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효과적인 약물치료 위한 사회적 포용 필요할 때

[이경수 진료부장] 입력 2021.11.16 10.33

이경수 아산(정신)병원 진료부장

이경수 아산(정신)병원 진료부장.

"엄마가 가장 무서운 건 사람들이 너를 무서워하는 거야."


얼마 전 방영이 보류된 조현병 관련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사다. 각종 홍보물에서는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웃들로부터 아들의 병을 숨기고 싶은 엄마의 '처절한 대사'로 소개되고 있다.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노골적인 대사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막연한 편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싶었다는 것이 제작진 측의 설명이다.

해당 드라마는 조현병 환자와 가족들을 향한 혐오를 오히려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 정신장애 관련 단체들이 상영 중단을 촉구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담아내려는 의도였다지만, 환자의 보호자는 편집적인 인물로, 이웃들은 혐오를 일삼는 인물들로 그려낸 것은 잘못된 접근이었다고 지적하고 싶다. 창작물을 통한 문제 제기가 현실의 누군가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피해 상황이자 2차 가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조현병을 활용해 너무 많은 '자극'을 생산하고 있다. 당장 조현병을 검색해보면 관련 사건·사고 기사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조현병 환자가 어쩌다 범죄와 연관됐는지 경위를 다루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조현병 환자 혹은 환자의 보호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결과만 반복적으로 생산한다.

과거에는 조현병 증상이 범죄와 직접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조현병과 범죄 양상 간 관련이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실제로 대다수 조현병 환자들은 공격성을 관찰하기 어렵다. 하지만 환자가 관리를 잘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거나 진행하던 약물치료를 임의로 중단하면 망상이나 환청 등의 증상이 악화할 확률이 증가한다. 즉, 조현병 환자의 폭력적 행동은 심한 망상과 환각 등이 있을 때만 극히 제한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현병의 약물치료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있어 어두운 길을 비추는 등불이나 다름없다. 발병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증상이 더 잘 관리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초기 치료 시기를 놓쳐 증상이 심각해진 환자여도 꾸준히 치료하고 사회 복귀 훈련을 받으면 큰 문제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다양하고 좋은 치료 옵션이 개발된 덕분에 학계에서는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도 다른 병처럼 충분히 치료·관리될 수 있는 질환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국내·외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우선적으로 권장되는 장기지속형 주사제라는 치료법은 환자의 사회 복귀를 위해 꼭 필요한 치료 옵션으로 언급된다. 조현병 환자는 스스로 질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아 임의로 약물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한 번의 주사 투여를 통해 한 달 또는 석 달 동안 꾸준히 체내 약물 농도를 유지할 수 있어 조현병 치료에 있어 효과적인 치료 옵션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돼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음에도 세상의 눈초리가 무서워 나가고 싶지 않다고 토로하는 환자도 있다. 환자를 망상과 환청이라는 고통스러운 감옥 속에 가두는 것은 질환 자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일 수 있다.

조현병은 위험한 질병이 아니다. 적절한 약물치료와 사회적 재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만 조성되면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한 병이다. 우리 중 누구라도 정신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며, 정신질환자를 나와 다른 영역의 사람으로 분류해버리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정신질환자의 폭력이나 범죄 사실 대신 그들의 이야기와 삶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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