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생식력은 30세부터 완만히 감소…AMH 혈액검사로 난소나이 체크해야
[신지은 교수] 입력 2023.12.08 08.56
[탄생의 동행] 분당차병원 난임센터 신지은 교수
여성이 한 생명을 만들고 품을 수 있다는 건 숭고하고 정말 대단한 일이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다른 생식 시스템을 갖는다. 남성의 생식 세포인 정자 같은 경우 계속 생성되는 세포이지만, 여성은 평생 쓸 난자가 정해진 채 태어난다.
사춘기 무렵 초경이 시작되면서 한달에 한번씩 가지고 있는 난자들이 배란되다 점차 고갈되면서 완경(폐경)에 이른다. 물론 완경이라도 임신은 어렵지만 난소에는 1000여 개 난자가 남아있다고 한다. 같은 여자로서 약간 억울한 마음도 들고 조물주의 깊은 뜻이 있겠지만 이렇게 타고난 것을 어쩌겠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이 유한한 시간속에서 특히 어떤 특정한 나이 이후에는 임신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임신이 잘되는 젊은 나이에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가임력 체크라든지, 가임력 보존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하지만 2022년 우리나라 평균 초혼 연령 31세, 평균 초산 연령 33세인 현재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미래의 고귀한 생명체를 위해 뭔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성의 나이에 따른 생식력은 20~24세에 최고조에 달하고 대략 30~32세까지 비교적 완만히 감소하다가 그 이후에는 급감한다. 35세가 넘어가면 임신율은 급속하게 떨어지고 반대로 유산율은 올라가게 된다. 35세 이후 남아있는 난자의 개수 역시 급속히 감소하게 된다. 20대에는 결혼 전 조심해도 원치 않는 임신이 되는 경우가 많고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인생이라는 것이 늘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듯 내가 아직 준비가 안됐을 땐 덜컥 임신되는 반면 학업을 마치고 집을 마련하고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위치가 돼 이제는 아이를 가져도 되겠다 싶을 땐 이미 난소 기능은 약해져 아이 갖는게 쉽지 않게 된다.
난소가 나이들어 감에 따라 임신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30대 후반까지도 철저히 피임을 하다 40세가 돼 마음이 바뀌어 이제 아이를 가져보겠다고 오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요즘은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해 난소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AMH(항뮬러리안호르몬)는 난소 속 미성숙 난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해당 수치가 높으면 난소 내 배란될 난포들이 많다는 뜻이고 수치가 낮으면 배란될 난포가 적다는 의미로 내가 가지고 있는 난자의 수·양을 예측하는 지표다.
평균적인 AMH 수치는 30대 미만에서 4~5점, 30세 초반은 3~4점, 30세 후반은 2점, 40세 이후에는 1점 미만으로 떨어지게 된다. ①조기 폐경의 가족력이 있거나 ②생리가 불규칙하며 폐경기 증상(안면홍조, 푸석해진 피부, 발한, 수면장애, 불안·우울감, 건망증, 무기력증)이 동반된 경우 ③이전에 난소 수술을 받았거나 앞으로 예정인 경우 ④자가 면역 질환을 진단 받은 경우 ⑤암으로 진단받아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을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난소 기능 검사를 반드시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세대 전에 비해 요즘은 외모로 보면 10년씩은 더 젊어 보인다. 겉으로만 보면 40대임에도 30대처럼 젊어 보인다.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난소는 나이에 훨씬 민감하게 노화가 진행돼 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어나는 주름살이라든지 희끗희끗 한가닥씩 생겨나는 흰머리는 거울로 확인이라도 할 수 있지만 골반 안쪽에 위치한 난소의 나이듦은 알아채기가 어렵다.
난소 기능은 점점 저하돼 가고 있는데 다른 부인과적 질환들처럼 예를 들어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같은 경우 심한 생리통을 유발할 수 있지만 난소 기능이 약해져 가는 건 딱히 증상도 없다. 생리도 규칙적으로 잘하고 생리통이 심하지도, 생리량이 특별히 많거나 적지도 않은데 검사에서 우연히 난소 나이가 폐경 여성의 나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절망스러운 얼굴로 내원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국가암검진 사업을 통해 만 20세 이상 여성에서 2년마다 무료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고, 조기 진단·치료로 자궁경부암의 유병률이 감소한 성과처럼 가임기 미혼 여성들에게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한 난소 기능 체크는 미래의 난임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출산 캠페인이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였던 적이 있었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로 돌아온 부메랑은 어쩌면 그때의 가족 계획 운동이 이제야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세대가 지난 후에는 또 어떤 캠페인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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