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말기 콩팥병 폭증하는 한국, 재택 치료 등 정책적 개입 필요”
[권선미 기자] 입력 2023.05.16 08.54
투석 치료가 필요한 말기 콩팥병은 암·치매보다 진료비 지출이 높은 질환이다. 콩팥 기능이 남아있을 땐 연간 진료비가 1인당 10만원 수준이지만 투석 치료를 받으면 연 진료비가 3000만원으로 폭증한다. 문제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말기 콩팥병 환자 증가세가 빠른 국가라는 점이다. 2021년 기준으로 투석 치료를 받고 있는 국내 말기 콩팥병 환자는 10만 명이 넘고, 연간 3조원의 의료비가 투석 치료에 쓰이고 있다.
말기 콩팥병 진료비 폭증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보다 먼저 위험성을 인식한 미국은 적극적인 국가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2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포함해 미국 신장학회(ASN), 환자단체, 의료기관, 연구기관, 제약회사 등이 상호 협력하는 신장 건강 증진 이니셔티브(Kidney Health Initiative·KHI)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2019년 7월에는 미국 행정부에서 만성 콩팥병 환자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 환자 중심의 치료를 촉진해 사회경제적 비용을 절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신장 건강 증진(Advancing American Kidney Health Initiative·AAKHI) 행정명령을 공포했다.
한국에서는 올해 대한신장학회가 만성 콩팥병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환자 중심 치료를 위한 국민 콩팥건강증진계획 2033(KHP2033·Kidney Health Plan 2033)을 선포했다. 향후 10년간 만성 콩팥병의 인지도를 높여 원인 질환인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질환 악화로 만성 콩팥병 이환을 억제하고, 말기 콩팥병 환자의 재택 치료(복막투석, 신장이식) 비율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미국의 말기 콩팥병 치료 환경 개선에 집중한 미국 재택투석연합회 상무이사이자 벤 스트레테지 대표인 스테파니 실버맨이 한국의 KHP2033 프로젝트 수행을 주도한 대한신장학회 김성균(한림대성심병원 신장내과) 총무이사와 만나 복막투석 등 말기 콩팥병 치료 환경을 위한 정책적 지원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미국 재택투석연합회 스테파니 실버맨 상무이사(왼쪽)와 대한신장학회 김성균(한림대성심병원 신장내과 교수) 총무이사.
-국내에서 말기 콩팥병으로 투석 치료를 받는 사람이 늘었는데.
김성균 교수(이하 김 교수)=“우려스러울 정도다. 한국은 투석·신장이식 등 콩팥대체요법이 필요한 말기 콩팥병 환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국가다. 현 추세가 계속되면 더 많은 의료비가 말기 콩팥병 치료에 쓰이면서 사회·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한다. 콩팥 기능이 떨어지는 만성 콩팥병은 고혈압·당뇨병 등 여러 만성질환이 원인이 돼 생기는 질환이다. 모든 질환 중에서 환자 1명당 진료비가 가장 높다. 특히 말기 콩팥병으로 투석 등 콩팥 기능을 대신하는 콩팥대체요법으로 진행하면 의료비 지출은 더 커진다. 대한신장학회에서 먼저 나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콩팥 건강 관리를 위한 질병 인식도를 높이기 위해 KHP2033을 선언한 배경이다.
①현 상태에서 2033년 예상되는 만성 콩팥병 환자 수를 10% 줄이고 ②말기 콩팥병으로 진행하는 가장 흔한 원인인 당뇨병 콩팥병 환자 비율을 10% 줄이며 ③말기 콩팥병 환자의 재택치료(복막투석, 신장이식) 비율을 33%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만성 콩팥병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증가폭을 줄여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한다.”
스테파니 실버맨 상무(이하 실버맨 상무)=“미국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미국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센터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15%인 약 3700만 명이 만성 콩팥병을 앓고 있다. 이 중 매년 새롭게 투석치료를 시작하는 사람이 10만 여명이다. 특히 말기 콩팥병으로 악화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면서 급증하는 의료비 부담에 주목했다.
실제 국가에서 의료비의 80%를 지원하는 메디케어 보험가입자 중 말기 콩팥병으로 투석 치료를 받는 사람은 1.2%다. 그런데 이들에게 투입되는 비용이 전체 메디케어 예산의 약 7%나 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미국 행정부는 2019년 미국 국민을 위한 신장 건강 증진 행정명령(AAKHI·Advancing American Kidney Health Initiative)를 공포했고, 2021년부터 발효돼 시행 중이다.
AAKHI의 가장 큰 목표는 말기 콩팥병으로 인한 초기 사망률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남아 있는 콩팥 기능 유지 등에 유리한 재택 투석 비율을 늘리는 것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보험급여 정책을 도입한 것이 결정적이다. 만성 콩팥병을 치료하는 병의원을 대상으로 재택 투석 묶음 수가(Bundled payment)를 지원하고, 재택투석 치료 비율을 높이면 가산 인센티브(ETC·End-stage renal Treatment Choice)를 제공했다. 이런 노력으로 제도 시행 1년 만에 복막 투석 등 재택 투석 비율을 15%까지 늘렸다. 역대 가장 높은 재택 투석 치료 비율이다.”
-복막 투석과 같은 재택 투석 비율을 늘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 교수=“국내외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집에서 일상적으로 투석이 가능한 복막 투석이 혈액 투석보다 잔여 콩팥 기능 유지에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기 콩팥병으로 진행하면 콩팥 기능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사망률 등 임상적 예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콩팥 이식을 받은 후에도 복막 투석으로 잔여 콩팥 기능을 유지했을 때 더 긍정적이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서 복막 투석 환자 재택 관리 시범사업에서도 이런 결과를 확인했다. 재택관리 시범사업 등록군은 미등록군에 비해 연간 응급실 방문 횟수, 환자 사망 등 모든 관리 지표가 미등록군에 비해 좋았다.
<재택 관리 시범사업 결과>
복막 투석은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도 유리하다. 혈관을 통해 노폐물을 걸러내는 혈액 투석은 일주일에 3번씩 빠지지 않고 병의원을 방문해야 한다. 한 번에 3~4시간에 걸쳐 투석한다. 병원을 오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하루 반나절은 필요하다. 결국 투석 치료로 직장·학업 등 생업을 유지하기 매우 어렵다. 반면 복막 투석은 상대적으로 병원을 찾는 횟수가 월 1회로 적다. 투석 치료를 받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일상 유지가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은 의료 환경적 이유로 전체 투석 환자의 94.6%가 정기적 병원 방문이 필요한 혈액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환자 삶의 질 개선에 유리한 재택 치료를 활성화하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버맨 상무=“공감한다. 사실 AAKHI가 도입되기 전인 2012년부터 미국신장학회(ASN)을 중심으로 환자 중심 치료를 위해 신장 건강 증진 이니셔티브(Kidney Health Initiative) 활동을 했다. 그 당시 미국의 혈액 투석 비율은 89.8%다. 지속적으로 노력했지만 복막 투석 비율을 2%가량 높이는데 그쳤다. 그런데 AAKHI를 시행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니 여러 해 동안 지지부진했던 재택 치료 비율이 단기간에 크게 늘었다. 정책적 개입이 의료 환경의 실질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체감했다.”
-장점이 명확한데 환자가 복막 투석 등 재택 치료를 선택하는 비중이 왜 낮나.
김 교수=“환자가 혼자 스스로 잘 관리할 수 있을지 두려워서다. 말기 콩팥병으로 콩팥 기능이 더 나빠지면 생명이 위중해지니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의료진 입장에서 복막 투석 초기에는 이런저런 주의점을 세심하게 알려주고 점검해주는 등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 게다가 한국은 병원 접근성도 좋으니 전문적 관리가 가능한 혈액 투석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다. 사실 20여 년 전만해도 복막 투석 비율이 26%로 높은 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막 투석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면서 ‘투석 치료=혈액 투석’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투석은 평생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의 일상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준비없이 투석을 시작하기보다 선제적으로 의료진과 함께 다양한 투석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투석 시기, 방법 등을 미리 결정하는 것이 좋다. 투석이 두렵다고 미루면 콩팥 상태만 더 나빠질 뿐이다. 응급 투석으로 불필요한 비용 지출도 늘어난다. 투석 치료를 시작한 환자에게 왜 혈액 투석을 선택했느냐고 물어보니 버티고 버티다 응급 혈액 투석을 받고 혈액 투석을 시작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복막 투석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한신장학회는 다양한 투석 방식을 알리고 환자와 공동의사결정을 위한 '다행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실버맨 상무=“미국도 혈액 투석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인식 개선도 필요하지만 정책적 지원도 분명 필요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투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리고 인센티브 등을 통해 재택 치료를 시행하는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재택 치료 비율을 단기간에 빠르게 늘릴 수 있었다. 실제 복막 투석 등 재택 치료를 활성화했을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ETC 정책을 미국 50개 주 중 30% 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시행했더니, 인센티브 지급 1차 년도에 재택 치료 비율이 14~15%로 늘었다. 또 콩팥 이식을 위한 대기자 명단에 등록된 비율도 증가했다.
물론 정책이 시행된 시점이 코로나19 유행 시기와 겹쳐 성과를 판단하는데 제한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책적 지원이 지지부진했던 복막 투석 등 재택 치료 비율을 빠르게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투석이 필요한데 병원 방문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김 교수=“복막 투석 등 재택 치료가 필요한 이유다.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감염병으로 필요성을 더 체감했다. 혈액 투석은 정기적인 병원 방문이 필수적인데 병상 부족 등으로 제때 투석하지 못하면 생명에 치명적이다. 하루이틀만에 전신 상태가 빠르게 나빠진다. 실제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투석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 위해 전화를 몇 백통이나 돌렸다는 사례가 기사화되기도 했다. 대한신장학회 소속 의료진도 투석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달려가 24시간 돌아가며 진료를 지원했다. 언제, 어떻게 낯선 감염병이 또 확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방식의 투석 치료를 결정할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실버맨 상무=“도관 삽입이 필요한 복막 투석이나 동정맥루 수술이 필요한 혈액 투석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한 번 투석을 시작하면 평생 해야 한다. 회피하기보다 냉정하게 장단점을 평가하고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 예컨대 집에서 투석을 한다면 투석 용액 등은 보관할 장소는 확보 가능한지, 매일 저녁마다 안정적으로 투석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복막염 등을 대비한 전문 의료진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 최근엔 투석 치료 분야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하면서 복막 투석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 실시간 모니터링도 가능하다. 자동복막투석 장비 뿐만 아니라 손투석도 모든 데이터가 자동으로 의료진에게 전송돼 케어할 수 있다.”
-복막 투석의 경우 집에서 혼자 관리해야 한다는 걱정이 클 것 같은데.
김 교수=“공감한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하면 당연히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복막 투석을 잘 유지하는 데 도움되는 전문적인 교육과 실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복막 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에서 복막 투석 교육과 모니터링을 병행했더니 복막염 등 투석 관련 합병증이 더 낮은 것을 확인했다. 입원·응급실 방문 횟수가 줄었고 사망률도 낮았다. 의료비 지출 역시 적었다. 다만 시범사업이라 그 이후가 우려스럽다. 국가 정책적으로 본사업으로 전환해 말기 콩팥병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여야 한다.
또 복막 투석 등 재택 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 환자·의료진 등이 공동으로 어떤 투석 치료가 좋은지 논의하는 공동의사결정을 위한 다학제 진료 수가 등 별도의 수가를 신설해 최적의 투석 방법을 적기에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환자가 안정적으로 복막 투석 치료를 유지하도록 반복적으로 교육하는 투석 교육 수가 등도 필요하다.”
실버맨 상무=“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만성 콩팥병으로 사회·경제적 부담이 큰 상황이다. 특히 만성 콩팥병의 원인 중 하나인 당뇨병 콩팥병이 빠르게 늘면서 위기의식이 컸다. 투석 치료가 필요한 말기 콩팥병 환자의 폭증으로 의료비 지출이 늘 것이란 것은 명백하게 예견되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단일 질환인 만성 콩팥병에 주목한 이유다. 특히 복막 투석 등 재택 치료 활성화로 말기 콩팥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환자 입장에서도 재택 치료의 긍정적 요소에 만족하는 편이다. 더 늦기 전에 한국도 정책적 지원 등의 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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