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췌장암 알아챌 수 있는 신호

[이민영 기자] 입력 2022.06.14 08.45

복통·소화 불량·체중 감소, CT·MRI로만 진단 가능

췌장암은 사망률이 높다는 인식 때문에 진단 후 깊은 절망에 빠지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새로운 항암제와 표적치료제가 개발되며 췌장암의 치료성적은 향상되고 있다.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이태윤 교수는 "의학의 발달에 따라 췌장암은 일단 걸리면 몇 달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다”며 “췌장암에 걸렸다고 무조건 절망하기보다는 우선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치료를 잘 받아 보길 권유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췌장담도질환 권위자다. 최근 급성 췌장염 환자의 중증도 조기 예측에 일반 혈액검사로 가능한 호중구-림프구비율이 도움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관련 논문 두 편이 SCIE급 국제 학술지에 1월과 2월 연이어 출판됐다. 이태윤 교수의 도움말로 췌장암에 대해 알아본다.  
  

1. 전조 증상 없어 조기 발견 어려워

치료가 어렵기로 유명한 췌장암 또한 조기에 발견만 한다면 완치율과 생존율이 높아진다. 그런데 암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암이 잘 생기는 위험군을 정확하게 정의해야 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진단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췌장암은 암 발생 위험군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암 조기진단을 위한 스크리닝 검사가 없다. 실제 임상에서 병으로 일어난 육체적 또는 생리적인 변화를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2. 상복부 통증과 체중 감소, 췌장염일 때 의심

췌장암은 초기에 증상이 없고 종괴가 어느 정도 커져야 비로소 복통, 황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게다가 발병 빈도가 드물기 때문에 실제 의사들도 배가 아프면 위염이나 위궤양 혹은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먼저 생각하고, 그렇게 진단이 지연되면 치료 시기 또한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췌장암의 조기 발견율은 10% 이하로 매우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췌장암을 의심할 만한 전조증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복부에 통증이 있거나 소화불량과 현저한 체중 감소가 눈에 띄는 경우, 60대 이후에 당뇨병을 진단받거나 음주를 하지 않고 담석이 없는데도 췌장염이 생겼다면 췌장암을 의심해 볼 만하다.
 

3. 동네 의원에선 진단 어려워, CT·MRI로 가능

췌장암은 종합병원 이상급에 있는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통해서만 췌장암의 진단이 가능하다는 점이 조기진단의 걸림돌이다. 동네 의원에 널리 보급된 내시경과 초음파로는 췌장암을 진단하기 어렵다. 췌장이 자리한 위치 때문이다. 췌장은 위(胃)와 간(肝)의 뒤쪽에 숨겨져 있다. 몸속 가장 깊은 곳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어 복부초음파를 할 때도 췌장 꼬리부분이 장관 내 가스에 가려 진단 정확도가 낮은 편이다. 1cm 이상의 췌장암은 보통 복부 CT, MRI로 진단 가능하며 진단이 애매한 경우에는 내시경 초음파를 시행한다. 내시경 초음파는 췌장 종괴에 대한 조직검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4. 전이 췌장암이어도 항암 치료 등 도움 될 수 있어

췌장암은 크게 수술이 가능한 단계와 그렇지 않은 단계로 나뉜다. 복부 CT나 MRI에서 췌장 종괴가 췌장 주변의 동맥을 180도 이하로 침범하면 경계성 절제가 가능하고, 췌장 종괴가 동맥을 180도 이상으로 둘러싸면 국소진행 췌장암으로 분류한다. 췌장 종괴가 동맥이나 정맥을 침범하지 않으면 절제가 가능한 췌장암이다. 전이 췌장암은 CT, MRI,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에서 간, 폐, 복막, 림프샘 전이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전이 췌장암은 수술이 어렵지만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항암 치료를 진행한 뒤 수술이 가능해지는 환자도 있고, 항암 치료 자체로 생존 연장에 도움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술이 어려운 췌장암이라면, 무리하게 수술을 진행하기보다 항암 치료를 먼저 하는 것이 환자의 생존 연장에 더 좋은 방법이라는 최근의 연구 결과가 많다.
 

5. 가족력 있으면 고위험군

췌장암의 조기진단을 위해서는 고위험군과 비위험군을 구분해서 그에 따른 검사방법을 따르는 것이 도움된다. 췌장암을 유발하는 위험요인 중 하나는 가족력이다. 서양에서는 ‘1차 친족’ 중 췌장암 환자 수에 따라 췌장암에 걸릴 확률을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1차 친족이란 부모와 형제·자매·자녀가 해당하는데, 우리로 따지면 1촌(부모, 자녀)과 2촌(형제·자매)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 범위에 해당하는 사람 가운데 췌장암 환자가 1명이 있으면 향후 ‘내’가 걸릴 확률은 4배 높아지고, 2명이면 6배, 3명이면 32배나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췌장암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를 지목할 수는 없지만, 췌장암 환자 가족 수에 비례해 본인의 발병 위험성이 증가한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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