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이라고 생각해 임의로 철분제 먹으면 안 되는 이유

[이민영 기자] 입력 2022.09.08 09.01

빈혈에 대한 오해와 진실

빈혈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질환이지만 진단과 치료가 쉽지는 않다. 빈혈을 의심해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많은 사람이 한 번쯤 자기 스스로 빈혈이라고 진단하여 약국에서 빈혈의 주된 치료제 중 하나인 철분제를 구입해서 한두 달 복용하다가 증상이 개선되어 중단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 학교 또는 직장 신체검사에서 빈혈을 진단받은 적은 있지만 바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병원을 방문하거나 약을 먹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전선병원 혈액종양내과 정윤화 전문의의 도움말로 빈혈에 대해 알아본다. 
 

1. 어지럽다고 무조건 빈혈 아냐  

어지러운 증상은 무조건 빈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혈액내과에 내원해 혈액검사를 해보면 막상 정상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반면에 숨이 차거나 손, 발이 저린 증상, 손톱 모양의 변형, 맛을 잘 못 느끼거나 혀의 통증을 느끼는 증상, 비누나 종이 같은 음식이 아닌 물건 또는 얼음을 자꾸 먹게 되는 이미증(pica), 고령에서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경우, 잠들기 전에 다리에 불편한 감각 증상 때문에 다리를 움직이면서 잠을 설치게 되는 ‘하지불안증후군’ 같은 증상들이 빈혈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정작 잘 알지 못한다.
 

2. 철분 빠져나가는 근본 원인 찾아야

빈혈의 원인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이 단순히 ‘잘 못 먹어서’라고 단정 지어버리지만 요즘처럼 생활환경이 나아져 풍족해진 시대에는 섭취 부족으로 인한 영양 결핍보다는 철분이 몸 안에서 빠져나가 (출혈을 통해서) 철분이 부족해져 빈혈이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따라서 철분이 빠져나가는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위궤양, 치질, 염증성장질환(크론, 궤양성대장염) 같은 출혈성 위장관 질환이 원인으로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처음에는 빈혈로 내원했지만 검사하는 과정에서 위암, 대장암이 발견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여성의 경우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증 같은 부인과 질환이 동반되어 과다한 생리가 빈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3. 위 흡수 능력 떨어져 발생하기도 

흡수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과거 위암으로 위절제 수술을 받았거나 다른 질환들로 소장절제술을 받은 경우, 자가 항체로 인해 위점막이 위축되거나 만성적으로 제산제를 복용하여 위 흡수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 철결핍성 빈혈 외에도 비타민 B12라는 영양소가 부족해져 생기는 거대적아구성 빈혈이 발생할 수 있다.
 

4. 염증 일으키는 만성질환이 빈혈 유발

혈액을 만드는 재료인 철분과 비타민이 부족한 것이 아닌 당뇨, 만성신질환, 암 같은 만성 질환 때문에 우리 몸이 만성 염증 상태로 변하여 적혈구를 만드는 과정이 방해를 받아 발생하는 ‘만성질환에 의한 빈혈’도 오랜 기간 철분제를 복용해도 좋아지지 않아 혈액내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간혹 빈혈뿐만 아니라 백혈구나 혈소판 감소가 동반되는 경우에는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에 이상이 생겨 재료가 충분해도 적혈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없어져 빈혈이 발생하는 재생불량성 빈혈이나 골수이형성증후군 등을 의심해야 하며 반드시 혈액내과의사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다.
 

5. 혈액내과나 혈액종양내과 찾아 정확한 원인 진단 

빈혈은 단순히 철분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철결핍성 빈혈 외에도 많은 다양한 원인을 갖는 질환이며 원인에 따른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철이 부족해서가 아닌 다른 이유에서 발생하는 빈혈의 경우 정확한 진단 없이 철분제를 복용하면 효과가 없을뿐더러 장기간 복용 시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혈액종양내과 또는 혈액내과’에서는 환자의 나이, 기저질환, 증상, 기본적인 혈액검사의 양상 (MCV: 평균적혈구용적, MCH: 평균적혈구헤모글로빈) 등으로 어느 정도 빈혈의 가능한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 검사 수도 줄일 수 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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