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스트레스 풀린다? 팩트체크

[이민영 기자] 입력 2022.07.29 09.32

알코올이 신경전달물질 자극해 감정 왜곡, 불안·우울 악순환 위험

평생 자살 사고, 자살 계획, 자살 시도를 한 사람 중 대다수는 알코올 사용 장애나 의존 증상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표한 ‘2015~2021 심리 부검 면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자살 사망자 801명 중 32%가 사망 당시 음주 상태였다. 19.9%는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음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평생 자살 사고를 시도한 사람의 25%, 자살 계획은 32.4%, 자살 시도자의 28.3%가 알코올 사용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술은 우울과 불안 증세를 악화시킬 뿐 치료제나 피난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기분장애를 겪고 있을수록 음주 습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코올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우보라 원장은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들의 대다수가 알코올 사용 장애와 같은 ‘물질 사용 장애’와 우울, 불안, 강박 장애 등의 ‘정신 건강 문제’를 동시에 가진 ‘이중 진단’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기분장애를 겪는 환자들은 힘들고 버거운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대신 다른 물질이나 관계, 특히 알코올 뒤로 숨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알코올이 자극하는 신경전달물질들이 감정을 왜곡하면서 스트레스를 완화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게 우 원장의 설명이다.

기분장애와 알코올 사용 장애의 상관관계는 오래 전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로 여겨졌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경제적 문제에 직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서 기분장애와 알코올 문제를 동시에 겪거나 급격하게 악화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의 자살 사고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 부검에서도 사망자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사업난 심화, 부채 규모 증가로 인해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오래전부터 도박, 알코올로 인한 빚 문제로 가족 갈등을 겪던 중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로 다시 도박·음주 사용이 증가하면서 가족관계가 악화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 원장은 “일시적으로는 술이 불안·외로움 같은 증상을 완화해주고 자신감을 주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 극대화하거나 술로 인해 겪게 되는 갈등과 경제적인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혈액 내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의 농도가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 원장은 "우울증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이미 세로토닌 농도가 낮아진 상태라면 알코올 섭취로 인한 세로토닌 기능 저하는 우울감을 키울 뿐이다. 술로 도망치며 상황을 회피하기보다 술로 인해 망가진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는 것에 집중하고 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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