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골수성백혈병, 이렇게 하면 기능적 완치 가능

[권선미 기자] 입력 2022.09.20 07.25

[닥터스 픽] 〈29〉만성 골수성백혈병 치료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만성 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받은 43세 남성입니다. 처음엔 백혈병이라는 말에 너무 놀랐지만, 예전과 달리 약이 좋아져서 통원 치료를 받으며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만성 골수성백혈병은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약 종류를 찾아봤더니 너무 많아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바꾸면 약물 내성, 부작용 등으로 치료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 맞는 백혈병 표적항암제를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요.

의정부을지대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의 조언

만성 골수성백혈병(CML)은 최초의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이 등장하면서 괄목할 만한 의학적 발전을 이뤘습니다. 현재는 암 유전자를 없애는 약인 표적항암제만 잘 먹으면 문제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CML은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병든 백혈구를 만드는 혈액암입니다. 9번/22번 염색체 이상으로 암세포가 증식합니다. 만약 제때 치료하지 않고 CML을 방치하면 가속기를 거쳐 급성 백혈병으로 진행합니다. 이렇게 만성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악화하면 1년 이내 대부분 사망합니다. 표적항암제는 암 유전자를 없애 만성기 또는 정상 상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현재 전 세계 백혈병 전문가 그룹인 유럽 백혈병네트워크에서 동등하게 1차적으로 권하는 표적항암제는 글리벡·타시그나·스프라이셀·슈펙트·보슬립 등 5개입니다. 이중 국내 처방 가능한 표적항암제는 글리벡·타시그나·스프라이셀·슈펙트 등 4종류입니다. 보슬립은 아직 국내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하신 분도 언급하신 것처럼 의료진도 이 환자에게 어떤 표적항암제가 가장 좋을지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특히 CML치료는 장기간 표적항암제 투약이 필요한만큼 개개인에게 맞는 최고의 효능과 안전성을 가진 약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보고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처음 선택한 표적항암제를 10년 후에도 계속 사용하면서 우수한 효과를 유지하는 환자는 60% 내외입니다. 나머지 20%는 내성·부작용 등으로 다른 표적항암제로 바꿔 치료 중이고, 20%는 이런저런 치료에도 반응이 없어 사망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다른 표적항암제로 바꾼 환자는 치료 실패율이 높습니다.

처음부터 나에게 맞는 표적항암제를 잘 선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일부 표적항암제는 약을 끊고도 암세포가 관해 상태를 유지하는 기능적 완치가 유지됩니다. 이를 확인한 연구도 있습니다. 글리벡의 경우에는 투약 중단 연구(STIM1)에서 40%가 기능적 완치에 도달했고, 타시그나 역시 48.7%가 가능적 완치를 유지했습니다. 이 외에도 스프라이셀·슈펙트 역시 투약 중단을 통한 기능적 완치가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환자의 전신 건강 상태, 가족력, 나이, 유전자 변이, 라이프스타일, 병용 투여 약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대규모 임상 연구에서 각 표적항암제마다 오래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이상 반응은 조금씩 다릅니다. 예컨대 글리벡은 심장·콩팥 기능이 약하다면 피해야 합니다. 타시그나·슈펙트는 혈당·콜레스테롤을 높이는 부작용이 좀 더 많은 편입니다. CML 진단 때 고혈압·고지혈증 가족력이 있거나 고령으로 동맥혈관이 좁아져 있다면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뇌혈관 질환이 생길 수 있어 배재합니다. 스프라이셀은 폐에 물이 차는 흉막삼출이나 폐동맥고혈압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호흡기가 약하다면 이 약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펴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는 늘 존재합니다. 따라서 표적항암제 치료를 시작한 다음 초기 1~2년은 약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정확하게 평가하면서 표적항암제 치료를 조절합니다. 귀찮더라도 치료 초기에는 자주 병원을 찾아 담당 의료진과 자신이 느끼는 이상 반응을 정확하게 공유하고 상의해야 합니다. 또 1~3개월마다 받는 염색체/유전자 검사 결과를 면밀하게 해석·평가해 최선의 치료 효과와 안전성이 유지되고 있는지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의정부을지대병원처럼 CML환자 규모가 많은 병원은 약 처방 경험이 많아 세심한 약 선택·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간혹 표적항암제에 내성이 생겼다고 좌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2차례 이상 표적항암제 치료에 실패했어도 투약 가능한 신약(셈블릭스)이 나왔습니다. 이 약은 미리스토일 포켓이라는 부위에 특이적으로 결합해 만성골수성백혈병 암 유전자(BRC-ABL1)의 활성을 저해합니다. 내성 등으로 기존 표적항암제에 치료 효과가 없던 만성 골수성백혈병 환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셈블릭스는 이전에 두 가지 이상 표적항암제 치료를 받은 만성 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치료에 허가를 받은 최초이자 유일한 STAMP계열 치료제입니다.

이제 막 CML치료를 시작하는 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있습니다. 바로 철저한 약 복용입니다. 암 유전자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적정 용량의 표적항암제를 매일 복용해야 없앨 수 있습니다. 별 것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치료 성패가 달라집니다. 약 복용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약 부작용 등을 이유로 의료진과 상의 없이 약 복용량을 줄이는거나 중단하는 식입니다. 유럽 CML환자 단체에서 약 복용 순응도를 조사했더니 최근 3일간 약을 처방한대로 먹었냐는 질문에 70%만 ‘그렇다’고 응답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복약 순응도는 생각보다 매우 중요합니다. 약 복용에 소홀하면 표적항암제에 내성을 가진 암 세포가 더 쉽게 만들어져 약효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CML치료에서 정확한 약 복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매년 9월 22일을 CML의 날로 정해 알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진료받을 때 묻지 못했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kwon.sunmi@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닥터스 픽'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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