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문제, 마음도 함께 치료해야 희망도 커집니다”
[신영경 기자] 입력 2023.08.10 08.45
난임으로 고통받는 부부가 늘고 있다. 난임 부부는 치료에 나서기 전부터 수많은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난임 치료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난임 부부가 겪는 정서적인 어려움은 지원이 필요할 정도다. 중앙일보헬스미디어는 마리아병원과 함께하는 난임 극복 캠페인 ‘희망이 생명을 만든다’의 일환으로 마리아플러스 김상돈(산부인과 전문의) 부원장에게 난임에 대처하는 마음 관리법에 대해 들었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
-난임 치료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환자가 난임 치료를 주저한다. 난임 치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주변인을 통해 치료 과정이 힘들다는 소리를 자주 듣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난임 부부들과 난임 치료를 진행해 보면 신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더 큰 것 같다.”
-치료 과정에서 심리적 부담이 클 것 같은데.
“난임은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기에 난임 부부의 심리적 어려움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긴 힘들 것 같다. 심지어 가까운 가족조차도 난임 부부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난임이라는 상황은 몇 가지 특수성을 갖고 있다. 첫째는 임신이 보편적인 인생의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남들 다 하는 임신을 나만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고 자존감이 하락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자책을 하게 된다.
둘째는 시간이 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신은 1년 365일 언제든 원하는 때에 시도해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임신이 가능한 기간은 남자나 여자에게서 인생 전체의 기간 중 일부분이다. 특히 그 기간은 여성의 경우 더 짧다. 시간이 지날수록 즉 나이가 들수록 임신 확률은 감소한다. 이러한 시간적인 이유 때문에 제한된 시간에 가까워서 임신을 시도하면 조급함과 절박함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심리적인 부담을 더 크게 만든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되지’가 아니라 ‘이번에 안 되면 끝인데’ ‘이번에도 안 됐는데 다음이라고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셋째는 노력에 대한 의미를 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이수 또는 미이수(pass or fail)로 나타나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fail일 경우 노력의 의미가 사라질 수 있다. 노력한 것에 대해 합당한 결과가 주어지면 그 결과가 또 다음 과정에서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난임의 과제에서는 중간 단계의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이번 단계에서 시도한 결과가 fail일 경우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동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마지막은 난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부의 문제, 가족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성원 개개인의 입장이 다른 경우 각자의 입장 차이가 또 다른 갈등과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내와 남편에게는 자녀의 문제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자손의 문제이기도 하다.”
-난임 부부가 겪는 스트레스를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는 게 바람직한가.
“임신은 부부가 함께 이루는 공동의 과제다. 하지만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나 부담은 부부 중 여성에게 훨씬 더 많이 발생한다. 실제로 임신이 여성의 몸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임신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여성에 대한 이해와 아내에 대한 배려가 훨씬 많이 필요해 보인다.
난임 부부에 대해서는 두가지 차원의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난임 부부의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부정적인 반응은 본인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우울한데 왜 우울한 지 모른다. 날카로운 반응이 왜 나오는지 모르지만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난임 치료를 위해 고농도의 호로몬 제제를 사용하면 호르몬 성분 자체도 정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먼저 자신이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고, 이와 함께 뒤따를 신체적·정서적 반응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내 모습을 그럴 수 있다고 수용하고 안아줄 때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이해가 먼저 될 때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 필요한 적절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난임 부부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난임 치료의 과정은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지만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아내는 몸과 마음으로 호르몬적, 정서적인 로딩을 다 받아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아내를 탱커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남편은 힐러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의 팀 메이트인 아내의 에너지 레벨을 계속 체크하고 힐링 포션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에너지 레벨도 계속 관리해야 한다. 내가 죽으면 팀 메이트를 살릴 사람이 없다는 절대적인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다른 가족 구성원도 모두 같은 팀 메이트가 돼서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부모님이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틈틈이 따뜻한 조언을 전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마법사나 성기사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직장 동료나 주변 사람의 따뜻한 배려가 있으면 더 좋다. 그러나 이 부분은 사회적인 공감과 공동체 안의 문화가 먼저 형성돼야 가능한 부분이다. 이처럼 내부로부터의 이해와 외부로부터의 이해가 적절하게 이뤄지면 스트레스와 부담을 많이 줄이고 힘든 과정을 잘 견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주변인은 난임 부부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난임 부부 당사자를 공감하고 수용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주번의 많은 사람이 난임 부부에게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조언과 충고를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공감과 신뢰가 쌓이지 않은 단계에서 전하는 섣부른 조언이나 충고는 당사자에겐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 또한 걱정을 덜어준다고 너무 일반화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마음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건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난임이라는 상황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고는 남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즉흥적인 생각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상황이라면 어떨지 깊이 생각하고, 그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말과 행동이 필요할 것 같다.”
-난임을 걱정하는 환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실제 임신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최근엔 결혼 연령과 임신을 시도하는 연령이 높아지고있어 현대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임신율이 예전처럼 높지 않다. 임신의 확률이 높지 않다는 건 임신이라는 과제가 단기간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임신을 시도하는 입장에서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긴 호흡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질병의 치료도 그렇고 세상의 모든 일이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해서 다 뜻대로 원하는 결과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임신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 최선의 노력과 과정이다.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만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면 결과가 어떻든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임신을 시도하는 과정을 두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인생의 한 과정이고, 내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통해 나에게 자녀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자녀가 생기면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되돌아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단 하나뿐인 나의 인생을 디자인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자녀를 가질 임신 준비가 완성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