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위해한 담배는 더 강한 규제…근거 중심의 건강 위해 감축 정책

[류장훈 기자] 입력 2020.11.11 10.47

담배 규제 정책, 이대로 좋은가?②

우리나라 흡연율 감소는 2016년 이후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고, 청소년과 여성흡연율은 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 담배 규제 정책 및 금연정책에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10년간 새로운 형태의 담배제품(액상형 및 궐련형 전자담배) 등장으로 담배 시장과 흡연자들의 흡연 행태는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금연정책의 세계적인 추세는 건강 위해 요인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건강 위해 감축’개념의 도입이다. 흡연자들에 대해 무조건 금연을 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흡연자들이 헌법상 자기결정권을 가진 인격의 주체로서 흡연행위를 단계적으로 줄이거나 보다 위해성이 저감된 제품을 자발적으로 선택해 종국적으로 금연에 이르도록 하는 ‘건강 위해 감축’에 기반을 둔 금연 정책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건정책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 학계 및 보건당국은 액상형 및 궐련형 전자담배의 출시에 따라 새로운 담배제품의 건강 위해성 여부에 관한 과학적인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권위 있는 관련 단체들이 신종담배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관련 국가 보건당국은 담배의 위해성 감소를 인정한 의학적·과학적 근거에 따라 기존 금연 정책의 한계점을 극복할 보완 정책으로 위해가 저감된 전자담배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금연을 위한 중간단계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영국, 유럽 등 세계 각국의 흐름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일반 담배 대신, 신종담배 규제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정부와 의원들이 대거 발의하고 있는 각종 전자담배 규제안들이 이를 방증한다. 결과적으로 일반담배 소비량이 대폭 증가하고 흡연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정부가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소상공인들의 일자리만 없애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미국처럼 식약처로 규제 일원화, 근거 중심의 규제 강화 필요

늦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수년간 ‘건강 위해 감축 정책’에 대해 논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건강 위해 감축연구회는 2018년 이후 매년 전문가 포럼 등을 통해 해외 사례 소개는 물론 건강 위해 감축 정책의 국내 도입을 위한 제안을 하고 있다. 그중 핵심은 미국식 담배규제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인데, 미국식 규제 정책은 담배 위해 감축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09년 담배 규제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 일원화하면서, 「가족흡연방지 및 담배규제법」을 제정했다. 이 법률에 따라 크게 2가지의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사전 담배제품 판매신청 제도와 위험감소 담배제품 승인 제도이다.

사전 담배제품 판매신청 제도는 새로운 담배 제품의 건강상 위험이 기존의 담배 제품보다 감소해, 공중 보건 보호에 적절한지 여부를 평가한 후 판매를 허가하는 제도이다. 판매 허가를 취득한 새로운 담배 제품의 판매가 기존 담배제품보다 공중보건의 부정적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건강 위해 감축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청인은 새로운 담배제품이 공중 보건 보호에 적절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제품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임상연구 자료를 포함해 방대한 과학적 근거들을 제출해야만 한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사전 담배제품 판매 신청을 해 허가를 받은 제품은 두 가지 제품뿐이다. 2007년 2월 이후 시판된 모든 신종 담배들은 올해 9월 9일까지 신청을 하도록 했지만, 현재 기간 연장을 원하는 담배 업계와 반대하는 공공 보건단체들이 대치 중이다.

이법은 덜 해로운 제품으로 취급되거나 판매될 수 있는 제품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위험 감소 담배 제품으로 지칭하고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기존 담배의 대체 형태로서 담배로 인한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채택하는 것이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담배 관련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이해가 전제된 것이다.

FDA는 위험이 감소하지 않은 제품의 과장된 광고와 선전은 철저히 금지한다. 반면 과학적으로 엄격히 검증된 제품에 대해서는 위험감소 제품으로 인정하고 광고와 판촉을 허용한다. 소비자들이 실제로 해당 제품을 사용했을 때 담배 관련 질환의 피해와 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험감소제품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 담배제품 판매 신청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과학적 증거들이 요구된다. 임상자료 외에도 흡연자와 비흡연자에게 미치는 영향 연구, 담배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 이해 및 인식에 미치는 영향 연구, 공중 보건에 미치는 영향 연구 자료 등 방대한 자료들을 분석한 후, 기존 담배보다 덜 위험하다는 광고와 판촉을 승인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위험 감소 담배로 승인받은 제품도 두 가지가 있다. 미국은 또한 2017년 담배 관련 질병 및 사망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규제의 틀로서 ‘담배 및 니코틴 종합 계획’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담배 중독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면서 니코틴을 여전히 찾을 수밖에 없는 성인들에게 ‘건강 위해가 감소한 대체제’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을 비전으로 내세운 바 있다.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안’과 ‘사전 담배제품 판매 허가제’ 도입해야

이러한 미국식 시스템 도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였는데, 주요 골자는 미국과 같이 식약처에서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평가한 후,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 FDA의 과학적 분석과 근거에 기반을 둔 선진형 담배 유해성 관리 모델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하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조속히 법률이 통과되도록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담배 제품의 위험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점진적으로 금연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미국식 사전 담배제품 판매신청 제도를 연구하는 연구 용역을 시작하였다. 담배 시판 전 건강 위해성,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하는 ‘담배제품 시판 전 사전심의제도’ 도입을 검토하기 위해 「담배제품 시판 전 사전심의제도 도입방안 연구」 정책 용역을 발주한 것이다. 해당 담배제품이 시중에 판매되기 전 ‘담배 제품’의 형태, 특성, 사용 및 노출 시 건강 위해성, 사회경제적 비용 등을 검토 및 심의할 수 있는 ‘사전심의제도’ 도입방안과 정책전략 제언을 과업으로 제시했다.

조속한 제도 도입을 통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덜 위해한 담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위험감소 담배제품 승인 제도 역시 연구라도 시작함으로써 미국과 같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담배 규제 정책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덜 유해한 담배제품으로 금연을 돕는 금연정책의 발상 전환 필요

영국은 2017년 ‘담배 없는 세대를 위한 담배규제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존 금연정책의 보완책으로 금연의 중간단계로서 덜 유해한 담배제품의 사용을 금연 클리닉에서 권장하고 있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ICE) 지침의 권고사항에 의하면, 건강 및 사회 복지 전문가들이 흡연자에게 궁극적으로는 금연해야 하지만,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위해하고 금연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조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영국 보건국에 의하면 전자담배와 니코틴 대체요법 이용 시 금연 가능성은 1.5배 증가하고, 이러한 보조제 사용 외 금연전문가와 대면 행동 지원을 하면 금연 가능성이 3배 높아진다고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국은 일반 궐련 담배 흡연자가 전자담배로 전환한 경우 금연에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금연자로 분류하기 시작했고, 흡연율이 2012년 19.6%에서 2017년 15.1%까지 떨어져 성공적인 금연 정책을 시행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도 올해 ‘담배 연기 없는 법’이 통과되었다. 해당 법안은 전자담배가 일반 궐련 담배보다 건강상의 위해도가 낮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정부의 금연 캠페인의 일환으로서 전자담배가 하나의 금연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을 인정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2025년까지 흡연율을 5%로 낮춰 ‘담배 연기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강력한 금연 정책을 발표하면서 전자담배를 대체재로 권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국회도 금연정책의 발상 전환이 필요한 시점임은 틀림없다. 금연이 답이지만 금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건강에 조금 덜 해로운 담배로 유도하는 것이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니인터뷰] 서울대 문옥륜 명예교수

-현 금연정책 관련 조언을 해 주신다면.

"흡연은 흡연자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공중보건상의 위기를 초래한다. 따라서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그러나 ‘금연’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금연’에만 집중하지 말고, 영미처럼 금연을 유도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접근방법으로 기존 금연 정책의 한계점을 보완해야 한다.

영미와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담배와 전자담배에 대한 새로운 기술의 이점과 위험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고,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이용방법, 구성요소, 성분(첨가제) 등을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표준 지침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러한 점이 다소 부족하다. 흡연자를 백안시하는 금연정책보다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덜 해로운 담배로 유도하는 것이 공중보건정책으로는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건강 위해 감축 정책 도입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담배 위해 감축 정책의 핵심은 전자 담배 제품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며, 대중들(흡연자 및 비흡연자 포함) 또한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공중보건 사업의 편익과 효과를 고려해 금연할 의지가 없는 흡연자나 금연에 실패하는 흡연자들에게 유해성이 덜 한 담배로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액상형 전자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에 관한 올바른 정보와 담배 유해물질 정보 공개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영미와 같이 기존 금연정책의 보완책으로 건강 위해 감축 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흡연자들의 건강권도 고려한 정책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근거에 기초해 어떠한 정책수단이 금연의 목적에 효과적인지를 따져 보면서 정책 시행의 우선순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기존 금연 정책과 담배 규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실용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해외 사례 중에서는 미국의 담배 규제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재부와 복지부로 이원화돼 있는 규제 시스템을 식약처로 일원화해 과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한 유해성 평가와 규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각종 신종 담배류에 대한 사전 담배제품판매 허가 제도 도입을 통해 인체 유해성이 줄어들었다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제품들만 시장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 시장 진입 후 광고 및 판촉 행위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미국처럼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광고 및 판촉행위 승인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미국식 시스템 도입은 현재 정부와 전자담배협회가 대치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은 만들지 않을 것이며, 흡연자들이 덜 위해한 전자담배에서 더 위해한 일반담배로 회귀하는 역효과도 만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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