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먹어도 안 낫는 섬유근통, 신경병증성 통증 관리법

[이승훈 교수] 입력 2020.08.26 16.49

[한방 명의 솔루션]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자가면역난치질환센터 이승훈 교수


"여러 병원 다니며 진통제, 신경안정제를 몇 개월째 먹고 있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잠을 못 자요."

"검사를 해봐도 아픈 원인을 못 찾겠어요. 그냥 신경성이라고 하네요. 진짜 우울증에 걸릴 거 같아요"

갑작스레 허리를 삐끗하거나 칼에 손을 베면 통증이 생기는데, 이 증상이 약 3개월 이상 지속하면 만성 통증이라 일컫는다. 아픈 것은 매한가지지만 급성통증은 우리 몸의 이상을 알려주는 경고신호로서 의미를 갖지만 만성 통증은 통증 자체가 질환이며 경고신호의 역할은 별로 없다. 보통 ▶염좌는 2~4주 ▶디스크는 8~10주 ▶골절은 6~12주 이내에 통증이 사라져야 하는데 그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한다면 만성 통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통증이 오래되면 통증이 과민해지고 불면·우울 등 동반 질환들과 얽혀

만성 통증으로 발전된다면 회복 속도가 점차 더뎌지고 다친 곳뿐 아니라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면서 컨디션이 저하된다. 그 이유는 통증이 오래되면 과민(sensitization)이 생기기 때문이다.

통증은 온도나 물리적 자극이 피부 말단의 수용체(발전소)에서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감각신경(전선)을 통해 척추(변전소)를 거쳐 뇌(최종 목적지)로 전달되어 감각을 느끼게 된다. 통증이 오래되면 이러한 정상적인 통증 전달 경로에 이상이 생겨 수용체(발전소)나 척추(변전소)가 민감해지는 말초성 및 중추성 과민이 생겨 아픈 부위가 더 민감해지고 손상 부위 주변까지 아프게 된다.

또한 만성 통증의 단계로 접어들면 단순히 통증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울 ▶불안 ▶수면장애 같은 3대 동반 질환들이 생긴다. 개인에 따라서 ▶소화능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피로해지거나 ▶통증 주변 근막이 굳어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통증과 이런 동반 질환들끼리 서로 얽히면서 증상이 더 악화하고 잘 낫지 않는 데 있다. 즉, 통증이 오래되면 뇌의 피질에서 아픈 감각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변연계에 통증이 기억되고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통증이 잘 낫지 않을 뿐 아니라 우울하거나 불안해진다. 

이런 우울이나 불안은 통증을 더 오래가게 한다. 또한 통증이 계속되면 예민해지거나 아파서 불면이 생기고 불면이 지속되면 통증을 더 심하게 느낀다. 그뿐만 아니라 통증이 오래되면 주위 관절이 점점 굳으면서 그 부위의 통증이 더 심해지게 된다. 

여기저기 아픈 '섬유근통증후군', 스치기만 해도 아픈 '신경병증성 통증'

'섬유근통증후군'은 특별한 원인 없이 전신에 근육통이 생기고 피로, 수면장애 등이 3개월 이상 지속하는 만성 전신성 통증 질환이다. 주로 남성보다 여성의 발병률이 4배 이상 높고 40대 이상의 여성에서 흔하다. 보통 목이나 허리가 아프지만 전신 여러 부위에 통증이 발생하기 때문에 '온몸이 아프다'고 표현한다. 또한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와 위치도 계속 바뀌어서 엄살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대부분 피로, 수면장애, 소화불량 등을 호소하고 특별한 검사로 진단되지 않고 감별해야 할 질환이 많기 때문에 보통 진단이 나오기까지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곤 한다. 

'신경병증성 통증'은 신경 손상이나 비정상적인 신경 기능으로 인해 지속하는 만성 통증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 대상포진 후 신경통, 삼차신경통, 척추 수술 실패 증후군, 암성통증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흔히 허리를 삐끗하는 것 같은 근육이나 인대 등의 조직 손상과는 달리 신경 자체가 손상을 받게 되는 신경병증성 통증은 만성화되어 과민이 발생하기 쉬워 약한 통증을 더 크게 느끼거나 심지어 정상적인 자극도 통증으로 느끼게 된다. 옷을 입거나 악수를 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서도 극심한 통증을 느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난치성 만성 통증 질환에는 항간질제, 삼환계 항우울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 등의 약물이 주로 사용된다. 이러한 약물들은 일반적인 진통제로 알려진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이나 비스테로이드소염제보다는 부작용이 조금 더 크다고 알려져서 장기 복용 시에 이상 반응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약물치료가 실패한 경우 마약성 진통제까지 사용하기도 한다. 

진통제 복용에도 증상이 계속되면 한방치료 병행해야

그러나 이러한 약물을 수개월 이상 복용하고 있음에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거나, 당뇨병 등 만성 질환 환자처럼 복용해야 하는 약이 많은 분들은 계속해서 같은 약물만을 복용하면서 증상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또한, 진통제를 복용해서 어느 정도 통증이 줄어들어도 동반되는 불면, 우울, 피로 등의 전신 질환이 개선되지 않으면 진통제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른다. 이때 전침, 약침 등과 같은 한방 비약물요법을 병행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침 치료는 만성 통증의 중추성 과민을 줄인다고 알려져 있어 통증 강도를 낮추거나, 진통제 복용량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2018년에 당뇨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중 하나인 '당뇨병관리(Diabetes Care)'에 발표했던 대규모 다기관 임상연구에 따르면, 8주간의 전기 침 치료가 대표적인 신경병증성 통증 중 하나인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의 통증 강도를 약 20%가량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 침의 치료 효과는 치료 종료 후 8주간 지속했으며, 통증뿐 아니라 수면방해점수와 삶의 질 모두 대조군보다 효과적이었다. 또한 최근 인태반 주사제를 혈자리에 주사해 섬유근통증후군 환자의 전신 통증뿐 아니라 수면 장애까지 개선한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이미 한방에서는 자하거 약침 형태로 인태반 주사제를 섬유근통증후군과 같은 불면, 피로 등 전신 증상을 동반한 만성 통증 질환에 활용하여 효과를 보고 있다. 또한 난치성 만성 통증 환자들은 교감신경 이상 등으로 혈행 장애가 생겨 통증 부위가 시리고 붓거나 피부 색깔이 변해 통증이 더 잘 낫지 않게 된다. 실제로 같은 만성 통증 환자라도 추위를 심하게 타거나 몸이 붓는 사람이 더욱 통증을 심하게 느낀다. 이때는 자율신경을 조절하고 부종과 냉증을 개선하는 한약 치료를 병행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통증과 동반증상들을 조절할 수 있다.

▶ 섬유근통증후군의 3·3·3 체크리스트(2010년 미국류마티스학회 기준 참고)
1. 피로를 자주 느낀다.
2. 아침에 일어날 때 상쾌하지 않다.
3. 기억력이나 집중도가 떨어진다. 
4. 우울하거나 불안한 감정이 든다.
5. 입맛이 떨어지거나 소화가 잘 안 된다. 
6. 얼굴에 열감이 오르거나 눈이 건조하다. 
7. 과민성 대장염이 있거나 소변볼 때 잔뇨감이 있다. 
(※3개월 이상 온몸 여기저기 아픈 부위가 최소 세 군데 이상이며 이들 증상 중 세 가지 이상 있을 때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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