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질환과 유사한 뇌 기능 변화 초래하는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

[이정한 임상조교수] 입력 2021.09.30 08.45

‘슬기로운 온택트 생활’ 릴레이 기고⑥ 이정한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임상조교수

이정한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임상조교수.

‘갑자기 스마트폰이 사라진다면?’ 당장 회사 업무는 물론이고 오늘 만날 친구와 연락할 수도 없다. 은행 업무부터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번거롭다. 일상의 매우 개인적인 영역에서부터 공적인 업무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 삶 속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다.


디지털 미디어 사용의 일상화는 생활의 편의성 증대를 가져온 한편 과사용, 중독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으며 이에 관한 전문가들의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에 관한 뇌 영상 연구는 초기 인터넷 중독(Internet addiction)을 시작으로 인터넷 게임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로 확장돼 최근 20년간 활발하게 진행됐다. 인터넷 게임장애의 경우 2013년 개정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에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진단적 상태로 언급됐으며, 2018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들어 디지털 미디어 디바이스와 콘텐트가 다양해지면서 뇌 영상 연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스마트폰 사용 등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이와 함께 디지털 미디어 사용장애도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디지털 미디어 사용 관련 장애는 디지털 미디어 사용으로 인해 일상생활, 업무, 대인관계 등에 명백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경우 진단한다.

인터넷 중독 및 인터넷 게임장애의 신경생물학적 특성을 밝히기 위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기존 약물, 도박 등의 ‘중독 질환’에 관한 연구 결과와 매우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진 않았지만, 스마트폰 과사용에 대한 뇌 영상 연구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충동적이고 강박적인 경향 나타나

먼저 뇌의 보상 시스템과 관련된 변화가 나타난다. 특정 물질이나 행위에 만성적으로 반복 노출되면 그와 관련된 자극에 굉장히 민감해지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또한 중독으로 인한 보상 시스템의 변화는 물질 혹은 행위의 반복이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충동적이고 강박적인 경향을 보이도록 변화시킨다.

충동을 조절하고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에 중요한 인지 조절 기능도 기존 중독 질환의 뇌 영상 연구에서 관찰되는 특징이다. 우리 뇌의 인지 조절 기능은 주로 전전두엽과 전측대상피질에서 담당하는데, 특히 의사 결정 시 정서적인 측면이 영향을 미칠 때는 전전두엽의 한 부분인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한다. 비정상적인 활성이 관찰된다. 이러한 뇌 영역들에서의 비정상적인 뇌 활성은 인터넷 중독, 인터넷 게임장애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뇌섬엽의 비정상적인 기능도 중독 질환과 인터넷 중독, 인터넷 게임장애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뇌섬엽은 주로 외부 자극에 대한 충동과 조절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 미디어 사용과 관련된 뇌 영상 연구는 과사용에 따른 뇌 기능의 변화를 밝히는 한편 반대로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개인의 취약성에 관해 설명하기도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게임장애 연구 중 대다수는 인지 조절 문제가 뇌 기능 저하와 관련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전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인지 조절 기능(충동 조절, 억제 능력, 합리적 의사 결정, 계획 세우기 등)이 미숙한 청소년들이 게임장애를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지 조절 기능 미숙한 청소년이 더 취약 

또한, 인지 조절 기능과 관련 있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우울장애와 같은 공존 질환이 인터넷 중독 및 게임장애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에 노출되기 이전의 인지 조절 문제가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을 일으키는 위험 요소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뇌 영상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했을 때 디지털 미디어 사용은 개인의 취약성 등에 영향을 받으며 디지털 디바이스의 종류, SNS나 게임 등 콘텐트와 관계없이 중독 질환과 유사한 뇌 기능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뇌 기능의 변화는 반복적이고 충동적인 미디어 사용의 문제뿐 아니라 이를 조절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 문제 예방을 위해서는 분명한 목적에 따라 사용하고 사용 시간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 또는 뇌의 조절 능력에 문제를 보이는 공존 질환이 있는 경우라면 사용 ‘절제’와 ‘조절’을 위해 부모 또는 전문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건강한 가족’은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중독특별위원회,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교보생명과 함께 디지털 과사용으로 인한 유아동·청소년 건강 관련 전문의 기고를 온·오프라인 릴레이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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