨 가쁘게 어려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얼마 전 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수들도 사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언론보도가 나간 후 A 환자가 진료 예약을 당겨 내원했다. 10년 이상 진료해 왔고 성인 선천성 심장병으로 두 차례 심장 수술을 거친 후 올해 60세가 된 환자다. 겉으론 누가 봐도 건강하고 훌륭한 어른이지만 속으론 늘 ‘이걸 해도 될까’ ‘저걸 해도 될까’ 걱정한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여러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어른이 돼 살아가는 모든 환자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감기에 걸려 간단한 약 하나 받으려고 근처 내과 진료를 받아도 원래 다니던 병원 주치의에게 가란 말을 듣고 달려오기 일쑤다. 행여 작은 불편한 느낌만 들어도 ‘혹시 심장 문제일까’ 걱정하게 되기 쉬운 환자들이다.

나는 차트를 열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무슨 불편이 생겨 급히 예약을 당겼나 살피고 있는데, 환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교수님 나 아파서 온 거 아니에요. 신문 보고 교수님 사직할까 봐 왔어요.” 나는 ‘아, 요즘 의료계 문제로 걱정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해 안심시키려는데, 환자가 또 말을 이었다. “사직해야 하면 하셔요. 기다릴게요. 그렇게 해서라도 필수 의료 살리기 할 수 있으면 해야 해요. 진짜 더 나은 의료 여건 만들기 위해서라면 사직 아니라 뭐라도 하셔요.”

나는 순간 의사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는 이 환자에 격하게 감동해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해졌다. 환자가 다시 얘기했다. “여론 안 좋은 거 알아요. 사람들이 아직 잘 몰라서 그래요. 교수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저희 챙겨주시는 줄 몰라서 그래요. 저 그동안 교수님이 하라는 거 잘하면서 씩씩하게 기다릴 테니 사직해야 하면 하셔요.”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고 환자가 힘을 실어 지지해 주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리가 보살펴야 할 대상인 환자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의사를 지켜주려고 이렇게 애쓰는구나’ 생각하니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이 밀려왔다.

이런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정부는 알까. 그래도 국민은 알 것이다. 정말 오래 아파 온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이런 실제 현장의 모습을 보고, 듣지 않고 어떻게 의료 정책을 논할 수 있겠는가. 전공의·교수 사직 등 연이은 강대강 상황이지만 의사는 환자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 더 좋은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정부·사회와 소통하려고 절실히 노력하는 것이다. 필수 의료가 바로 서지 않으면 국민 건강은 위험해지고 그 핵심에서 바른 의료를 행하는 것이 의사들의 책임이다. 엉성한 교육과 부족한 시스템에서 겉핥기식 의료가 될까 봐 크게 우려하며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것이다.

누구보다 걱정이 많을 수 있는 환자 입장에서 의사를 이해해 주고 믿고 기다려 준다니 깊이 감동했다. 이 환자처럼 진료 중에 응원의 말을 전해주는 또 다른 많은 환자·보호자 모두에게 감사한다. 의사들은 환자를 위한 더 좋은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지금 잠시 불편하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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