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 생존자… 암 환자 병원 동행해드릴게요"

[정심교 기자] 입력 2020.06.04 17.27

[암 생존자 주간 인터뷰] 윤슬케어 정승훈 대표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는 암이다. 그만큼 무서운 질환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해졌다. 2017년 기준 국내 암 유병자 수는 187만 명에 육박한다. 환자 수가 늘어난 만큼 생존율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암과 싸워 이긴 생존자의 삶도 주목되는 이유다. 그런데 청년 암 환자 대다수는 투병으로 인해 사회활동의 공백기를 가진 탓에 암 극복 후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다. 의학적으로는 완치 판정을 받았어도 사회적으로는 ‘암 환자’라는 꼬리표를 떼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6월 첫째 주는 국립암센터가 지정한 '암 생존자 주간'이다. 정승훈 윤슬케어 대표는 암 생존자이자, 그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주목받는다. 그에게서 암 생존 이후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승훈 대표. [사진 윤슬케어]

Q. 윤슬케어를 창업한 계기는.

"22살 때 대학을 졸업한 후 혈액암을 진단받았다. 여섯 번의 항암 화학치료와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으로 치료를 마쳤다. 치료받을 때는 전문가가 곁에 있고, 모르는 것은 병원에 갈 때마다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치료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은 물어볼 곳이 없었다. 진로가 바뀌기도 하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문득 '난 그냥 조금 오래 아팠을 뿐인데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가면 선배가 있고, 회사에 가면 사수가 있는데 암 생존자에게는 자신뿐이다. 그래서 내 투병 경험이 후배 환우에게 도움되길 바라는 마음에 환자 단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암을 경험한 사람을 여럿 만나며 알게 된 점은 그들 모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암 환자의 경험을 연결하다'란 비전의 윤슬케어를 창업했다."

Q. 윤슬케어는 어떤 회사인가.
"'윤슬'이란 햇빛·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말한다. 작은 반짝임이 모여 아름다운 윤슬을 만들어내듯 암 환자를 위한 마음과 서비스를 모아 아름다운 투병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윤슬케어를 설립했다. 윤슬케어는 암 생존자의 경험이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길잡이가 되도록 멘토링 서비스를 한다. 암 생존자 멘토는 환자가 치료 과정 도중 겪는 어려움에 온전히 공감해줄 수 있다. 또 병이 다 나았다는 희망을 보여줘 정서적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가족보다 더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어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빠르게 지원해 줄 수 있다. 또 요즘은 가구원 수 감소와 맞벌이 가정 증가로 보호자 한 명이 꾸준하게 환자 곁에서 간병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부모님께서 매번 병원에 함께 가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셨다. 동행 멘토는 낮에 경제활동을 하는 보호자를 대신해 병원을 동행한다. 보호자에게는 개인의 삶과 간병 생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암 환우를 위한 정서 지원 목적의 투병 다이어리인 '암보다 강한 당신'을 제작한다."

Q. 암 생존자로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  

"암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데, 암을 진단받았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너 술·담배 많이 하니?'란 질문부터 한다. 암에 걸린 원인을 환자의 삶에서 찾는 거다. 또 많은 사람이 '암 환자는 약하기 때문에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다. 물론 치료 과정에서 주위의 배려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도움이 평생 필요한 게 아닌데도 '암 환자는 쉬어야 하고 일을 할 수 없다'며 단정 짓는다. 이런 인식은 암 환자에게 꼬리표를 달아 차별하는 것과 같다. 그럴수록 암 생존자는 차별을 피해 암 투병 사실을 감춘다. 결국 암 생존자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암 투병을 하는 사람은 200만 명이 넘지만, 아직 암 환자를 위한 복지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감염에 취약하거나 체력 저하로 이동이 힘든 암 환자, 홀로 투병해 가사 또는 간병 지원이 절실한 암 환자가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는 없다. 관련 기관에 문의해도 암 환자가 지원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투병 시 마음 다독이는 다이어리 발간


 

정승훈 대표는 "암 투병이 지우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반짝이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 윤슬케어]


Q. 암 생존자 주간에 맞춰 암 환자를 위한 다이어리를 발간했는데.

"암을 진단받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살 수는 있는지, 어떤 치료를 받게 될지 등이다. 특히 치료를 시작하면서 일상이 바뀌고 낯선 공간에 있다 보면 작은 고민과 걱정이 쌓여 두려움이 증폭된다. 실제로 암 생존자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진단 초기에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동안 암 환우의 다이어리는 체중, 마신 물의 양을 체크하는 투병 수첩 정도에 그쳤다. 그래서 암을 경험한 선배 환자로서 투병 과정에서 겪은 마음의 흔들림을 다독여줄 수 있는 다이어리를 만들게 됐다. 치료 과정과 별개로 암 환자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다이어리를 쓰며 막연한 불안감을 잠재우고 현실을 차분히 받아들이도록, 다이어리 한 페이지를 넘기듯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담담하게 살아갈 작은 불씨를 얻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했다. 현재 국립암센터 사회사업실, 부산대병원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를 비롯해 전국 주요 의료기관과 환자 단체를 통해 400권 정도를 기부할 예정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등 보다 많은 환자에게 다가갈 방법을 찾고 있다."

Q. 사회·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할 점을 제안한다면.  

"암 경험자는 계속 늘어나고 의료기술 발전으로 더 많은 암 생존자가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국내 암 생존자의 사회복귀율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투병 이후에도 원활하게 사회에 복귀하도록 암 생존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거나 특별채용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암 환자 발생으로 인한 인력 부재 시 암 생존자가 대체인력으로 파견되는 시스템도 유용할 것 같다. 기존 근로자는 치료 후 돌아올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고 암 생존자에게는 인턴십·기간제의 근로 경력을 쌓을 수 있다. 직장 동료는 암 생존자와 일해보며 기존 근로자가 복직했을 때 더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배려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암 투병 경험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투병 이후에도 이전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회적 약속과 배려가 마련돼야 한다."

Q. 윤슬케어의 향후 계획은.
"현재 질병을 치료하는 곳은 분명하지만 환자 삶의 질을 결정하는, 투병 너머의 사회경제 활동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윤슬케어는 암 생존자의 경험을 연결해 현재 암을 겪는 환자에게는 보다 나은 투병 환경을, 암을 이긴 생존자에게는 보다 든든한 사회 복귀 체계를 지원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암 투병 경험이 더는 지우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반짝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쌓인 반짝임이 모여 아름다운 투병 환경,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Q. 암 환자 및 생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암을 겪은 덕분에 잠시 숨을 고르며 정체성을 찾는 시간을 얻게 됐다. 시간이 더 흘렀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꼭 찾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암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돌아 마침내 행복한 삶을 시작하길 바란다. 암을 경험했다고 내가 없어지지 않는다. 여러분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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