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지 환자 신경학적 예후 개선하려면 치료 여건부터 개선돼야”

[신영경 기자] 입력 2023.09.27 15.10

[인터뷰] 한국저체온치료학회 조인수 회장

급성 심정지 환자에겐 시간이 곧 생명이다. 응급 상황인 만큼 치료가 늦어지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초 단위로 예후가 달라지기 때문에 환자는 짧은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골든타임 내 심폐소생술(CPR)을 받았어도 의식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체온 치료로 알려진 ‘목표체온 유지치료’는 이런 상황에 놓인 환자에게 실낱같은 희망으로 작용한다. 환자의 몸속 체온(심부 체온)을 낮춰 뇌를 비롯한 신체 손상 위험을 낮춘다. 더 빨리, 더 안전하게 환자의 일상 복귀를 돕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하지만 국내에선 목표체온 유지치료를 시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한국저체온치료학회 조인수(사진) 회장에게 목표체온 유지치료의 필요성과 저변 확대 방안을 물었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

-심정지가 치명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심장이 멈추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일단 몸 곳곳에 혈류가 공급되지 않아 온몸의 세포와 조직이 괴사한다. 멎었던 심장이 다시 뛰어 혈류가 돌기 시작해도 ‘허혈성 뇌 손상’과 ‘재관류 손상’이 일어난다. 결국 심장이 멈춰 쓰러지면 환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응급처치를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생존 가능성이 달라진다.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은 4분 이내다. 급성 심정지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목격자 심폐소생술이다. 심정지 환자를 발견하면 먼저 119에 신고한 뒤 빠른 시간 내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는 것이 도움된다. 심정지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른다. 이 점을 기억하고 평소 응급 행동요령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목표체온 유지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언제인가.
“심정지 환자에겐 목표체온 유지치료가 유용한 치료법으로 통한다. 심정지 후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장박동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한 환자가 주 대상이다. 심정지 환자 중에서도 소생 가능성이 있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만한 경우 특히 권장된다. 또 목표체온 유지치료가 뇌졸중이나 급성 뇌 손상 환자의 신경학적 예후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다. 신체 온도가 떨어지면 뇌부종을 완화해 뇌압으로 인한 뇌 손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가 막혀 심장이 멎은 신생아에게 목표체온 유지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의식이 회복할 가능성만 있다면 시도해 봐야 하는 치료법이다.” 

-어떤 원리로 치료가 이뤄지나. 
“목표체온 유지치료는 환자의 심부 체온을 낮춘 뒤 정상 체온으로 서서히 끌어올리는 치료법이다. 체온은 32~36도 사이로 설정해 최소 24시간 이상, 72시간까지 유지한다. 신진대사와 산소 소비량을 줄여 뇌세포 파괴와 재관류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체온이 1도 낮아질 때마다 뇌의 대사는 6~10% 감소한다. 뇌로 가는 혈액 공급이 줄어도 뇌가 심각한 손상을 입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얘기다. 혈관 수축 효과가 있어 뇌손상 환자의 신경을 보호하고 뇌압을 낮춘다. 이 치료를 통해 10명 중 1~2명은 뇌사 상태에서 벗어난다.”

-목표체온에 도달하는 방식이 궁금하다. 
“치료는 크게 침습적인 방식과 비침습적인 방식으로 나뉜다. 침습적 방식은 정맥에 수액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혈관 내에 풍선 카테터를 삽입한 뒤 차가운 생리식염수를 흘려보내 체온을 떨어뜨린다. 비침습적 방식의 경우 젤 패드 및 표면 냉각장치를 이용한다. 하이드로젤 패드를 환자 몸에 부착해 환자 체온을 서서히 낮추는 식이다. 비침습적 목표체온 유지치료 기기는 벡톤디킨슨(BD)코리아의 ‘아틱선(ArticSun)’이 대표적이다. 2019년부터 보험급여가 적용돼 환자의 치료비 부담이 크게 줄었다.” 

-비침습적 방식이 더 안전한가. 
“침습적 방식은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목표체온엔 비교적 빨리 도달할 수 있지만, 감염이나 혈전 발생 위험이 커진다. 반면 비침습적 방식은 침습적 방식보다 냉각 속도는 느리지만 감염 위험이 적고 안전하다. 피부에 냉각 패드만 부착하면 치료를 빠르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신경중환자학회(NCS)는 목표체온 유지치료 시행 가이드라인에서 젤 패드를 이용한 비침습적인 방식을 권장한다.”

-보험급여 적용 후 크게 달라진 점이 있나.
“확실히 시술 건수가 늘었다. 치료비에 대한 환자의 부담이 줄면서 치료 접근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급여가 적용된 이후 과거 대비 치료비가 5분의 1 정도 낮아졌다. 본인 부담금이 약 30만~50만 원 수준이다. 중증질환 산정 특례를 인정받으면 본인 부담률은 더 낮다. 이에 따라 신경계 중환자실에서 목표체온 유지치료 사용 사례가 늘고 있다.” 

-아직 치료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 같다.
 “그렇다. 목표체온 유지치료가 모든 병원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진 않다. 치료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임상 연구도 아직 부족한 상태다. 심정지 환자도 드물어서 먼저 치료법을 알고 요구하는 보호자가 많지 않다. 통상 응급의학과 의료진의 권유로 치료가 이뤄진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목표체온 유지치료가 환자의 예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치료 확대를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치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순서다. 의료진을 비롯해 일반인도 목표체온 유지치료의 필요성을 알고 이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적정 수가가 보장돼야 치료 발전이 뒤따를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저체온치료학회는 목표체온 유지치료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치료와 관련한 심포지엄을 주도하고 있다. 최신 지견과 임상 적용 노하우를 공유하면서다. 또한 전공의를 비롯한 응급의학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목표체온 유지치료 시뮬레이션 교육도 진행한다. 

국내에선 매년 약 3만 명 이상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다. 그중 뇌 기능 손상 없이 회복하는 환자는 약 5% 뿐인 것으로 알려진다. 심정지 상황에서 심폐소생술로 심장 기능을 회복한 뒤 목표체온 유지치료를 진행한다면 뇌손상을 크게 줄여 장애나 후유증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로선 목표체온 유지치료가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고 신경학적 손상을 줄이는 가장 중요한 치료법이다. 의료 현장에서 목표체온 유지치료가 활발히 이뤄지려면 치료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의료진의 적극적인 치료를 독려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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