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한 임상조교수] 입력 2021.09.30 08.45
‘슬기로운 온택트 생활’ 릴레이 기고⑥ 이정한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임상조교수
‘갑자기 스마트폰이 사라진다면?’ 당장 회사 업무는 물론이고 오늘 만날 친구와 연락할 수도 없다. 은행 업무부터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번거롭다. 일상의 매우 개인적인 영역에서부터 공적인 업무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 삶 속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다.
먼저 뇌의 보상 시스템과 관련된 변화가 나타난다. 특정 물질이나 행위에 만성적으로 반복 노출되면 그와 관련된 자극에 굉장히 민감해지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또한 중독으로 인한 보상 시스템의 변화는 물질 혹은 행위의 반복이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충동적이고 강박적인 경향을 보이도록 변화시킨다.
충동을 조절하고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에 중요한 인지 조절 기능도 기존 중독 질환의 뇌 영상 연구에서 관찰되는 특징이다. 우리 뇌의 인지 조절 기능은 주로 전전두엽과 전측대상피질에서 담당하는데, 특히 의사 결정 시 정서적인 측면이 영향을 미칠 때는 전전두엽의 한 부분인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한다. 비정상적인 활성이 관찰된다. 이러한 뇌 영역들에서의 비정상적인 뇌 활성은 인터넷 중독, 인터넷 게임장애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뇌섬엽의 비정상적인 기능도 중독 질환과 인터넷 중독, 인터넷 게임장애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뇌섬엽은 주로 외부 자극에 대한 충동과 조절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 미디어 사용과 관련된 뇌 영상 연구는 과사용에 따른 뇌 기능의 변화를 밝히는 한편 반대로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개인의 취약성에 관해 설명하기도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게임장애 연구 중 대다수는 인지 조절 문제가 뇌 기능 저하와 관련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전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인지 조절 기능(충동 조절, 억제 능력, 합리적 의사 결정, 계획 세우기 등)이 미숙한 청소년들이 게임장애를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인지 조절 기능과 관련 있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우울장애와 같은 공존 질환이 인터넷 중독 및 게임장애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에 노출되기 이전의 인지 조절 문제가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을 일으키는 위험 요소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뇌 영상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했을 때 디지털 미디어 사용은 개인의 취약성 등에 영향을 받으며 디지털 디바이스의 종류, SNS나 게임 등 콘텐트와 관계없이 중독 질환과 유사한 뇌 기능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뇌 기능의 변화는 반복적이고 충동적인 미디어 사용의 문제뿐 아니라 이를 조절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미디어 과사용 문제 예방을 위해서는 분명한 목적에 따라 사용하고 사용 시간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 또는 뇌의 조절 능력에 문제를 보이는 공존 질환이 있는 경우라면 사용 ‘절제’와 ‘조절’을 위해 부모 또는 전문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건강한 가족’은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중독특별위원회,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교보생명과 함께 디지털 과사용으로 인한 유아동·청소년 건강 관련 전문의 기고를 온·오프라인 릴레이로 진행한다.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