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까지 35년 걸리기도…"유전 질환 '파브리병' 치료 잘하면 평생 문제없죠"

[박정렬 기자] 입력 2021.01.07 14.44

[인터뷰]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홍그루 교수

지난해 사회복지공동학술대회에서는 희귀난치성 질환인 '파브리병'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들의 경험담이 소개됐다. 면담에 참여한 5명의 어머니는 자녀의 치료를 위해 대학병원, 정신병원은 물론 점집까지 찾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다소 충격적인 것은 진단까지 걸린 기간이었다. 모두 자녀가 손과 발 등에 통증이 나타난 이후 적게는 10년, 많게는 35년이 지나서야 병을 진단받은 것이다. 

생소한 이름의 ‘파브리병’은 알파 갈락토시다제 A라는 효소가 부족해지면서 당지질이 축적되는 유전질환이다. 약 12만명 중 한 명에게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파브리 발작이라고 하는 일시적인 통증과 마비, 저림 등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 증상이 특징이다. 신부전·심부전·부정맥 등 치명적인 합병증의 위험이 커 일반인보다 기대수명이 남성은 16.5년, 여성은 4.6년 정도 짧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절실하지만, 증상이 일반적이고 전신에 걸쳐 발생해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홍그루 교수. 중앙포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홍그루 교수는 "나이가 어린 파브리병 환자는 주로 손발 통증을 호소하는데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부모가 꾀병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원인 모르는 단백뇨, 신부전, 심장병 등 합병증이 다양하지만 해당 의료진이 파브리병을 잘 모르면 진단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에게 파브리병의 증상과 원인, 진단 및 최신 치료 경향을 물었다.

-파브리병은 생소한 병이다. 어떤 질환인가.
"일반인이 잘 아는 당뇨병과 비슷한 질환이다. 당뇨병이 인슐린이라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기능이 떨어져 여러 장기에 영향을 준다면, 파브리병은 알파 갈락토시다제 A라는 효소가 적거나 아예 없어서 발생한다. 체내에 당지질인 글라보트리아오실세라마이드(이하 GL-3)가 축적돼 조직과 장기 기능을 손상하면서 합병증을 초래한다." 

-당지질이 축적되면 무엇이 문제가 되나.
"GL-3는 3개의 당과 세라마이드라 불리는 한 개의 지질로 이루어져 있다. GL-3는 알파 갈락토시다제 A에 의해 락토실세라마이드로 분해된다. 하지만 파브리병 환자의 경우 이 효소가 없거나 완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혈관 벽에 GL-3가 비정상적으로 축적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관 벽이 좁아져 혈류와 영양 공급이 감소하고 심장과 신장은 물론 피부, 신경계 미세혈관에도 영향을 끼친다." 

-본인이 파브리병인 줄 모르는 환자도 많나. 
"파브리병은 발병부터 진단까지 평균적으로 10~15년 정도 걸린다. 증상이 다른 질환들과 비슷하고 전신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질환을 혼동할 수 있고 환자 스스로 알아채기도 쉽지 않다." 

-환자 스스로 파브리병을 의심할 수 있는 특징이 있을까.
"파브리병의 증상은 보통 여성보다 남성에게 증상이 더 일찍 발현된다. 남성은 주로 소아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은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의 손발 통증이 제일 고통스러운 증상 중 하나라고 말한다. 남아가 손끝, 발끝 등이 저린 정도가 아니라 심하게 아프다고 하면 파브리병을 의심해야 한다. 일부는 땀을 흘리지 않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여름철 무더위를 견디기 어려워한다. 반면, 여성은 중년 이후에 증상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전신에 걸쳐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심장 근육이 커지는 비후성심근증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실제로 우리 병원의 비후성심근증 환자의 약 1% 정도가 파브리병으로 진단받았다."  
 
-국내 유병률 및 진단율은.
"국내 환자는 약 1000명 정도로 추정되나 현재 집계된 환자는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숨은 환자가 그만큼 많다고 볼 수 있다. 진단은 소량의 혈액만으로 가능하다. 다만, 여전히 원인을 모르는 증상으로 인해 다른 과를 찾았다가 뒤늦게 진단되는 환자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유전 질환이기 때문에 가족 스크리닝을 통해 환자를 조기 발견하는 것이 빠른 치료에 도움이 된다. 해외에서는 한 사람이 진단되면 가족 스크리닝을 통해 구성원이 추가로 진단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유전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가족 스크리닝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추가 진단에 어려움이 있다. 일찍 찾아 치료하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관리가 가능한데, 안타까운 부분이다."

-파브리병은 어떻게 치료하나.
"파브리병은 크게 주사(효소대체요법)와 경구용 치료제로 치료한다. 지난해까지 파브리병의 치료는 부족한 효소를 정맥을 통해 주기적으로 주사하는 효소대체요법밖에 없었다. 평균적으로 2주에 한 번 4시간 이상 병원에 방문해 정맥 주사를 맞아야 했다. 경구용 치료제는 결핍된 효소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 남아있는 알파 갈락토시다제 A 효소와 결합해 효소의 활성화를 복원시키고 축적된 당지질을 분해하는 기전으로 작용한다. 주사제와 달리 환자 스스로 복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캡슐 형태의 경구용 치료제를 이틀에 한 번, 매번 같은 시간에 환자가 직접 복용하면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으며, 병원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방문하면 된다." 

-경구용 치료제가 도입된 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환자의 반응은 어떤가.
"당뇨병이 인슐린 부족으로 일어난다고 모든 환자가 인슐린 치료를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몸 안에 있는 인슐린 활성도를 높이는 경구용 치료제를 사용한다. 파브리병도 마찬가지다. 효소대체요법에서 경구용 치료제로 방법을 바꾼 환자는 편의성, 치료 효과 면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구용 치료제에 순응하는 변이를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다양한 데이터를 비교했을 때도 효소대체요법과 경구용 치료제의 효과적 차이는 거의 없다고 확인됐다." 

-복용에 불안감을 느끼는 환자는 없나.
"효소대체요법은 20년 이상 표준 치료로 시행됐다.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구용 치료제에 거부감이 드는 환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효소대체요법은 경구용 치료제와 달리 40~70%는 항원 항체 반응으로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오한, 발열 등이 나타날 수가 있다. 또, 경구용 치료제가 나오기 전에는 효소대체요법 치료를 위해 2주에 한 번씩 장시간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치료 자체를 기피하는 환자도 있었다. 경구용 치료제를 복용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에게 이런 부담을 줄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 평가한다." 

-해외에서도 경구용 치료제가 쓰이나. 치료 가이드라인 상 차이가 있을까.
"해외 대부분의 국가에서 파브리병 경구용 치료제는 1차 치료제로 처방될 수 있다. 예컨대 영국은 경구용치료제와 효소대체요법의 치료제의 환자군을 나누지 않고 모두 1차 치료제로 보험 급여 적용이 가능하다. 캐나다의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는 경구용 치료제와 효소대체요법이 동일한 환자군에서 보험 급여가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2차 치료제로 지정돼 있다. 1차 치료로 주사를 통한 효소대체요법을 1년간 치료한 후 경구용 치료제를 쓰는 순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호주만 2차 치료제로 되어 있으며, 호주와 국내 모두 1차 치료제로 보험 급여를 변경하기 위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 파브리병 치료 현황은.
"국내에서 파브리병으로 보험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장기의 손상과 같은 뚜렷한 합병증 증상이 있어야 한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평생 관리가 필요한 다른 질환은 합병증이 생기지 않아도 바로 치료가 가능한데, 파브리병은 그렇지 않다. 치료제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이해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지만 조기 치료가 중요한 질환인 만큼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장기적으로 치료를 이어가야 하는 파브리병 환자·보호자에게 의료진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파브리병은 희귀질환이지만 치료만 잘하면 평생 문제없이 살아갈 수도 있다. 과거와 달리 경구제라는 옵션도 생겼기 때문에 병원 방문 횟수도 줄일 수 있는 등 환자의 치료 부담도 낮아졌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유전 질환인 만큼 적극적으로 가족 스크리닝에 임해주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병원 방문을 꺼리게 되면서 검진 또한 기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병원은 철저한 방역으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므로, 병원 방문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빠른 진단과 조기 치료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질환인 만큼, 필요하다면 꼭 병원에 방문해 진단과 치료를 받으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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