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여건의 치료 경험, 최상의 심방세동 진료 시스템으로 결실 맺었죠"

[박정렬 기자] 입력 2021.07.16 09.50

[인터뷰]고려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최종일 교수

규칙적이고 리드미컬한 맥박은 삶을 지탱하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튼튼한 심장 근육은 정교한 전기 신호에 맞춰 신체 곳곳에 '생명수(혈액)'를 내보내고, 받아들인다. 문제는 이런 전기 신호가 뜻하지 않게 엉킨 경우다. 제때 바로 잡지 않으면 심장에 혈액이 고이거나 혈압이 떨어져 실신·급사·뇌졸중 위험이 급증한다. 생명의 선율이 죽음의 협주곡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지 않는 병, 부정맥 이야기다.
 
부정맥 가운데 특히 심장이 빠르게 뛰는 심방세동은 환자가 가장 많고,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한국인 100명 중 1명에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며 65세는 5%, 80세 이상은 10%가량에서 심방세동이 발병한다. 흡연, 음주, 만성질환을 비롯해 노화와도 밀접해 고령사회에 들어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심장 문제로 꼽힌다.
 
전기 신호는 MRI나 CT, 심지어 심장을 눈으로 직접 봐도 보이지 않는다. 전기적인 파형을 분석하고, 원인이 되는 부위만을 집중 치료해야 환자의 생명과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 특히, 심방세동은 전기 신호가 엉키는 원인이 다양해 과거에는 치료 자체를 포기하던 병이었다. 한순간도 멈춰서는 안 되는 심장을,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 신호를 바로잡아 되살리는 일은 의료진에게도 엄청난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최종일 고려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가 심방세동 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근(2021년 6월 24일) 고려대안암병원의 심방세동 전극도자절제술 5000례 달성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김영훈(현 고려대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 순환기내과 교수가 1998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극도자절제술을 시행한 이래 매년 심방세동 치료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성과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도입 초기부터 심방세동 시술에 참여해 온 최종일(47) 순환기내과 교수는 "5000번이 넘는 경험을 통해 진단, 치료, 관리를 아우르는 최상의 심방세동 진료 시스템을 갖춘 것이 가장 값진 성과"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심방세동이 위험한 이유는.
"심장은 위에 두 개의 심방, 아래 두 개의 심실이 각각 좌우로 나뉘어 좌심방, 좌심실, 우심방, 우심실로 구분돼 있다. 이들 4개의 방은 서로 리듬을 맞춰 뛰며 온몸으로 혈액을 보내고 폐를 거친 혈액을 받아들인 뒤 다시 신체 구석구석으로 혈액을 내보낸다. 심장 리듬이 깨지면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 특히 심방이 가늘게 떨리는 세동(細動)이 나타나면 혈액순환 장애는 물론 혈액이 심장에 고여 뭉치는 혈전(피떡)으로 뇌졸중의 위험이 일반인의 4~5배까지 치솟는다. 증상이 모호한 데다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특징이 있어 자각하기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황망히 돌아가시는 환자도 많다."
 
-원인이 무엇인가.
"심장 박동은 전기 신호로 조절된다. 우심방의 동방결절에서 전기가 생성돼 방실결절과 심실을 거쳐 퍼지면서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게 된다. 이런 전기 신호가 교란돼 나타나는 부정맥은 심장이 느리게 뛰는 서맥, 빠르게 뛰는 빈맥으로 나타나는 데 심방세동은 빈맥의 일종이다. 주로 폐정맥과 좌심방이 만나는 부위에 섬유화 등 변성이 일어나 전기 신호가 합선되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특정 부위의 문제만으로 발생하지만, 만성화하면 심장 전체의 전기 신호가 불규칙해져 치료가 훨씬 까다롭다."
 
-심방세동 치료에 뛰어들게 된 배경은.
"1998년 프랑스 의료진이 폐정맥 절제술을 한 환자에게 심방세동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심방세동은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라 여겨졌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제시된 것이다. 고려대안암병원은 1991년 심도자실을 오픈하면서 1993년 전기생리학 검사와 부정맥 절제술을 시작하는 등 당시에도 심장질환 치료에 적극적이었다. 김영훈 교수를 중심으로 심방세동의 새로운 해결책을 도입, 발전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고 해당 내용이 발표된 그해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심방세동 전극도자절제술을 시작하게 됐다."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
"당시에는 폐정맥이 심방세동 치료의 핵심 부위라는 것만 제시됐을 뿐, 발생 경로나 치료 방법 등은 결정된 게 없었다.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기 위해 교수는 물론 전공의 등 모든 의료진이 밤을 새우는 게 일상이었다. 나도 그 때 함께 고생한 전공의 중 한 명이다(웃음). 연구도 부족했고, 관련 장비도 열악했지만 이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가 있을 것이란 사명감에 의료진 모두 열정을 갖고 참여했다."
 
-시술 중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고 들었다.
"심방세동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안전이다. 이를 위해 초기부터 정밀하고 효율적인 진료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정교한 시술을 위해 첨단 장비에 아낌없이 투자했고 시술 전후 약물 조절과 합병증 관리, 퇴원 후 환자 교육까지 토털 케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5000건이 넘는 심방세동의 치료 경험은 의료진의 실력과 노하우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환자 관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심방세동 시술에 최소 3시간 정도가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병원 전체의 경험은 2만 시간에 육박한다. 진단에서 치료, 관리로 이어지는 진료 시스템은 세계 유수의 병원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한다."
 

최종일 교수가 스스로 맥박 재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심방세동 치료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초기에 치료, 관리할수록 장기적으로 재발률, 사망률, 뇌졸중 발생률 및 후유증 억제 효과가 크다. 문제는 심방세동이 불규칙하게 나타나고 무증상인 경우도 많아 환자가 스스로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서야 알거나 한의원에서 '맥이 고르지 않다'고 해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규제 샌드박스 1호로 선정)를 개발하게 된 배경이다. 현재는 심전도 패치를 통한 원격 모니터링 기술도 개발 중이다."
 
-심장 건강을 위해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며 금연·금주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습관이 심장 건강을 위한 기초이자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대한부정맥학회 차원에서는 '자기 맥박 재기'를 강조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부정맥의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손목에 요골동맥을 누르기만 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부정맥 고위험군 즉,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나 65세 이상 고령, 원인 모를 뇌졸중 경험이 있는 환자는 꼭 실천하길 권한다."
 
-향후 계획은.
"부정맥 센터가 지난해 부분 완공된 신관으로 확장 이전하며 외래 진료실과 각종 검사실, 심도자실이 대폭 확충됐다. 두 개의 영상 축이 있는 최신 바이플레인 혈관 조영 장비를 들이고 시술실에 헤파필터가 적용된 공기 정화 시스템을 적용해 전문성과 안전성을 높였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약물, 시술과 관련한 기초, 임상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안암병원을 찾은 환자만큼은 가장 안전하고 성공률이 높은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의료진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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