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폐동맥고혈압이 심각한 두 가지 이유

[박재형 교수] 입력 2021.05.18 11.03

[전문의 칼럼] 충남대병원 심장내과 박재형 교수

박재형 충남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폐동맥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전달하는 폐동맥의 이상이 발생해 압력이 상승하는 희귀 난치질환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드물고 인지도가 낮은 질환이기 때문에 폐동맥고혈압은 ‘고혈압’과 비슷한 만성질환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폐동맥고혈압은 폐동맥의 압력 증가로 인한 오른쪽 심장의 기능 감소 등으로 인해 돌연사까지 발생할 수 있는 위험도가 높은 질환이다. 질병의 진단이 어렵고, 치명률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평균 2~3년 내 사망할 수 있는 고위험 질환이다.


특히 국내 폐동맥고혈압의 치료 성적은 좋지 않다.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사망률은 유난히 높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5년 생존율이 74%에 달하지만, 우리나라의 5년 생존율은 46%에 그친다.  

우리나라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생존율이 높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질병의 조기 진단이 어려운 점이고, 두 번째는 효과적인 약물치료의 지원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두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직 적용되지 못해 다른 나라보다 사망률이 높을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더 안타깝다.  

첫 번째 문제인 조기 진단이 어려운 것은 폐동맥고혈압이라는 질환이 어렵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주된 증상인 호흡 곤란만으로 진단하기 힘든 질환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폐동맥고혈압은 이렇다 할 특징적인 증상 없이 호흡 곤란, 만성피로, 부종 등의 비특이적이고 일반적인 증상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정확한 진단까지 평균 1.5년이 소요될 정도로 늦다. 본인이 진료하는 환자 대부분도 겉에서 보기에는 정상으로 보이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숨이 가쁘고, 쉽게 피로하거나 어지럼증을 느끼는 등 다른 질환에서도 발견 가능한 증상이 대부분으로, 정확한 진단을 받아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들 말한다.  

폐동맥고혈압은 드문 질환이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어렵다. 하지만 결합조직병을 가진 환자에서 폐동맥고혈압이 잘 동반될 수 있어 먼저 폐동맥고혈압이 같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은 질환의 환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 질환에는 전신홍반루푸스, 전신 경화증 등의 자가면역질환이 있다. 이들 질환에서 발생 가능한 이차 폐동맥고혈압은 미리 의심하면 조기에 진단할 수 있고, 미리 치료를 시작하면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국내의 이차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2014년 702명에서 2019년 1290명으로 5년 새 약 2배 증가했다. 게다가 자가면역질환 환자에서 폐동맥고혈압이 발생하면 사망률이 다른 폐동맥고혈압에 비해 유의하게 높다. 그러므로 전신홍반루푸스 환자 등의 자가면역질환을 가진 환자는 폐동맥고혈압에 대한 검사인 심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좋다. 다행히도 자가면역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심초음파 검사는 의료보험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비교적 비용 부담 없이 검사받을 수 있다. 외국에서는 전신 경화증 환자가 많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전신홍반루푸스 환자가 많다. 이들 질병을 가진 환자가 쉽게 숨이 차거나 어지럼증 등의 증상과 함께 차가운 곳에 가면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이 하얗게 변하는 ‘레이노 현상’이 같이 나타난다면 폐동맥고혈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의심해볼 수 있어 놓쳐서는 안 된다.  


두 번째 문제인 효과적인 치료의 미흡은 조기에 진단되더라도 보험 기준이 엄격해 치료 효과가 입증된 약물의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제도적 문제다. 폐동맥고혈압은 한번 발병하면 진행되는 난치성 질환으로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최대한 진행을 늦추는 게 치료의 핵심이다. 이런 치료 특성상 국내외 폐동맥 고혈압 진료지침은 질병 초기에 증상이 심하지 않아도 치료할 수 있도록 했고, 가능하면 초기부터 서로 다른 기전을 가진 약제를 같이 사용하는 병용 요법을 권고하고 있다.  
 
의료보험 지급 거부로 약 못 쓰고 사망하기도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 기준은 한 가지 약제를 제외하고, 호흡 곤란 증상이 심한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해야만 의료보험에서 지불해준다. 또 환자가 악화할 가능성이 높아 질병 초기에 두 약제를 같이 사용하면 의료보험에서 삭감을 당한다. 필자의 경우 폐동맥고혈압의 치료에 약제를 사용했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부적절한 약제의 사용이라고 해, 의료보험 지급을 거부해 약제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환자가 악화해 사망한 적이 있었다.  

폐동맥고혈압은 약값이 비싸긴 하지만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전체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매우 낮다. 고가의 약값으로, 의료보험에서 지원하지 않는다면 적절한 치료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보험의 폐동맥고혈압 약제의 보험 급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엄격하다. 이들 약제는 중등도 환자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다. 이러한 의료보험 급여기준으로 인해 폐동맥고혈압이 조기에 진단되더라도 효과적으로 관리돼 생존을 늘릴 수 있는 기간을 지나 질병이 악화해 보험급여가 가능한 시점에서야 효과적인 치료제를 사용하게 돼 약의 효과가 낮고, 생존율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증상이 심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정맥투여 약제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필자는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연수 중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에서 정맥주사용 폐동맥고혈압치료제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더 놀랄만한 일은 필자가 미국에 연수한 시점은 지금부터 10년 전으로, 10년 후인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정맥주사용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를 사용할 수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만 해도 조기에 정맥주사용 폐동맥고혈압치료제를 사용해 우리나라보다 월등하게 좋은 생존율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급여기준에 대한 변경은 시급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현재 2~3년에 불과한 폐동맥고혈압의 생존율이 7.6년까지, 아니 그 이상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폐동맥고혈압은 30~40대의 비교적 젊은 여성에서 빈발해 어린 자녀를 두고 생명을 잃어가는 엄마 환자의 안타까운 상황도 드물지 않게 접한다. 우리나라는 아주 좋은 의료보험제도를 갖고 있어 병원의 접근성이 좋다. 많은 국민이 혜택을 받는 게 사실이다. 좀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이제 희귀질환을 가진 환자에 대한 지원에 좀 더 눈길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폐동맥고혈압의 가족력이 있거나,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는 빠르게 증상을 살펴 심장 초음파를 조기에 시행하도록 해, 질병 초기에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도록 하고, 의료보험의 급여 개선으로 질병의 초기에도 치료 가이드라인 권고대로 치료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 대한심장학회와 대한 결핵 및 호흡기학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폐고혈압 진료지침을 작성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폐동맥고혈압 치료에 있어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학회, 환자들이 서로 합심해 노력한다면 좀 더 나은 폐동맥고혈압 치료 선진국의 대열에 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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