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난청은 뇌까지 변화시켜 … 보청기·인공와우 주저 말아야”

[박정렬 기자] 입력 2021.10.22 09.13

분당서울대병원 송재진 교수가 말하는 난청 A to Z

지난해 세계적인 권위의 란셋 위원회는 치매를 예방하거나 지연할 수 있는 12가지 요인에 대해 발표했다. 치매 유병률을 100%로 놓고 각각의 요인을 관리할 경우 치매 유병률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 분석했다. 흔히 치매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진 고혈압·비만·흡연·과음 등을 제치고 예방률 1위를 기록한 것은 난청 치료였다. 중년기에 난청을 관리하면 치매 유병률을 8.2%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고혈압(1.9%), 우울증(3.9%), 신체활동 부족(1.6%) 등 다른 요인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강력한 '치매 예방 수단'이 된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들리지 않는 고통'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됐다. 나이 들면 누구나 난청을 경험하지만 보청기나 인공와우 수술이라면 손사래 치는 환자가 적지 않았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 아닌 데다, 환자 본인이 느끼는 불편함도 다른 질환보다 적어 '굳이 치료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하지만, 난청만큼 치료 시 신체·정신 건강이 크게 개선되는 질환도 드물다. 특히 최근의 연구에서 청력이 뇌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면서 적극적인 난청 치료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커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난청 치료를 주도하는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송재진 교수에게 난청의 원인과 치료법, 효과를 들었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송재진 교수가 난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난청 환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귓바퀴부터 시작해 귓구멍, 고막까지를 외이라고 하고 고막부터 달팽이관 사이의 공간을 중이, 달팽이관부터를 내이라고 한다. 외이나 중이에 문제가 생겨서 잘 듣지 못하게 되면 ‘전음성 난청’이고 달팽이관 속 세포, 혹은 청각 신경 등이 손상돼 발생하는 난청은 ‘감각신경성 난청’이다. 최근 난청 증가를 견인하는 것은 감각신경성 난청이다. 전음성 난청은 삼출성·만성 중이염이 주요 원인으로 위생 상태가 개선되고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현재는 만성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반면, 유전적 요인과 소음 등 환경, 노화로 인한 감각신경성 난청은 고령화와 이어폰 사용 등으로 인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감각신경성 난청은 자연적으로 회복하기 어렵다던데. 
“달팽이관은 청력의 핵심 기관이다. 고막을 거쳐 이소골이라는 3개의 작은 뼈를 거쳐 들어온 물리적인 소리, 즉 진동을 전기적인 신호로 바꾸어 대뇌로 전달한다. 이를 책임지는 세포가 달팽이관의 유모세포인데, 유모세포는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잘 안 되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100개의 유모세포가 있다가 노화나 소음으로 인해 30개가 소실되면 나머지 70개로만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로 인해 작은 소리가 들리지 않고 어음 변별력이 떨어지는 데 이것이 감각신경성 난청의 발병 기전이다. 유모세포가 아닌 청각신경이나 뇌 문제로 소리가 들리지 않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유모세포를 되살릴 수 없는데 어떻게 난청을 치료하는 건가.
“보청기나 중이 임플란트, 골전도 보청기 등의 수술로 남은 청력(잔청)을 최대한 끌어올리거나 잔청이 부족한 경우라면 인공와우 수술로 청각 신경에 소리를 직접 전달한다. 난청의 종류와 정도, 보청기 사용 시 불편함과 알레르기 유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치료법을 선택한다. 구체적으로 중이 임플란트와 골전도 보청기는 전음성 난청이면서 일반적인 중이염 수술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청에 효과적이다. 선천적으로 귀가 완전하게 만들어지지 않는 소이증과 외이도 폐쇄증에도 골전도 보청기가 효과적이라는 보고가 많이 나오고 있다. 중이 임플란트는 과거 중이염 수술을 했거나 감각신경성 난청으로 잔청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데 알레르기 등으로 보청기를 쓰지 못하는 경우 고려할 수 있다.”
 

난청 자가진단법

-인공와우 수술은 어떤 환자에게 적용하나.
“고도 난청(70데시벨 이상), 심도 난청(90데시벨 이상)은 잔청이 너무 부족해 보청기나 중이 임플란트, 골전도 보청기 등으로 단순히 소리만 증폭해서는 제대로 듣지 못한다. 마치 눈을 감고 안경을 끼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는 달팽이관에 전극을 심어 소리를 일종의 전기 신호로 바꾸고, 청각 신경과 뇌에 직접 전달하는 수술이 필요한데 이것이 인공와우 수술이다. 인공와우는 크게 외부 어음 처리기와 내부 임플란트로 구성된다. 외부 어음 처리기에서 소리를 받아서 내부 임플란트에 전달해주면, 내부 임플란트는 소리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서 청각 신경에 전달한다.”
 
-위험하지는 않나.
“인공와우 수술은 귀 뒤쪽을 절개해 측두골이라는 뼈를 일부 제거한 뒤 달팽이관을 노출한 다음, 달팽이관으로 들어가는 정원창이라고 하는 막을 열어서 여기에 전극을 심어주는 수술이다. 성인은 1시간~1시간 30분, 소아는 이보다 더 짧은 시간에 이식이 가능하다. 수술 합병증은 수술 부위 감염, 통증 등으로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별문제 없이 해결된다.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다.”
 
-소아와 성인 모두에게 효과적인가.
“인공와우 수술은 선천적, 후천적 난청 모두에서 고도 이상의 난청이 있는 경우 가장 표준적인 치료로 꼽힌다. 다만 소아와 성인은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기대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말을 배우기 전의 소아는 인공와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수화(手話)로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 지능 발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가급적 빨리 수술을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성인은 언어 습득 후 노화, 소음 등으로 인해 발생한 후천적 난청으로 사회 복귀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인공와우 수술을 하면 소리가 다르게 들리는데, 이를 본인의 언어 기억과 비교할 수 있어 소아보다 훨씬 이른 시일 내 적응할 수 있다. 단, 성인은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고도 난청 이상인 경우 뇌 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인공와우 수술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란셋 위원회가 발표한 12가지 치매 예방 방법. 아동·청년기(녹색)는 낮은 교육수준(7.1%) / 중년기(파란색)는 난청 (8.2%), 외상으로 인한 뇌 손상 (3.4%), 고혈압 (1.9%), 과도한 알코올 섭취 (0.8%), 비만 (0.7%) / 노년기(보라색)은 흡연 (5.2%), 우울증 (3.9%), 사회적 고립 (3.5%), 신체활동 부족(1.6%), 공기오염 (2.3%), 당뇨병 (1.1%) 등으로 이를 모두 관리하면 최대 40%까지 치매 예방을 하거나 치매 발생을 지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The Lancet Commissions


-난청은 뇌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다. 사용하지 않는 부위를 가만히 두지 않고 다른 기능으로 대체해버리려는 성질을 말한다. 뇌는 부위별로 담당하는 역할이 다른데, 양옆의 측두엽이라는 부위가 청각을 담당하고 뒤쪽의 후두엽이라는 부위는 시각을 담당한다. 앞선 연구에 따르면, 청력을 잃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청각을 담당하던 부위가 시각에 같이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청각에 사용되는 대뇌 영역이 시각으로 대체돼 버리는 것이다. 이때는 설령 인공와우 수술로 청각 신호를 뇌로 전달해도 뇌에서 청각을 담당하는 부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제대로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된다. 성인은 언어 재활이 잘 안 되고, 소아는 구어 발달 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지기능 저하도 유발한다던데.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12년 가까이 난청 환자들을 추적관찰 한 결과 고도 난청이 있는 환자에서 정상 청력보다 알츠하이머병, 즉 치매가 발생하는 확률이 5배나 높았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이 생길 확률도 높아진다. 이렇게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우울감이 심해지면 인공와우 수술로 청력을 회복해도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난청 치료를 주저하는 환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공와우 수술 후에 들리는 소리는 우리가 자연적으로 듣는 소리와는 차이가 있다. 라디오 주파수가 잘 안 맞을 때 혹은 영화에서 로봇이 말하는 음성과 유사한 소리다. 달라진 소리에 적응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 치료와 청각 재활을 꾸준히 실천하며 가족과 대화하거나 혼자서 TV나 라디오를 듣는 등의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인공와우를 통해 들리는 소리에 익숙해지고 큰 어려움 없이 전화 통화까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음질의 차이는 있지만 음악도 기대했던 것보다 잘 들린다고 한다. 현재 뇌파와 같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인공와우 수술 후 뇌 기능의 변화나 치료 효과를 예측,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인공와우 수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의료진의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처지지 않는다. 치료를 통해 얻는 이익이 큰 만큼 난청을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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