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정신건강의료비 지원해 치료 연속성 확보해야”

[권선미 기자] 입력 2022.04.27 16.28

1인 가구 증가로 정신 응급상황 대처 열악해져

“사회적 편견이 큰 정신 질환의 치료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정신건강의료비의 90%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초발 정신 질환의 집중·지속 치료를 통해 증상 재발을 억제하고 중증 정신질환으로 이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 이동우 소장은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정신건강 정책제안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동우 소장은 ‘정신건강 국가 책임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소장은 “정신 질환에 대한 병실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각·망상·자해 등 증상이 처음 발생했을 때 치료가 늦어지면 중증 정신 질환으로 악화하는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정신 건강이 위기인 상황에서 치료 연속성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정신건강 국가 책임제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는 응급 이송체계 및 정신 응급센터를 설립해 치료 연속성 확보를 강조했다. 또 급성기 병상 확보하는 등 치료 환경을 개선해 중증 정신질환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립감이 커지면서 외로움을 느끼고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우울·무력감을 호소한다. 코로나19는 끝나겠지만 이때의 경험은 정신적 충격(트라우마)로 남는다. 이 소장은 “국가트라우마센터를 강화해 감염병 펜데믹 등 각종 재난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 응급상황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종우(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대한정신건강의학회 법제사별특별위원장은 ‘정신응급에서 급성기, 지속치료까지 인프라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신 응급상황 인프라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백종우 법제사회특별위원장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 119가 출동하고 응급실로 이송돼 집중 치료를 받지만 정신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정신 응급상황에서 사회적 지지망이 약하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증가하는 독신 가구다.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32%다. 일반적으로 갑자기 정신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가족 등이 개입해 병원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늘면서 긴급 상황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 최근 몇년간 발생한 정신 응급상황 사고는 30~50대 독신가구거나 고령의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민원 등을 우려해 이송 조차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반면 미국·영국 등은 경찰이 출동해 정신건강진단평가를 시행하고 지속 치료를 위한 이송을 책임진다.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조현병 같은 정신병적 질환은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다. 우울증 같은 기분 장애는 우울증이 아니라는 부정적 사고로 스스로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 국민건강검진에 마음건강검진이 포함돼 있지만 사후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인지도도 낮다.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으로 치료를 꺼리도 한다. 백 위원장은 “의료체계 내에서도 정신 건강에 대한 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진료비 장벽도 높은 편이다. 2019년도를 기준으로 정신과 내원 1일당 평균 진료비가 5만7600원이다. 저수가 상황에서 급성기 중증 치료와 지역 사회 정신사회재활서비스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백 위원장은 “전 국민이 신체 건강치료와 동일한 수준으로 정신건강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정신 질환의 치료 연속성을 확보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병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보험이사는 “국내 정신 질환의 수가 체계에서는 폭력적인 환자든 치료에 적극적인 환자든 동일한 수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치료가 시급한 정신 질환 환자를 외면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조현병으로 30년째 투병하는 남성은 문제적 행동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도 방문을 꺼려한다. 약만 간신히 처방받는 실정이다. 고혈압·당뇨병 등을 앓고 있지만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이 보험이사는 “응급·급성기 등 환자의 중증도 수준에 맞는 자원 배분으로 인권·안전이 보장되는 치료 환경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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